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됐든 잘 쉬었으면 됐지
여행은 변수의 연속이라 했던가? 분명 예약할 당시 12시에 5명 가능이라고 해서 예약을 한 건데 막상 시간이 다가오자 갑자기 12시에는 5명 자리가 없다는 비보를 받았다. 다음 차인 2시에나 가능하다고...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호텔 직원이 무슨 죄랴? 욕하고 따질 거라면 미니밴업체한테 해야지. 일단 손님부터 잡고 보려는 개수작에 당한 것인가라는 합리적이면서도 (동남아는 사기와 바가지를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한다는) 편견 한 움큼 섞인 의심이 드는 가운데, 이미 벌어진 일이고, 어찌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이보다 더 나은 대안도 없기에 울며 겨자 먹을 새도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
갑작스럽게 생긴 비엔티안에서의 2시간. 대체 뭘 해야 하지? 문득 여행자에게 2시간이라는 시간은 짧지 않으면서도 짧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잡고 뭘 하기에는 애매한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게 계획이 아닌 이상)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또 충분히 긴 시간이니까. 일단은 뭐가 됐든 뭐라도 해야 하니 숙소에서 그리 멀지는 않으면서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장소나 놀거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까맣게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아니, 어떻게 이걸 잊어버릴 수 있을까? 할 만큼 동남아여행의 국룰과도 같은 것. 바로 동남아에 왔다면 최소 하루 한 번은 꼭 받아야 하는 마사지다. 마침 비엔티안에서의 첫날밤 배슨생과 함께 숙소 주변으로 야밤 동네마실을 다니면서 마사지숍을 본 기억이 났다. 마사지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모두 동의. 탕! 탕! 탕! 막상 마사지를 받으러 가기로 하니 일정이 바뀐 게 오히려 좋았다. 방비엥까지 미니밴으로 나름 장시간(2시간) 이동해야 했고 액티비티와 음주가무의 천국인 방비엥에서는 비엔티안에서와 달리 텐션을 영혼까지 불러와 끌어올려 매일밤 광란의 밤을 보낼 예정(이자 바람)이었기에 미리 에너지를 풀충전해 둘 필요가 있었다. 위치를 아는 배슨생과 내가 앞장서서 마사지숍으로 향했다.
마사지숍 앞에 도착했을 때, 손님은 그렇다 치고 직원들조차 보이지 않는 파리 날리는 가게를 보니 살짝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유명한 마사지 맛집을 검색해 수고롭게 찾아가기에는 시간이 다소 부족할 것 같았다.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뭐 일요일 오전이라 그렇겠거니 하고 일단 들어갔다.
가게 사장님은 구수한 향이 풍기는 정체 모를 웰컴 티를 내어주며 우리를 반겼다. 차를 마시며 천천히 메뉴판을 구경했다. 갑작스럽게 받게 된 첫 마사지이기도 하고 잘한다는 집을 찾아온 건 아니기에 워밍업 느낌으로 가볍게 발마사지만 받기로 했다. 1시간에 9만낍(여행 당시 환율로 우리 돈 7천원). 설사 실패해도 크게 부담은 없는 가격이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우리의 등장으로 등장 이전까지 평온해 보였던 가게 분위기가 갑자기 분주해졌다. 마사지사로 보이는 직원들도 하나둘씩 부랴부랴 출근을 했다. 뜻밖의 단체 손님에 쉬고 있던 직원들까지 총동원된 것 같기도 했다.(그저 우리들끼리의 뇌피셜) 안마베드가 세팅되고 5명의 마사지사들이 각자의 포지션을 잡았다.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었던 티타임을 마치고 안내에 따라 차례대로 쪼르르~ 베드에 앉았다. 힐링 준비 완료!
마사지는 미온수로 족욕부터 시작됐다. 여느 마사지숍과 다르지 않은 노멀한 시작.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만족스러웠던 건. 발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동안 마사지사들은 안마베드 뒤로 자리를 옮기더니 머리를 지압하기 시작했다. 머리에 피가 돌아 머리가 맑아지는 걸 기대했는데 이건 뭐 미용실에서 샴푸를 한 후 헹구기 전 서비스로 해주는 두피 마사지 같았다. 아니 그보다도 부드러웠다. '저기요? 저 아기 아니거든요? 그렇게 아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안 해도 되는데...'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두피 마사지가 메인 마사지는 아니니 일단 넘어갔다.
머리에서 시작된 베이비마사지는 관자놀이를 타고 눈에 잠시 들렀다가 어깨로 내려와 팔, 손에서 마무리됐다. 마사지를 받았다기보다는 그냥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살포시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그래, 다 됐고 발마사지는 잘하겠지.' 드디어 족욕으로 퉁퉁 불은 내 발을 꺼내 대망의(?) 발마사지를 시작했다. 먼저 물기를 닦아내고 각질부터 제거. 발마사지도 마찬가지로 여기까지였다 만족스러웠던 건. 두껍게 덮여있던 굳은 피부조직들이 부스스 떨어져 나가는 건 개운했으나 이후 오일을 바름과 동시에 진행된 발마사지는 너무 시원하거나 너무 아파서가 아닌, 너무 간지러워서 발가락과 몸이 베베 꼬일 지경이었다. 이것은 발마사지인가? 풋케어인가? 발에 오장육부가 다 있다고 하는데, 오장(심장, 간장, 비장, 폐장, 신장)과 육부(위, 소장, 대장, 담낭, 방광, 삼초)중 일장 혹은 일부 어느 하나도 자극받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마사지를 마치고 나오니 그래도 1시간 앉아서 쉬었다고 몸이 편안해지기는 했다. 확실히 말해두겠다. 몸이 개운하거나 가벼워진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쉬어서 에너지가 생겼을 뿐. 그래, 이게 어디냐? 뭐가 됐든 돈 7천원주고 잘 쉬었으면 됐지. 우리나라에서도 앉아 쉬려고 어디라도 들어가면 돈 7천원 정도는 기본으로 나가니까. 이렇게까지 합리화를 시켜보아도 스킨십을 방불케 한 마사지의 여운(충격)은 방비엥으로 가는 미니밴을 탈 때까지도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주관적인 마사지 후기입니다. 사람마다 만족스럽게 느끼는 마사지의 강도가 다르기에 누군가에게는 만족스러운 마사지숍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참고로 저희 다섯 청춘은 모두 저와 같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