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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잔 Mar 11. 2021

[단편소설] 살인자와 영화광 2

잠금장치


살인자와 영화광 1 - 첫 번째 방문자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zzyoun/97)

  순간적으로 안방을 택했다. 현관의 맞은편에는 옷방이 좌측으로는 화장실이 있음에도 최대한 멀리 달아나야 한다는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이다. '딸깍' 문을 닫음과 동시에 손잡이 옆 얇은 원기둥 모양의 잠금장치를 눌렀다. 이게 끝이 아니다. 손잡이를 부여잡고는 온몸으로 문을 밀었다. 요즘 새로 지은 아파트의 방문은 기다라고 얇고 공구만 있으면 잠금을 쉽게 해체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갇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미성년을 보호를 위한 간소화가 성년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니...' 그가 가지고 있는 송곳은 문을 따기에 실소가 나올 정도로 안성맞춤이다.


 놀랍게도 나는 이런 극단의 상황을 매일 밤 상상했다. 온갖 범죄 행위에 노출된 내가 어떻게 해쳐 나올지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하다 잠들곤 했다. 범죄 영화는 좋은 레퍼런스가 되었다. 악몽을 꾸기 일쑤였고 기상 후에도 피로감이 가시지 않는 날이 허다했으며 아내는 영화 좀 적당히 보라고 채근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매일 그러한 생각이 가득 찼던 것이 어떤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아 나에게 저 치를 데려다준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다면 이런 식으로 극복해 나가야겠다' 사실 구체적인 대안은 별 볼일 없다. 누가 봐도 가면 안 될 것 같은 곳으로 향한다든지, 혼자 무리에서 이탈한다든지 등등 영화의 초중반에 희생당하는 이들에게서 보이는 클리셰적인 행동은 하지 말자는 게 큰 골자였다.


 생활의 지혜를 발휘할 시간이다. 상황을 정리하자. 흐름을 내 쪽으로 당기자. 일단 저놈은 나보다도 왜소한데다 노인이다. 즉, 최후의 상황에 육탄전이 벌어진대도 승률이 없진 않다. 게다가 내 목적은 저 사람을 때려눕힌다기보다는 밀치고 어떻게든 바깥으로 탈출하는 것이다. 살인이 목적인가 강도가 목적인가. 문득 대문 앞에서 '여기가...'라고 읊조리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뒷말은 무엇이었을까. '여기가 아무개 집 맞습니까?'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저 사람은 린치를 가할 상대를 특정 지어서 온 것이다. '그래! 배달원으로 위장까지 하고 왔으니 계획범죄가 확실하다'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인데 전문 살인마가 아니기에 초장부터 상황이 꼬여 본인도 말린 것이다. 꽤 그럴듯한 논리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저 사람도 지금 당황해 허둥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퍼즐이 맞춰줬다. 안방으로 들어올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그의 행동에 대한 그럴싸한 명분이 생겼다. 이런 흐름으로 몰입하다 보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기까지 했다. 그 순간이었다. '딴-'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정적. 또다시 '딴-'. 정적. 


'쾅쾅쾅- 배달입니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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