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나의 쓸모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이면지

by 제이에스

일찍 출근해서 마음을 다잡고 ver26로 이름을 바꿔 다시 작성했다. 기획서를 작성하는 데 문득 이안 씨가 생각났다. 글은 쓰고 있을까? 참나.... 내 일도 제로 못하면서 걱정은.... 웃긴다.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살짝 후회가 들었다. 그래도 멋지다는 말에 용기가 났다. 위로도 되었다. 맨날 욕만 먹었던 나에게 그 한마디는 큰 울림이 있었다. 너무 고마운 이안 씨.... 꼭 잘 되길 기도한다. 이안 씨의 말을 가슴속에 되새기며 기획서를 수정했다.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어안이 벙벙하다. 드디어 통과했다. 게다가 칭찬까지.... 크게 변한 것 없었는데.... 부장님 오늘 로또라도 당첨되신 걸까? 신기하다. 아무튼 통과다!!! ver30까지 가지 않길 바랐는데,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되었다. 다행이다. 기획서를 수정할 때부터 느낌이 다르긴 했다. 갑자기 이안 씨 생각이 난다. 이안 씨 말에 용기가 난 것일까?


'사랑해. 힘내. 계속해. 너니까.'


너무 고마운 그 말.... 너무 고마운 이안 씨.... 이럴 줄 알았다면 포장마차에 있는 메 다 사줄걸 그랬다. 정말 너무너무 고마웠다. 오늘 포장마차에 이안 씨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 홀가분한 해방을 맘껏 누리러 오늘은 화장실이 아닌 옥상으로 간다.


옥상이 이렇게 생겼었나? 얼마 만에 올라와 본 옥상인가. 옆에서 나는 담배 냄새도 향기롭다. 아 이 경치.... 뻥 뚫린 경치처럼 내 마음도 시원하게 뻥 뚫려 있었다. 동료들에겐 별 거 아닌 일이 나에겐 왜 이렇게 훈장 받는 느낌인지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나를 보면 정말 얼마나 스트레스받고 힘들었는지 느껴져 안쓰럽기도 했다.


응? 근데, 윤 대리 표정이 왜 저러지? 얼마 전 내 얼굴을 보는 것 같은 이 느낌....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윤 대리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구겨져 있어?"


"아.... 과장님. 하.... 잘하고 싶은 데 일이 잘 안 되네요. 벌써 세 번째 반려예요. 뭐가 문제일까요?"


세 번째라.... 웃음이 나다. 윤 대리는 우리 부서로 발령 온 지 한 달밖에 안 되었다. 아직 내가 26번 반려당한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내 상황이 왠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또 다른 김 과장이 있으면 안 되니 나는 나의 상황을 얘기해 주었다.



"윤 대리. 이 서류 보여? 오늘 결재받은 서류인 데, 결재받는 데 얼마나 걸렸을 거 같아?"


"김 과장님, 부럽습니다. 저도 그렇게 결재받고 싶어요. 노력해야겠죠?"


"한 번에 결재된 걸로 잘 못 생각하는 거 같은데, 내가 이거 결재받으려고 부장님 방을 26번 다녀왔어. 생각보다 부장님 방 문턱 높다."


"..... 무슨 말씀이세요?"


"26번 반려당한 서류라고. 그리고 우리 부장님 깐깐하셔. 3번 반려는 아주 양호한 거야. 그러니 힘내. 나 반려당한 서류 줄 테니깐 참고해 봐."


속으로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윤 대리에게 과정이 길고 고될수록 결과를 성취했을 때의 그 달콤함을 선배로 알려주고 싶었다. 26번 반려당한 내가 스킬을 가르쳐줄 급은 안되니 이게 내가 선배로써 주제넘지 않고 해 줄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았다. 미안하다. 이것밖에 못 해줄 수 없는 선배라서....


그래도!! 오늘 이 선배는 기분이 좋단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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