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나뜨 Oct 24. 2024

엘릭서

능력 각성의 대가

  모노레일에서 내리자마자 뛰지 않았다면 제때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트리플S, 말 그대로 S 모양의 큰 조각상이 세 개 붙어있는 동상 뒤로 일반적인 딱딱한 길드 사무실과는 다르게 굴곡진 창문들이 늘어선 건물이었다. 그리고 그 건물 밑에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M피에스 사의 비싼 기동차량들이 차례를 지어 홀로그램의 안내를 따라 주차시설로 들어가고 있었다.

  '추모행사 맞아? 다들 번쩍번쩍하게 차려입었네...'

  나는 걸어서 왔기에 1층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차려입은 저들과 달리 초라해 보인다.

  '... 됐어. 신경 쓰지 말자. 오늘 일만 지나면 더 이상 트리플S와 엮이는 일 없게 조심하자.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있다가 식이 끝나면 빨리 나오면 돼.'

  엔터테인먼트 회사답게 로비에는 소속된 그룹의 전신 패널과 방문하는 팬들을 위한 소소한 카페, 그리고 굿즈가 전시되어 있었다. 오늘은 추모행사가 있다고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 발광할 것 같은 것들은 치운 것처럼 보인다. 팬들의 출입도 통제하는지 한산한 모양새가 천성이가 떠났다는 사실이 더 크게 와닿는다.

  '하아... 가자.'


  안내데스크로 다가가자 앉아있던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기 추모행사 참석하러 왔는데요, 어디로 가면 될까요?"


  "초대장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그가 손가락으로 네모난 모양을 만든다.


  "초대장이요? 실물이 필요한가요?"

  처음에 연락이 왔을 땐 단순한 메시지 한 통이었는데.


  "아닙니다. 저희 길드에서 보낸 것이 있다면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메시지가 온 것이 있긴 한데... 그건가?'

  나는 데스크 위에 분리된 작은 판자에 손바닥을 펼쳐 올린다.

> 외부 시스템 [ 트리플S 플랫폼 ]과 연결되었습니다. 파일 업로드 또는 다운로드하시겠습니까?

  내 인포데이터가 트리플S 길드의 플랫폼과 연결되었다며 파일 업로드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며칠 전 트리플S 길드로부터 온 메시지를 선택해 업로드한다.


  "참석자 '유세성' 확인되셨습니다. 왼쪽의 노란색 통로를 이용하시면.. 아, 잠시만요."

  뭔가를 발견한 듯 심각한 얼굴로 그가 급하게 확인할 것이 있다며 자리에 앉아 패드를 두들긴다.

  "아, 유세성님은 UIP 참석자로 확인되셨습니다. 저희가 직접 행사장으로 안내드리겠습니다."


  "네? 아뇨, 괜찮아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저쪽 노란색 통로 맞죠?"

  검은 정장의 호위를 받으며 행사장에 들어가는 건 너무 시선 끌잖아. 나는 조용히 있다가 조용히 가고 싶다고. 최대한 그 어느 누구의 눈에 띄지 않게.


  "안됩니다. UIP 참석자는 참석자 개인의 능력을 이용한 VIP와는 달리 길드 내에서 지정한 참석자이므로 죄송하지만, 길드 입장에서는 VIP보다 더 신경 써야 하는 참석자입니다. 이번 행사가 추모행사라는 이름을 달기는 했지만, 아마 내용은 절대 추모만은 아닐 겁니다. 저희 가드가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가시죠."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건장한 검은 사내들이 내 옆을 싸고돈다. 내 양옆에 한 명씩, 뒤에 2명, 그리고 앞에서 길을 이끄는 안내데스크의 그 여직원분까지 5명이 나를 행사장까지 이끈다.


  '하아... 이게 아닌데.. 유천성의 가족이라고 하면 위협적일 수도 있으니까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긴 하겠지... 좋게 생각하자.'

  보안검색대의 빛에 반사되어 매끈 반짝이는 잘 닦인 명품들이 줄을 이어 들어가고, 사람들은 스캐닝 허브를 지나 가드의 안내를 따라 행사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도 똑같이 해야 되는 줄 알고, 천성이가 내게 준 그의 생령방울이 고이 담긴 크로스백을 벗어 손에 잡아들었다. 혹시 잘못 넣은 칼이나 가위가 있지는 않을까 뒤져보면서 말이다.

  가드를 따라 걸어 유명하고 저명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스캐닝허브가 아닌 바로 옆에 섰다.

  '엥? 이렇게 바로 옆에? 그러면 다들 쳐다보잖아...'


  나의 걱정처럼 날고 긴다는 이름 있는 사람들로부터의 시선이 느껴진다.


  'UIP는 나도 얻기 힘든 건데... 설마 숨겨진 재력가?'

  '누구지? 나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있다고?'

  '거지 같은 행색 하고는... 쯧.'

  '이번 행사에 외부인 참관도 있었나?'


  그들의 속마음이 들린다. 귀만 예민해진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읽을 수 있었나 보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 여직원이 가드와 나를 두고 안쪽으로 사라진다.


  'UIP 참석자 도착하셨습니다. 어디로 안내할까요?'

  '벌써요? 지금 어디 계시죠?'

  '허브에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자리는... 저곳으로 하고, 가드는 배치할 필요 없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여직원이 익숙한 목소리와 대화하는 것이 들려온다. 대화를 마친 여직원이 다시 밖으로 나와 나에게로 다가왔다.


  "들어가시면 될 것 같아요. 좌석은 U-13석이고, 들어가셔서 2시 방향 무대와 제일 가까운 곳입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가드는 같이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 안에 귀빈들도 있고, 일반인 분들도 있고 해서 시선을 끌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가드를 물리려는 그 익숙한 목소리와 행사장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두렵다.

  "저는 짐 검사 안 하나요?"


  "아, 보안검색대는 의미 없어요. 가드들의 능력으로 처리되거든요. 겉치레가 필요한 저런 사람들 때문에 보여주는 것뿐이죠."

  여직원이 가리킨 곳은 그 유명하고 저명한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대부분이 능력자가 아닌 일반인이겠지. 뭔가 자신이 뭐라고 된 것처럼 가드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오고, 가드의 도움을 받아야만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한껏 멋 부린 그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더 있어 보이려나. 저들 말이 맞지 뭐. 거지 같은 행색이 검색대를 통과하지 않았으니 자존심에 한 스크래치 했겠지.'

  나는 다시 크로스백을 매고, 조심스럽게 행사장으로 들어간다.


  익숙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셀리나였다. 복잡한 어른들의 사정이 아직까지도 괴롭히는지 그녀의 몰골이 아주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들어오는 귀빈들을 달래주며 덕인지 욕인지 모를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앞의 참석자들이 지나가고, 셀리나가 내 차례에 왔다.

  "짐 두고, 대기실에 잠깐 오세요. 시작하기 전에 해둘 말이 있습니다."


  "아, 네."

  나에게 해둘 말이라는 것이 선전포고인지, 협박인지 모르겠지만 천성이와 관계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행사가 그런 목적이기도 했고.

  내 자리가 있는 곳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열과 행을 맞춰 일반석에 앉아 있었지만, 나는 길드에서 지정한 특별관리 대상이기 때문이라서 그런지 그곳에는 나 말고는 앉을 사람이 없었다. 크로스백에서 천성이의 생령방울이 담긴 파우치는 재킷 안쪽 주머니에, 핸드폰은 손에 들고 행사장을 나서자 가드가 다가왔다.


  "대기실로 모시겠습니다."

  가드를 따라 행사장 뒤 쪽의 작은 공간으로 들어간다. 안은 별다른 것 없이 셀리나가 책상 뒤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종이 몇 장과 단단해 보이는 짐 가방이 놓여 있다.


  달칵!

  고작 문이 닫히는 소리였지만, 잠긴 듯한 이상한 소리에 더 이상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뵙네요, "

  조심스럽게 책상 앞 빈 의자에 앉는다.


  "일단 앉으세요. 식이 시작되기 전에 몇 가지 말해야 할 것들이 있어서 이렇게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다소 무겁고, 어려운 말이 될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초췌한 얼굴의 셀리나가 짐 가방을 열자 공간 없이 무언가를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보이는 자리가 보인다.

  "일단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날 일에 휘말리게 된 것은 저의 잘못이 맞습니다. 능력자들 간의 단순한 사고로 보기에는 어렵죠.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셀리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인다.


  "... 네."

  딱히 사과를 받아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정말 죄송한 말 입니다만, 서포터 유천성 군은... 그러니까 유세성 님의 동생 군은 사망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현장에 도착해 있던 수많은 군인들과 저희 길드 소속원들, 그리고 다른 능력자들이 수색해 참여했으나 사망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네?"

  이게 무슨 말인가. 유가족에게 해줄 말이라는 것이 희망고문뿐인가. 자기들이 한 짓이 뭔데, 지금!

  "지금 이게 무슨 말이죠..? 죽지 않았다뇨. 제가 직접 봤는데, 자기 힘에 못 이겨 검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것을 못 보셨습니까?"

  "당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설명을 드려야 할까요... 능력자들은 일반인들과 다르게 특수한 핵이 존재합니다. 능력 각성을 위한 다른 또 하나의 심장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이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능력자가 사망하게 된다면 몸이 품고 있던 능력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것을 막아주기 위해 그 핵이 실체화됩니다. 능력의 에너지가 농축된다고도 볼 수 있죠. 하지만 그날 그곳에서 서포터 유천성 군의 것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셀리나가 나를 바라본다.


  화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이 쏠려온다. 어떻게 표현해야 될까, 모르겠다.

  "그게... 어떻게 생겼는데요?"


  "일반적으로는 생령방울이라고 일컬어지는 데, 능력자들 사이에서는 엘릭서라고도 불립니다. 모양은 개인차가 있습니다만, 보통 그것이 농축되는 장소가 심장이기에 심장과 함께 뜯어냅니다.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엘릭서가 방치되면 안 되기에 능력자들에 한해 협회에서는 장례를 치르기 전 엘릭서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셀리나가 가방의 빈자리를 가리킨다.

  "하지만 더 큰 문제점은 유천성 군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블랙홀 너머로 빨려 들어가 어디에선가 살아있을 겁니다. 유천성 군을 이곳으로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 트리플S 길드는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힘들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알기에, 더욱 그렇기에 이런 자리를 빌려 말씀드렸습니다. 진정되시면 꼭 이번 행사에 참석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달칵, 달칵.

  조용히 열고 닫히는 문으로 셀리나가 나갔다. 대기실에는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난 봤어. 나만 본 건가 봐. 내게 건네준 건, 생명의 대가였어...'

  아픔에도 해맑게 웃고 있던 천성이가 떠오른다.

  '그러니까 천성이는... 확실하게, 죽었다는 거네. 나에게 그의 생령방울이 있으니까.'

  원래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직시하게 되니 착잡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고작 이 작은 게 이렇게나 중요한 물건이었다니, 도대체 능력자들 사이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추모식에서 이런 내용도 밝혀지겠지. 어딘가 그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안전한 복귀와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트리플S 길드가 될 것이다... 천성이는 뭘 알고 있었을까. 뭘 보았을까. 능력자는 뭘까.'


  울지 마, 유세성. 약한 모습 보이지 마. 이제 나 밖에 없어. 엄마도, 아빠도, 천성이도 없어. 이번 행사에 어떤 내용이 있고,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흔들리지 마. 절대로.


  달칵-

  살짝 문을 연다.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안부 인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아직 행사가 시작되지 않은 모양이다.

  '가자.'


  덤덤한 척, 괜찮은 척, 조용히 식장으로 들어가 자리를 찾아 앉는다. 셀리나가 마지막으로 들어오며 문이 닫힌다.

  '전쟁이야, 뭘 말하는지 한 번 보자고.'


  맨 앞의 관객을 바라보는 좌석에는 셀리나를 중심으로 트리플S 길드의 고위임원들이 자리했고, 그 뒤로는 개인의 능력에 따른 VIP좌석이었다. 모두 거대한 기업의 총수, 그들의 자식, 알아주는 능력자, 사업가,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이상하게 기자가 없네..."

  입바른 말은 언론플레이가 더 좋을 텐데 말이다.


  "시작하겠습니다,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부가 조용해진다.



  내용은 예상한 그대로 별 것 없었다. 셀리나의 잘잘못을 따지는 능력자 협회장님의 발언을 시작으로 거대 길드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부터 능력자에 대한 안전은 시민이 먼저인가, 능력자 본인인가를 지나 능력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정부의원과 피해는 어느 정도 타협하면서 도시 안보와 시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자는 시민안보협회, 트리플S 길드의 복잡하고 추잡한 더러운 뒷 이야기, 메개융합시술의 위험성 등 다양한 화젯거리가 지나갔지만, 모두 셀리나의 장황한 변명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추모식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마지막 질문받겠습니다."

  사회자의 말로 떠들썩했던 이곳이 금세 조용해지며 모두 손을 든다. 모두가 본인들에게 발언권이 주어지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아니요, 질문은 더 이상 받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다들 비슷비슷한 궁금증을 갖고 있을 테니까요."

  셀리나가 사회자에게 눈치를 주자 그가 당황한 얼굴로 내려갔다.


  "오늘 행사는 서포터 유천성 군의 추모 행사입니다. 다소 쓸데없는 질문이 있어 정중해주시길 바랍니다."

  셀리나가 불편하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내비쳤다.

  "오늘 이 자리에는 유천성 군의 가족인 유세성 님께서 참석해 주셨습니다."


  그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약간 숙인다. 용서를 바라는 눈빛은 아니었다.


  "능력자... 능력을 각성한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죠. 하지만, 능력을 각성하는 순간 우리의 몸에는 굉장한 악영향을 끼칩니다.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능력자는 각성의 대가로 매일 매 순간 고통을 느낍니다. 본인의 능력에 넘어가는 순간, 기괴 존재처럼 해괴망측하게 변해버릴 테니까요. 만약 능력자가 사망한다면 어떨까요? 능력의 에너지가 통제를 잃었으니 팽창하고 터지겠죠. 그래서 메개융합시술은 한가지 제일 중요한 해결책을 마련했습니다. 일시적이고, 일회성이지만 능력자의 사망 이후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방법뿐이었습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마지막 질문마저 발언권을 무시당한 많은 VIP들이 언성을 높이자 셀리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생령방울'입니다. 이쪽으로."

  자연스럽게 질문을 무시한 셀리나가 뒤쪽의 가드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하며 말을 이어간다.

  "이것을 보시면, "


  가드가 가져온 것은 살아있는 심장이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뒤엉켜 사람의 심장이라고 하기엔 어려워 보였다.


  "저, 저게 뭐야?"

  "실제 사람인가?"

  "으웩, "

  VIP의 소름이 내게도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생령방울입니다. 생령방울은 능력자가 사망할 당시 능력의 에너지가 폭발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심장과 융합하며 농축됩니다. 아, 이 심장은 인간이 아닌 기괴 존재라는 점 알려드립니다."

  셀리나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날. 제 능력으로 도시가 혼란스러웠던 그날, 서포터 유천성 군은 없어졌습니다. 시신도, 생령방울도 말이죠. 서포터 유천성 군은 사망하지 않았습니다."

  셀리나의 충격 발언에 VIP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은 사람들, 더 많은 뒷 이야기를 알아야 하는 사람들, 어떻게든 길드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 능력자 협회는 말할 것도 없고, 시민안보협회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가만히, 식장이 소란스러워진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는 셀리나.

  "자신의 능력이었던 검은 우주에 휘말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습니다. 어딘가에서 또는 어디론가 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희 트리플S 길드는 소속된 길드원, 능력자의 안전한 복귀와 최상의 회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녀가 혼란스러운 사람들 틈에서 조용히 허리를 굽혔다.


  "생령방울에게는 특별한 효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능력자들 사이에서는 '엘릭서'라고 불리는데요. 엘릭서는 고대의 만병통치약, 불로장생약이라 불렸습니다. 이렇게, "

  셀리나가 움찔움찔 살아있는 심장을 찢어 안의 피로 범벅된 생령방울을 꺼내든다.

  "이렇게 융합된 심장과 분리시키면 그 힘이 느껴집니다."


  두근!


  대기실에서 셀리나가 내게 말했던 다른 또 하나의 심장이었다. 진짜 심장처럼 쭈글쭈글하고, 혈관이 지나다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매끈매끈한 보석 같은 반짝임에 두근두근거리는 그 파장이 일반인인 내게도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것을 삼킨다면, "

  셀리나가 보기에 거북스러운 생령방울을 입에 가져다 댄다.


  "그만!"

  셀리나 팔을 누군가 붙잡는다.

  시간이 멈춘 듯 저항할 수 없이 느껴지는 거대한 아우라가 온몸 곳곳을 파고든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데, 불편하진 않았다. 그냥 말 그대로 시간이 멈췄다. 그리고 시야가 닫힌다.


  "뭐 하는 거야 지금?"

  셀리나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어온다.


  "이게 내 할 일이야."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멈춰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소리에 대한 애매한 능력 각성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시간선 개입이? 우린 종말을 막을 시간선을 찾았어. 너도 기다려왔던 일이고, 나도, 카밀라도 말이야. 네가 시간선에 개입하는 바람에 다시 리셋을 해야 할지도 몰라. 그만, 여기까지 해."

  "크리스, 세계의 종말? 맞아, 기다렸어. 나도 너도 걔도. 근데 이미 그 시간은 도시가 사라지고 멸망한 뒤야. 너도 알고 있잖아. 우리가 만든 세계가 이미 멸망하고 난 뒤라니... 나는 그 종말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어. 그래서 개입했어. 세계의 진실을 알아버린 한 아이가 있어서 치웠다고. 그게 문제가 돼?"

  "..."

  "봐봐, 답을 못하잖아. 자기도 모르면서, 너도 네 할 일을 해. 종말을 막을 시간 따위가 아니라 아예 없애버릴 방법을 찾으라고."

  "한 아이만 치웠다면 모를 일이지."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시간선에 개입한 건 두 번이야."


  "뭐?"

  셀리나가 놀란 것 같다.


  "이미 종말을 막을 시간선은 사라졌어. 할 일 그만두고, 끝 너머로 돌아와서 이야기해. 리셋을 할지 말지."

  "잠깐만, 두 번이라고? 어떻게? 내가 개입한 건 그 아이뿐이야."

  "뭐라고? 하지만 이미 이 시간선은 되돌리기 힘들어. 일단 돌아가서 정리하자."

  "기다려, 생각하고 있잖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셀리나!"

  "아이가 블랙홀로 넘어갈 때까지는 완벽했어.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공간의 틈 너머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정말 죽었다면? 엘릭서가 어딘가 존재한다면? 크리스, 전달자는 어디 있어?"

  "카밀라는 네 똥 치우러 갔어. 네가 이 짓을 벌인 덕분에 많은 사고들도 나타났거든. 어쨌든 편집자의 일을 뒤처리하는 게 전달자의 일이 아니겠어? 책임자 앞에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번 보자."

  "아니, 굳이 돌아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전달자한테는 그만 돌아오라고 해줘. 나는 여기서 계속 지켜볼게."

  "그만하라고 했잖아."

  "세계의 진실을 알아버린 그 아이가 죽었어. 확실해. 그렇다면 그의 엘릭서가 어딘가에 존재하겠지. 이건 변수야. 세계를 창조한 우리도 예측하기 힘든 변수. 혹시 몰라, 이 변수가 종말에 반하는 결과를 보이게 될지."

  "일단 돌아가. 네가 이 시간선에 있음으로 이미 피해가 커. 우리도 모르는 변수라면 더 위험하지. 일단 책임자와 이야기가 필요해. 돌아가, 셀리나."

  "아니, 난 돌아가지 않아. 엘릭서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아야겠어."

  "어떻게 찾을 건데? 당장 방법이 없잖아. 우리는 신인데, 어떻게 인간사에 개입하겠어? 설마 기억을 봉인할 생각은 아니지?"

  "네 걱정은 잘 알겠어. 하지만 나는 나대로 잘할 테니 너도 그만해."

  "아니, 어떻게 찾을 건지 말해. 그거 보고 돌아갈 거야."


  "엘릭서를 삼킬 거야. 엘릭서는 주인의 능력을 강제로 각성시키는 힘이 있어. 이 엘릭서의 주인은 탐지 능력을 가진 허브야.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네가 방해만 안 했더라면 더 쉬웠겠지."

  "... 해봐."

  "흐읍.., 끅. 으억.. 하아.... 하아..."


  두근!


  재킷 안의 파우치에 담긴 천성이의 생령방울으로부터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하지만 셀리나가 삼킨 그것과는 조금 다른 두근거림이다. 능력자마다 차이가 있는 걸까.


  "꽤 가까운 곳에 있었어. 왜 생각을 못 했을까?"

  "어디 있는데?"

  "바로 저기."


  그녀가 나를 가리키는 것 같다. 내게 그의 생령방울이 있으니까, 당연히 느꼈겠지.

작가의 이전글 레벨 0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