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20190110 신예희 作
저는 책과의 인연, 책연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타이밍에 책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책과 나의 연(緣)이 만들어진다고 믿는 것이지요.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는 완벽한 타이밍에 저를 찾아와 주었고, 철없이 반백수 생활을 꿈꾸던 제게 따끔한 일침을 날려주었습니다.
브런치에 글이 뜸했던 지난 1월 한 달 간 저는 혼자서 대만여행을 했습니다. 제 몸집만한 가방에 한 달치 짐을 싸들고 대만 북쪽에 위치한 수도 타이베이부터 최남단 컨딩까지 대만 전국 일주를 한 셈입니다. 3박4일 투어로 가는 대만을 한 달씩이나 갈 일이냐고 물으신다면 풀어놓을 이야기가 한 보따리이지만, 그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혼자 하는 여행이니 정해진 일정도 없었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옮겼다가 그곳이 좋으면 며칠이고 눌러 앉아있는 진정한 '자유 여행'이었습니다. 피곤하면 하루 종일 호텔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기도 하고, 관광객들이 하루면 후다닥 둘러보고 갈 곳을 사나흘에 걸쳐 게으르게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여행의 끝자락 즈음, 바닷가에 혼자 앉아서 석양을 보고 있다가 문득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인생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짜로 죽고 싶다는 것은 아니고요. 더없이 완벽하고 행복하고 충만한 이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제 앞에는 소소한 행복과 소소한 짜증의 순간들이 버무려진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놀이공원에서 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 쓰는 5살 어린아이처럼, 철 없이 현실을 외면하고 싶던 그 순간 출판사에서 책 리뷰를 의뢰받았습니다.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라니. 30대에 두 번째 대학생활을 하며, 방학이라고 한 달 씩이나 여행을 하면서도, '더 놀고 싶다! 더 많이 놀고 싶다!'며 투정을 부리던 제게는 그 제목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던지요.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는 20년차 프리랜서인 저자의 에세이입니다. 프리랜서로 살아온 20년의 시행착오와 고충들, 그리고 노하우들을 꾹꾹 눌러담아 쓴 글들을 모아 엮었습니다.
책 초반에서 저자는 '프리랜서'라는 단어가 가진 고-오급진 판타지를 산산히 깨부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프리랜서라는 것이 마냥 자유롭기만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치열하고 전투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저자 자신이 20년간 겪은 에피소드들을 풀어놓습니다.
'이야, 대만여행 정말 좋다! 평생 이렇게 살면 좋겠다!' 며 철없는 망상만 하던 저는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쿡쿡 찔렸습니다. 한 달 동안 실컷 놀고 와서 '인생 좀 살아본 언니'에게 따끔한 회초리를 맞은 기분이랄까요.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니라 돈이다. 돈이 있으면 용기가 생긴다. 돈주머니를 딱 쥐고 있어야 이거다 싶을 때 예스를, 아니다 싶을 때 노를 말할 수 있다. 더없이 너그러운 표정으로.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p.174
그 '인생 좀 살아본 언니'는 정신차리라며 따끔한 회초리를 들더니, 그 다음엔 츤데레처럼 아주 친절하고 퉁명스럽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합니다. 저자 본인이 맨 땅에 헤딩하며 배운 노하우들, 그러니까 '멋진 프리랜서', '멋진 언니', '멋진 반백수'가 되는 노하우들 말이죠.
여행 중일 때든, 바쁘게 일할 때든, 번아웃 상태에서 회복 중일 때든,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마음을 살살 다독여 다스려야 한다. 잊지도 않고 또 오는 스트레스를 잘 구슬려가며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p.93
두려움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본능이다. 그러니 이 감정의 사용 방법을 익히고, 사이좋게 공존해야 한다. 두려움이 내 발목을 꽉 잡고 컨트롤하게 맡겨버리는 대신, 자동차의 브레이크 페달 역할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운전 중에 항상 발을 올려놓아야 할 곳은 엑셀이 아니라 브레이크 페달이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중에도 언제든 브레이크를 밟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안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p.94
결국 괜찮은 아이디어를 건지지 못한 채로 근무를 마칠 때도 있지만, 오늘 하루 공친 건 아니다. 끙끙대며 보내는 시간 역시 하루 일과의 일부다.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p.108
단기간 바짝 일하고 말 거라면 오늘의 나를 활활 불태워도 될지 모르지만, 가늘고 길게 오랫동안 돈을 벌어야 하니 몸을 아끼고 사린다.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p.109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에서 저자는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을 날 것 그대로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지랄이 있다. 하면 할수록 좋은 지랄, 돈지랄이다. 얼마든지 시켜주시라. 아주 잘할 자신이 있다. 내 안에는 엄청난 잠재력이 숨어 있다. 그저 돈이 없으니 지랄밖에 못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p.163
그리고 그 솔직한 욕망을 현실에 안착시키기 위한 냉정한 자기반성과 현실인식을 덧붙입니다.
어쩜 그렇게들 짠 것처럼 한목소리로 자신은 내성적이라며, 단체생활을 할 자신이 없다며, 될 수 있으면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일하고 싶다고들 한다. 저기 잠깐만요, 프리랜서로 일하려면 영업도 실무도 돈 달라는 소리까지 혼자 다 해야 하는데요? 묻고 싶다. 당신은 1인 자영업자가 되고 싶은 겁니까, 아니면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겁니까.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p.23
한 마디로《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는 구질구질한 현실과 폭신폭신한 낭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기가 막히게 하고 있습니다. 책을 제 마음대로 한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말 그대로,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꿈꾸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하겠다는 다짐은, '끌려 가는 삶'이 아니라 '끌고 가는 삶'을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