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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Sep 26. 2024

인생국수 갱신합니다

라오스 비엔티안 도가니국수

여행 전 '라오스에서 이것만은 꼭 하고 싶다!' 하는 각자의 최애픽을 하나씩 골랐다. 블루라군, 버기카, 남싸이전망대, 열기구 등 관광이나 체험형 활동이 리스트업 되는 가운데 니나킴이 대뜸 링크를 하나 투척했다. 비엔티안 도가니국수를 포스팅한 블로그였다. 비엔티안 여행유튜브를 보다 도가니국수에 반해버렸다는 니나킴은 제발 도가니국수 같이 먹으러 가달라며 애원(?)했다. 이미 링크 썸네일에서부터 비주얼이 맛집 프리패스상이었기에 프리패스로 리스트에 업! 해두었다. 이후 비엔티안 숙소가 확정되고 나서 도가니국수 먹방 일정을 잡기 위해 위치를 검색하니 마침 숙소에서 도보로 5분 거리. 니나킴의 큰 그림이었을까? 는 모르겠지만 거리도 가까우니 라오스에서의 첫끼이자 아침으로 먹으면 딱이겠다 싶었다. 도가니국수 먹으러 가기, 라오스 청춘여행 첫 일정이었다.

도가니국수 먹으러 가는 길

아침부터 주룩주룩 내리는 비 때문에 여행 첫날이자 하루의 시작이 좀 별로였지만 그래도 막상 밖에 나오니 금세 마음이 누그러졌다. 더군다나 뜨근한 국물이 있는 면요리를 먹으러 간다 생각하니 오히려 좋았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맛있는 라면은 (남이 끓여준) 비 올 때 먹는 라면이니까. 빗소리 들으며 면치기 할 생각에 궂은 날씨는 어느새 아웃 오브 안중이 되어 있었다.

지도앱을 켜고 앞장 선 배 선생의 인솔하에 도가니국숫집으로 가는 길, 한 무리의 중년 아재들과 마주쳤다. 옷차림부터 '골프 치러 왔습니다~' 대놓고 말하고 있었다. 한국사람을 만난 반가움에 인사를 건네며 몇 마디 주고받았는데 마침 우리와 목적지가 같았다. 길을 잘 아는 게 처음이 아닌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객이 아니고 라오스에서 골프여행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었다. 평소에도 즐겨 먹고 골프여행 코스에도 포함되어 있어 자주 먹는단다. 주저리주저리 노가리를 까며 걷는 사이 드디어 도가니국숫집에 도착했다.

비엔티안 도가니국수, 한글로 적혀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미소가 아름다우신(?) 도가니국수 사장님, 중간에 브레이크 타임이 있다 (※2024년 1월말 방문 당시 메뉴판)
펄펄 끓고 있는 고기육수와 잘 삶아진 수육고기
아침이라 비교적 한산했다

운치 있게 테라스(테라스가 따로 있는 건 아니고 가장 바깥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는 당연히 1인 1도가니국수. 여기에 테이블 당 수육 한 접시를 더했다. 그리고 비어라오 각 1병까지.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맥주냐 하겠지만 시원하고 청량한 액체가 몸에 들어가면서 미처 잠에서 깨지 못한 몸속의 세포들을 속속들이 다 깨워주는 느낌이랄까? 이보다 더 개운할 수가 없다. 게다가 명색이 국물요리 아닌가. 국물에 알콜이 빠지면 섭하지. 라맥(라면+맥주)과 같은 이치다.

도가니국수와 비어라오가 먼저 나왔다. 빠르게 테이블 세팅을 하고 인증숏을 찍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신속정확하게. 두 번의 촬영은 허락되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에도 면은 불고 있을 테니까. 각자의 촬영이 끝나고 다 함께 맥주잔을 들었다. 라오스 청춘여행의 첫끼를 자축하며 쨘~! (크으~~~) 한 모금 쭉~ 들이키고는 면을 한 움큼 집어 입속으로 호로록~ 면치기를 시작했다. 한입 가득 면을 때려 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면에 적셔져 함께 딸려 올라온 국물만으로도 입 안 풍미가 가득해지는 게 국물만 따로 먹어보지 않더라도 국물은 이미 합격! 입 안에서 오래도록 넘기고 싶지 않을 만큼 면과 국물의 조화가 너무 잘 맞았다. 단물 빠진 껌처럼 맛이 싱거워질 때까지 입 안에서 오물조물하다가 삼키고 다음은 숟가락을 들었다. 이미 합격이었지만 그래도 국물 맛은 또 봐야 하니 숟가락 한가득 퍼올려 츄릅~ 하는 순간, 찐한 육향이 입 안 가득 퍼졌고 간도 적당한 게 한국사람들이 딱 좋아할 만한 감칠맛이었다. 급기야 숟가락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그릇을 떠받쳤다. (크으~~~) 방금 전 마신 비어라오가 바로 해장되는 것 같은 기분. 그러면 다시 맥주 한 모금 해줘야지. 도가니국수와 비어라오, 서로가 서로를 당기는 맛이다.

도가니국수 (feat. 비어라오)

그저 고기육수로 맛을 낸,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베트남식 쌀국수이겠거니 했다가 생각보다 크게 밀려온 감동에 정신없이 쳐묵쳐묵 하는 사이 수육이 나왔다. 바로 젓가락 들고 돌진. 분명 먹었는데 먹지 않았다. 그만큼 입에서 살살 녹아 없어졌다. 이번엔 도가니국수 국물에 잘 적셔 면과 함께 호로록~ 도가니국수의 국물과 수육의 육즙이 엉키면서 국물은 더 구수해지고, 육질은 더 부드러워졌다. 먹는 내내 진실의 미간이 쉴 새 없이 나와 주름이 될 지경이었다. 이런 게 행복이지. 다들 비엔티안에서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할 정도로 만족했다.

부드러움의 끝이었던 수육




태국 팟타이, 일본 라멘, 베트남 분짜, 이탈리아 스파게티. 나라마다 대표하는 면요리들이 있다. 주 1회 1라면 하는 나름 면친놈으로서 어딜 가든 한 끼 정도는 꼭 면요리를 먹는 편인데 라오스에 오기 전 가장 최근 먹었던 베트남 분짜가 지금까지의 내 인생국수였다. 약 6년 만에 인생국수를 갱신했다. 이제는 라오스 도가니국수다.


아... 도가니 땡기네...


We will be back



라오스 청춘여행 브런치북 [1편~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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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청춘여행 EP.1 (※출처 : 싱어송라이터 늘해랑의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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