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친구들과 함께 광주 남구 봉선동에 있는 '스페샬나잇트 봉선점'에 간 일이 있었다.
이곳은 이번에 논란이 된 광주 첨단지구 '보이저' 소재 스페샬나잇트 첨단점과 같은 사업주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당시 나는 이 가게의 메뉴판이 엔화로 돼 있는 걸 보고, 정말 솔직히 말해서 '같잖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함께 간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야, 무슨 메뉴판 가격 표시를 엔화로 해두냐. 엔화 내밀어도 되는 거냐?"
컨셉에 충실하고 말고를 떠나 고객을 불편하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엔화 환율을 적용하는지, 단순히 x10 해서 계산하는지에 대한 표기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그날 그 가게를 나와 그 가게에 대한 리뷰를 썼다면, 이 부분을 지적하며 "재방문 의사는 없다"는 멘트를 남겼을 것 같다.
나는 이후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도쿄올림픽 3관왕에 빛나는 안산 선수의 '매국노' 언급 이후 이 가게가 타겟이 됐음을 알게 됐다.
안선 선수가 이 가게 옆에 있는 '국제선 출발' 콘셉의 간판 사진을 올리며 "한국에 매국노 왜케 많냐"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렸다. 이건 변명의 여지 없이 잘못된 발언이었다. 이후 안산 선수의 게시물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해당 가게가 지목됐다.
나는 '도쿄올림픽 3관왕'이라는 불멸의 업적을 쟁취한 안산 선수가 숏컷을 한 어린 여성이자 공연히 전장연 등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선수임을 이유로 부당한 공격을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일은 객관적으로 해선 안 될 일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부당한 공격이 있음을 이유로 옹호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안산 선수도 사과의 의사를 밝히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저의 언행으로 생업에서 고군분투하시는 모든 분들이 받으셨을 피해와 마음의 상처는 제가 감히 헤아릴 수 없었던 것 같다. 이 점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깔끔한 사과였고 이 일이 더는 언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일이 확산되는 모양새를 보니, 참 마음이 불편하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대한체육회에 공문을 보내 안 선수 징계를 요청했고, 자영업 단체 대표는 안산 선수를 고소했다. 그러자 반대 측에서는 자영업 단체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라며 "알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행히 해당 자영업 단체 대표는 어제, 고소 취하 의사를 밝혔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을 종합해 보는데,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안산 선수를 옹호하는 측과 안산 선수를 비토하는 측이, 서로 다른 상대를 향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안산 선수를 비토하는 이들은 안산 선수를 비난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같은 공격에는 분명 안산 선수가 숏컷을 한 어린 여성이자 '페미니스트' 낙인을 받고 전장연을 지지한 점이 개입돼 있었다. 윤서인씨가 본인의 SNS에 쓴 "전부터 이런 친구인 줄 잘 알고 있었다"라는 말이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산 선수를 옹호하며 발화된 "페이커가 같은 행위를 했다면 애국자라고 박수를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 또한 동의할 수 없었다. 안산 선수가 아니라 그 누가 했어도 똑같이 잘못된 행위였기 때문이다. 안산 선수의 정체성과 상징성 때문에 그가 더 많은 비난을 받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그냥 넘어갈 일이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안산 선수를 옹호하는 측은 안산 선수를 비토하는 측 대신 '눈에 띄는 상대'를 타겟으로 잡았다. '스페샬나잇트 대표'가 공격 대상이 됐다.
계정만 만들어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트위터에 들어가 실시간 이슈의 흐름을 보니 "안산 선수에게 사과문을 쓰게 만든 매국 기업 스페샬나잇트를 오늘부터 불매한다"는 글이 있었다.
이 글은 무려 '52만 명'에게 전달되었으며 지금도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안산 선수를 옹호하는 이들은 그를 비토하는 이들과 싸우는 대신, "스페샬나잇트 대표는 매국노, 친일파가 맞다"는 주장을 밀고 있었다. "맞는 말 했는데 왜 사과하게 만들었냐"는 식이었다. 나는 여기서 '매국노', '친일파'라는 워딩이 대단히 위험한 전체주의적 언어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초 커뮤니티가 이번 일을 빌미로 안산 선수에게 부당한 공격을 가하는 일에 맞서는 일에는 동의할 수 있다. 선수가 이미 정중히 사과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만두는 게 맞다. 그러나 공격의 화살은 거의 대부분이 일본풍 가게를 운영했던 업체 대표에게 집중돼 있었다. 그가 친일파이자 매국노라는 논리가 완성되어야, 안산 선수가 한 행위는 조금도 잘못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가게 대표가 공격 대상이 됐다. 직후 새로운 주장이 나왔다. 그 가게로 가는 길에 일본 신사 입구를 상징하는 조형물인 '토리이'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역시 안산 선수가 할 말 했다는 이야기가 다시금 확산됐다.
그래서 과연 그 '토리이'가 정말 스페샬나잇트와 관계된 것인지 확인해 봤다.
스페샬나잇트 첨단점은 광주 광산구 첨단지구의 상업시설 '보이저(Voyager)'에 입점해 있다. 보이저를 만든 건 정정원씨가 대표로 있는 ㈜시너지타워라는 회사였다. 이 회사에서 전체적인 그림을 짜며 일본 여행지 전통 주점을 연상케 하는 '트립 투 재팬' 컨셉으로 이 건물 지하 1층에 이자카야와 맛집을 유치했다.
이 과정에서 광주에서 일본풍 이자카야를 운영하던 스페샬나잇트 측이 '돈을 내고' 수십 곳의 일본풍 주점 중 한곳으로 입점하게 된 일이 이번 일의 전말이었다.
즉 해당 상업시설은 ㈜시너지타워가 설계했고, 지하 1층의 이자카야 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주점 중 한곳에 불과한 '스페샬나잇트'가 입점한 상황이었다.
오늘자 <광주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조형물은 보이저 건물 마케팅 팀에 의해 설치됐다. '토리이'가 문제였다면 이 건물 마케팅 팀이나 이 건물을 운영하는 '시너지타워'가 비판 대상이 됨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세입자'에 불과한 영세한 자영업자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다. 그가 만약 '토리이' 조형물을 문제라고 봤다고 한들 건물주에게 항의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게다가 안산 선수는 '토리이'를 언급한 사실이 없다. 토리이가 있기 때문에 문제라는 지적은 안 선수를 옹호하기 위해 사후적으로 만들어낸 주장에 불과했다. '토리이'가 과연 문제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여러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토리이는 일본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그 연장선에서 한국 곳곳에서 일본적 상징을 드러내는 곳에 크고 작은 토리이가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참에 이 땅에 있는 토리이 조형물을 모저리 색출해 파괴라도 하는 게 맞을까?
내가 이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업가였다면 나는 바로 없앴을 거 같다. 토리이를 설치해 둔 것도, 엔화 메뉴판을 쓴 것도 사업가로서의 감각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곧바로 불특정 다수에게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 땅에 이슬람 사원이나 기독교 교회, 일본 신사 등이 생겨 해당 종교를 가진 이들이 자유롭게 종교 활동을 하는 일은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종교의 자유란 '그 이상한 것'에 대한 믿음마저 보장되어야 함을 골자로 한다. 남산 등에 신사를 세워놓고 참배를 강요했던 과거의 아픈 역사를 충분히 비판하면서 그와 동시에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를 존중하는 체제로써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은 명백히 병행될 수 있는 일이다. 국민정서를 언급하는 일도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국민정서상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대구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이슬람 사원은 금지되어야 하고, 동성혼 합법화는 추진되어선 안 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풍 컨셉 식당이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상황에서, 특정 조형물이 다수의 한국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치우는 게 합리적인 영업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조형물 설치는 어디까지나 자유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도, 옹호도 문제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것을 치우는 것,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그곳에 가지 않는 것 모두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이번 일은 애초부터 안산 선수의 행위에서 비롯됐고, 그가 사과의 의사를 명확히 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일의 전개 과정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일을 거론하는 건 본말전도라고 생각한다.
이번 일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은 '스페샬나잇트' 대표였다. 그는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사회적으로 노출되지 않고 살아온 평범한 개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불특정 다수의 비난의 화살이 날아드는 상황은 무척이나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일각에서는 그가 이번 일을 노이즈마케팅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직접 당해 본 사람으로서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안다. 이번 일로 인해 실제로 가게에 방문하는 사람이 늘어 매출이 올라도, 일상의 순간을 온전히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일본풍 주점을 운영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사회적 비난 대상이 됐다. 그래서 입장을 발표하고 어머니의 걱정 어린 메시지도 공개했다. 그러자 갑자기 자신이 입주해 있는 건물의 마케팅팀이 만들어둔 '토리이' 사진을 들고 나와 당신은 '친일파', '매국노'가 맞다는 주장이 수십만 명에게 전달된다. 이 업체 대표가 이와 같은 부당하고도 억울한 공격을 이겨내고 일상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안산 선수도 사과한 만큼 그에게 매국노니 친일파니 하는 부당하고도 잔인한 비방을 쏟아내는 일은 이제 그만 중단됐으면 한다.
내 경험상 이와 같은 일을 겪은 개인은 그가 아무리 굳은 심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한동안 끔찍한 고통 속에서 지내게 되며 다니지도 않았던 정신과에 다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일은 벌써 수백만 명에게 노출되었으며 개인으로선 견딜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고 있다.
지금 그를 향해 발화되고 있는 '매국노', '친일파' 같은 발화들은 명백한 범죄 행위이며 민·형사상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는 행위다. 게다가 '토리이'는 세입자인 그가 아닌 건물주 및 건물주의 마케팅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진짜 행위자가 아닌 그 행위자에게 돈을 내고 공간을 빌려 영업을 하는 이를 공격하는 건 더 약한 자에게 공격을 집중하는 비열한 행위다.
반일 '감정'이란 대체 무엇일까? 다양한 생각이 있겠지만 확실한 건 그것들 대부분은 일본을 향해 발산되지 않는다. 반일 '감정'은 그 대부분이 한국인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번 일로 피해를 본 건 일본이 아닌 광주의 자영업자들이었다. 나는 한일 관계에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는 문제들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를 위해 실제 일을 하는 광주의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같은 곳들의 활동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파시스트가 되지는 말자.
이번 일의 여파가 취약한 두 개인에게 발산된 것도 참으로 상징적이다. 올림픽 3관왕이지만 숏컷을 하고 '페미니스트'라는 식의 비난을 받았던 광주 출신의 양궁 선수와 일본풍 가게들을 줄지어 영입한 건물주 밑에서 영업을 하던 자영업자가 타겟이 됐다. 이번 일은 이제 그만 끝이 났으면 좋겠다. 두 사람을 향한 부당한 공격도 이제 그만 잦아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