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부유중인.
원래는 와인을 참 좋아했다.
난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하는 타고나길 술이 안 받는 체질이지만, 의지로 이겨낸 사람.
취하는 느낌도 좋지만, 술이 맛있어서 먹기 시작했고, 먹다 먹다 보니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와인이 주는 분위기나 무게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진 않았고 그냥 뭉근하고 오묘한 맛이 좋았다.
그런데 그 무렵에는 맥주로 취향이 옮겨가고 있었다. 그 해에 사랑하던 친구는 소주를 좋아했고, 난 와인을 좋아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맥주에서 만났다.
소장부본이 도착한 그 날, 내 방 테이블 위에 뒹굴던 맥주도 그 맥주였다.
냉동실에 살짝 얼려 먹으면 천국 같았던 맛. 조금도 달지 않고 청량감만 남기던, 고기를 불판에 올려 놓고 먼저 벌컥벌컥 마시면 목구멍이 뚫리던 그 맛. 아 물론 벌컥벌컥 마시면 주량이 빨리 차서 벌-컥 정도.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오던 그 순간에 그 맥주는 서글펐다.
‘쟤는 왜 하필 저기서 뒹굴고 있고, 그 친구는 다른 소주잔에 잠식되어 있고, 보고 싶은데 꺼낼 수도 없고.’
그리고 창피했다.
얼마나 폐인같아 보일까. 스무살이 넘고 나서는 집 앞에 갈 때도 츄리닝 색을 고르는 나인데.
수면 바지를 입고 누워있는 이 모습.
아무한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그 장면이 구급대원들에게, 사랑하는 엄마에게 들킨 순간 그냥 사라지고 싶었다.
근데 사라질 에너지가 없어 그냥 누워있었고, 그냥 울었다.
그 날 엄마는 날 보자마자 이름을 불렀고, 구급대원 언니는 “어머니, 지금 다시 환자분 감정 올라가면 안돼요.” 라며 엄마도 진정시켰다.
폐끼치기 싫어하는 우리 가족.
구급대원들을 안심시키고 돌려 보냈고, 나는 엄마 얼굴을 보려고 했다. 볼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정신 상태가 안 좋다고 생각했고, 구급대원 언니한테 받아 놓은 주변 정신건강의학과를 엄마에게 검색해 보라고 했다.
그렇게 30분 정도 엄마가 아주 날 속터지게 했던 느린 엄마의 휴대전화로, 서툰 검색실력으로 뒤져서 나한테 보여줬을 때, 갈 수가 없었다.
그냥 내가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알량한 자존심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그 때도 스스로 통제 해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도대체 언제 나를 내려 놓을 수 있고, 언제 타인에게 완벽히 의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햇볕, 단절, 많은 맥주들, 약간의 가족, 강아지로 버텼고, 버티고 있다.
그런데 이 중 가장 큰 포션은 생각해 보면, 많은 맥주들과 강아지다.
말도 없고 피드백도 없고 행복해지는 신경전달물질만 잔뜩 나오는 것들.
이게 참 아이러니지.
인간은 타인이 필요한데 그것도 다 평온할 때 말이다.
내가 지금 누구를 보고싶어한다? 모임에 가고 싶다?
행복하다는 시그널이다.
그냥 정말 말린 명태처럼 쭉 짜졌을 때는, 아무도 보고 싶지 않고 그냥 맥주랑 뒹굴고 싶고, 강아지도 졸리기 직전에만 만지고 싶다.
그래서 지난 1년간, 난 또 나답게 맥주에 몰입하며 일본 맥주의 씁쓸한 청량감, 한국 생맥의 따라할 수 없는 크- 아저씨 감성, 원래 즐겨 마시던 프랑스 맥주의 밍밍한 느끼함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왜 와인을 마시지 않았냐, 왜 맥주에 잠시 눌러 앉았냐.
일단 갑자기 돈이 없는 것 같았고. 또래에 비해 꽤 많이 벌던 날들 팡팡 쓰던 내 모습도 낯설었고. 퐁퐁…?팡팡 써 보진 못한 듯.
‘없어질 것 같았고’가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와인은 너무 우아했다.
그냥 그 때는 이유 없이 갑자기 멀어졌는데 지금 돌아보니 너무 우아했다.
그냥 다 버리고 아저씨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생각을 언제 했냐면, 지난 주에 집 아래 1층 마트에 맥주를 사러 내려갔다가 와인을 골라 온 그 날.
그것도 내가 큰 불행없이 행복했던 날에 좋아했던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
아 난 그 때부터 우아할 수가 없었구나.
지난 주에는 와인 두 병을 천천히 마시며, 혹시 다시 조금 깐깐하고 우아해질 수 있나 기대했다. 그런데 왜 지금 내 옆에는 또 저 날의 서글픈 맥주캔이 있는지. 오늘은 금주하려고 했지만 브런치 작가 선정됐으니,
어쩔 수 없다. 짠.
내가 신동엽선생님이나 성시경씨처럼 슈퍼 간을 가졌다면, 진짜 대단한 애주가가 됐을 텐데.
아쉬움.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