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now one Nov 06. 2020

그 사서는 왜 IT기획자가 됐을까?

본투비 사서가 솔루션회사로 간 이유

"전직(轉職)-하다"


직장생활 9년 차, 직업을 바꿨다.


아날로그중의 아날로그, 책을 정리하고 빌려주는 도서관 사서에서 도서관자동화솔루션(LAS, Library Automation System) 기획자로의 전직이었다.


전직 전까지, 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며 10년 전쯤 구축된 낡은 프로그램들을 사용했을 뿐이다. 게다가 내가 썼던 프로그램은 모두 아주아주 불편했다. 첫 번째 도서관에서 사용한 시스템은 상용되기 전에 테스터를 해주기로 하고 싼 가격에 설치한 것이었다. 두 번째 도서관에서 사용한 시스템은 도서관리 전문업체가 아닌 약국의 재고관리 프로그램을 만들던 업체에서 개발한 것이었다.(도서관리와 재고관리는 약간의 비슷한 측면도 있다.) 그다음에 사용해봤던 시스템들 또한 10년째 오류를 수정 중인 프로그램들이었다. 외양은 달랐지만 기능은 대부분 비슷했다. 정보에 민감하지만 변화에 빠르지 않은 '도서관'과 '도서관인'. 그것이 나의 지난 9년간을 대표하는 수식어였다.


계약직으로 몇 곳의 전문도서관과 대학도서관을 경험한 뒤, 솔루션 업체로 옮긴 이유가 몇 가지 있었는데

1. 이미 도서관의 나이 많은 직원들은 시스템을 사용하기 어려워해서 항상 나에게 질문했고, 따라서 시스템을 설명하고 교육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고

2. 사용하면서 불편하다고 느꼈던 점들을 통해  좀 더 나은 솔루션을 써보고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 

는 두 가지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녹록하지는 않았다. 우선 가장 큰 벽은 사용하는 용어였다.

'OS, 오라클, 데이터베이스(DB), 백앤드/프런트, JAVA, ERD, 버튼, GNB/LNB/FNB...' 등등 회의에만 참석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가 너무도 많았다. 개발자와 회의를 하고 나면 모르는 단어가 노트 절반에 가득했다. 회의가 끝나면 구글에 검색하거나 퇴근길에 이것저것을 찾아보는 날들이 일 년 넘게 지속되었다. 대신 고객과의 회의에서는 나의 강점이 드러났다. 고객들도 개발 용어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고객과 개발자들 사이에서 통로가 되어줄 수 있었다. 또한 도서관에서 갈고닦은 정리하고 문서화하는 능력이 IT업계에서는 희소성이 있어 높이 평가되었다.


또 다른 어려움은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고객과 나는 앞에 보이는 부분만을 생각한다. 

'A를 누르면 B가 나오도록 해주세요~'

라는 요구사항이 생기면, 개발자는 A를 눌러서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이용자의 권한, B를 실행시킬 때 보관해야 하는 내용들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기획자가 된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지금도 개발자의 뇌구조, 생각하는 방식은 일반인들과는 차이가 크다고 느낀다. 요즘 초등학생들에게 '코딩 교육'을 실시하는 이유도 개발자와 같이 논리적으로, 인과관계에 맞게 생각하는 방식을 교육하는 점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이런 몇 가지의 아주 큰 중대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전직 결정을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직업을 바꾸고 분야를 바꾸고 주변 사람을 바꾼 그 결정을 통해 나의 삶의 자세도 변화되었다. IT기획자가 된 사서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흥미를 자극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시작하는 나의 이야기가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혁신적인 변화를 꿈꾸지만 한 발을 내딛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자극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은 ENFP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