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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Nov 15. 2018

#12. 옷 한 벌에 추억이 방울방울

- 서른살의 교대 새내기 라이프 -

2018.8.26(일) / 교대 입학 182일차.


결혼을 앞두고 혼자 살던 자취방에서 신혼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혼자 살면서도 짐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원룸이사로 부른 1.5톤 트럭 아저씨가 "이건 원룸 이사가 아니다" 라고 툴툴대실 정도로 말이다.


옷장을 정리하다보니 이런 걸 언제 입었나 싶은 옷들이 한가득이다. 살이 쪄서 입을 수 없는 옷들도 있고, 스타일이 너무 변해서 입기 민망해진 미니스커트와 핫팬츠도 있었다. 몇 년째 옷장에 묵혀두면서도 몇 년째 버리지 못했던 옷들을 큰맘먹고 다 내다버렸다.






그러던 중 발견한 여름정장 한 벌. 스물다섯살 취업준비생 시절에 샀던 옷이었다. 옷 한 벌에 추억이 줄줄이 딸려 올라왔다.


내 생애 처음으로 산 정장이었다. 더군다나 내 돈이 아니라 엄마에게 카드를 받아서 산 옷. 나는 대학 입학 이래로 끝없이 과외를 하고 돈을 벌어서 썼었는데, 취업을 준비하던 때에는 너무 바빠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생활비와 월세를 도와달라고 부탁했었다. 엄마카드로 정장을 사면서, '처음으로 등골브레이커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라는 식의 글을 SNS에 올렸던 기억이 난다.


이 옷은 1학기의 끝무렵인 5~6월 즈음, 여름방학 인턴 면접을 앞두고 구입한 얇은 여름정장이었다. 그렇지만 기왕 장만한 김에 나는 10월 면접에도 이 정장을 입고 다녔다. 외투를 따뜻하게 입으면 여름정장도 괜찮겠거니 생각했다가, 지금은 퇴사한 회사의 면접 대기장에서 대여섯시간동안 덜덜 떨었던 기억이 난다. 




정장에는 퇴사한 회사의 뱃지가 달려있었다. 면접을 보는 취준생에게는 회사 뱃지를 주지 않으니, 이 뱃지는 입사 이후에 채용을 담당하는 인사팀 담당자로서 부착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 시절, 입사한지 겨우 3개월이나 되었을까. 나는 선배에게 업무를 배우기 위해, 선배가 담당하는 신입채용 인적성고사 진행을 돕고 있었다. 새벽같이 출근해서 각 고사장에 출력물 붙이기 같은 허드렛일을 돕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취준생들이 물밀듯이 입장하고 있었다.


긴장과 피곤이 가득한 표정, 부시시한 머리와 도수높은 안경, 후줄근한 복장. 딱 6개월 전 내 모습이었다. 나는 주책맞게 그들을 보고 눈물이 났다. 딱 6개월만에, 나는 면접을 봤던 그 정장을 다시 입고 진행자로 이 자리에 서 있구나, 싶어서 말이다.




그 후에는 내가 선배에게 업무를 물려받아 정식으로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고, 처음 느꼈던 감격과 감사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취준생 입장에서 면접은 반나절 가량 진행되는 것이지만, 수많은 지원자의 면접을 관리하는 담당자 입장에서는 일주일이 넘는 기간동안 매일매일 면접을 진행해야 했다.


오전 7~8시면 지원자들이 면접장에 도착하기 때문에, 담당자인 나는 늦어도 새벽 6시까지는 출근을 했다. 혹시 중간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 내내 마음을 졸이다가 오후 6~7시가 되고 면접자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면, 퇴근이 아니라 그제서야 나의 본격적인 업무시간이 시작된다.


다음날 면접을 위한 사전 셋팅을 하고, 면접 진행때문에 미뤄뒀던 일반업무를 처리하고 나면 밤 9시, 10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그렇게 집에 가고 나면 또 새벽 5시에 일어나 저 여름정장에 팔다리를 억지로 쑤셔넣고 아직도 컴컴한 밤하늘을 보며 출근했던 것이다.



옷장 구석에서 이 옷을 꺼내는 그 찰나. 옷장 속에 함께 구겨넣어 두었던 그 모든 순간들이 굽이굽이 펼쳐져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입지 않는 많은 옷들을 버렸지만, 결국 이 옷은 버리지 못했다.


회사가 싫어서 도망쳤지만, 그 시절의 나 자신은 소중해서 버릴 수가 없다.






서른 살의 교대 새내기 라이프, <나의 꽃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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