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콤보 Apr 13. 2022

보라카이에서의 첫날밤

#2 


혼자된 내가 불쌍했는지 두 형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왔고, 어느 순간 같이 해변을 산책하고 술도 한잔하는 사이가 되었다. 형들은 사실 보라카이에서 여행사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장기 투숙자 스멜이었군!'


알딸딸하게 술도 마셨겠다. 우린 클럽에 들러 흥을 돋우었다. 

형들은 현지에서 여행사를 준비하면서 겪었던 여러 일들 때문인지 현지 경찰과 공무원에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필리핀의 부패경찰 이야기야 많이 들어왔던 터라 공감이 갔다. 그중에서도 이 말 한마디가 참 인상 깊었다.

"여기 사람들은 책임감이 없어. 뭐든지 다 제대로 안 해. 제대로 시키려면 돈을주거나 압박을 해줘야 해!"


드디어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미리 예약해둔 액티비티(호핑투어)에 참여하는 날이었다. 큰 배를 타고 나가 몇 군데의 포인트를 들러 구경하고 스노클링 하는 투어인데, 난 혼자 갔으니 누군가 같이 어울리면 좋을 거 같았다. 한국인처럼 여자분들이 있길래 가서 말을 걸었는데 중국인이었다. 중국말로 뭐라 하셨는데 별로 내키지 않아서 자리로 돌아왔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배는 첫 포인트인 '크리스털 코브' 섬에 다 달았다. 조그마한 섬인 이곳은 입장료도 받는 섬이었다. 섬 이곳저곳과 바다의 풍경이 워낙 아름다워서 가지고 간 SONY 액션캠으로 열심히 촬영을 하며 섬을 구경했다. 한참 섬을 돌고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으려던 찰나, 액션캠이 있어야 할 가방 주머니가 열려있었다.


'이런 된장! 내가 어디 흘렸나? 아님 누가 훔쳐갔나?'


즉각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 샅샅이 살폈다. 혹시 몰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손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내 액션캠은 이 섬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스쳐 지나가갔던 다른 사람들 중 누군가가 슬쩍한 게 분명했다.

망연자실하며 섬의 입구로 가서 직원들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Security라는 글자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이 자기가 알아보겠다고 한다. 위안이 되었다. 경찰은 아니지만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고, 필리핀은 사설 경비가 많은 곳이니 잘 알아봐 주시겠지?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른 여행객들은 모두 배로 승선했고, 난 이대로 섬을 나갈 수 없어 다음배로 나가겠다고 하고 섬을 한번 더 둘러보았다.


역시나 찾을 수 없었고, 다시 Security 티셔츠를 입은 직원에게 가서 하소연을 했지만 이번엔 방법이 없다고 포기하라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했다. 


무늬만 Security가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대신 자기가 보라카이 섬의 경찰서에 미리 연락해 놓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나에겐 그 말이라도 고마웠다. 지금까지 촬영한 것과 카메라가 없어져서 속상했지만, 다행히 여행자보험을 들어 두었으니 소매치기에게 당한 거라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대신 경찰서에서 Police Report가 필요했다. 더 이상 여행할 기분도 아니지만 단체 액티비티라서 중간에 멈추고 돌아갈 수 없어 남은 투어를 꾸역꾸역 진행하고 돌아가는 길에 보라카이 경찰서에 들렀다.

이전 01화 웰컴 투 보라카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