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기엔 아까운 인생
생각해보니 불행하기엔 인생이 참 아깝다. 이 박사과정이라는 시간도 참 아깝다. 태어남에서 죽음이라는 순간까지 주어진 것이 인생. 자의식 없이 살기에도 아깝고, 주체적이지 못한 시간도 아깝고, 또한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 속에 불행하게 사는 시간도 아깝더라.
박사과정에 지원하고 합격하기까지 얼마나 힘든 일이 많았던가? 얼마나의 metamorphosis를 겪어왔던가! 연구는 내 적성이고 천직이라는 믿음과 열망, 기쁨이 언젠가는 있었지 않았던가. 삶에 그러한 대상이 있어보는 것 역시 멋진일이 아닌가.
그렇게 시작한 박사과정이 어느덧 3년차가 되고, 때로 이상적인 연구에 대한 집착,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나에게 실망했고 즐거움도 잃었다. 어느새 보니 내가 가진 하루의 24시간 중 불안과 불만족, 실망, 걱정이라는 '감정'이 너무 길다고 느껴졌다. 가지지 못한 것만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불행해진다. 10년에 걸쳐 이룰 것을 일년 만에 이룰 순 없으니 불행해하며 용을 써봐야 힘만 든다.
'romanticise'라는 단어, 낭만적이고 애틋하게 본다는 그런 단어가 꽤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거두절미하고 행복하고 애틋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사실 학생이라는 신분, 학생의 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엽고 열정적이며, 완벽할 수 없기에 솔직한 시기가 아닌가. 그런 귀엽디 귀엽고 순수한 열정의 시간을 이루지 못한 것에 집중하며 보내는 것은 구질구질하다.
앞으로 긴 세월 이리저리 계약직으로 전전할 미래 (흑흑) 좀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현재 가진 것에 집중하는 태도, 그리고 해내는 과정을 즐기지 못하면 정말 힘들어질 것이다. 안정적인 첫 직장 (e.g. 교수로 취직 혹은 테뉴어)까지 앞으로 2-10년은 걸릴텐데, 그 과정을 전부 '목적지에 아직 다다르지 못한 상태'로 보다보면 매일이 힘들겠다. 열심히 하면서 주어지는 기회를 잡는 것, 그리고 그 과정 자체를 즐겁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열심히 하는 것만큼 마무리가 중요한 시간이 점차 다가온다. 열심히 하고 생각도 지식을 축적해도, 가시적인 성과는 그것에서 나오진 않는다. 시작부터 끝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종결된 가 나와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내어놓는 것. 내 이상이 반+, 세상이 반-으로 잘 짜여진 포트폴리오. 그렇게 하면 좋겠다.
아무튼, 인생이란 게, 그리고 이 직업이라는 게 이루고 싶은 것에서 현재와의 간극 즉, 가지지 못한 것을 보며 나아가기엔 너무나 긴 여정이다. 부족함보다는 반짝이는 현재, 하루가 좋겠다.
이번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있다. 소설가로 성공한 그가 한 명의 '루티너'로 러닝을 하며 느낀점을 소개하는 책인데, 행복한 루티너의 삶은 결국 인간으로의 삶, 소설가로의 삶 역시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이끈다는 시사점을 준다.
아무튼, 행복하게 사는 것, 순수하고 기뻐하며 열정으로 가득한 가슴을 지니는 것이 제일 충만한 삶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