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무형의 꽃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민 Dec 11. 2016

#2. 뜻밖의 재회 (9)

2014.09.03. 나미비아

 “어디에서 왔어요?”

 KFC를 나서자마자 같이 가자고 말을 건 아저씨가 물었다.

 “한국이요.”

 “그러면 한국인 만나는 게 편하겠네요. 그렇죠?”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현지에 한국인이 있다면 이것저것 물어보기가 좋을 것이다. 나는 숙소를 구할 때도 굳이 한인 숙소를 찾아가지는 않았으나, 또한 굳이 한인 숙소를 피하지도 않았다. 한국에 소속된 사람으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나라 사람보다 더 많이, 또한 소속체로서 주관적으로 할 수 있는 입장이지만, 한 명의 개인으로서 하는 여행에서 한국에 대한 제약을 두고 싶지는 않았다.

 “좋아요.”

 “일단 따라와 봐요.”

 그들은 나를 시내로 안내했다. 빈트후크는 큰 도시였으나 케이프타운처럼 마천루들이 즐비한 곳은 아니었다. 시내는 적당한 높이의 건물과 적당히 세련된 상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또한 케이프타운과 확연히 다른 점은 인종이었다. 케이프타운에는 백인과 흑인, 종종 다른 인종도 눈에 띄었으나 이곳의 도로 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흑인이었다. 아주 가끔 누가 봐도 여행자로 보이는 백인이 몇 명 지나다닐 뿐이었다. 또한 이곳의 색깔은 황갈색이었다. 건물이나 도로가 없는 곳은 거의 황무지였다. 케이프타운의 초록과 참 다른 느낌이다.

 나를 인도하던 아저씨는 한 잡화점으로 들어섰다.

 “얘기해보세요.”

 앉아있던 종업원은 나에게 무어라고 이야기를 했다.

 맙소사. 중국어였다.

 “나 중국어 할 줄 몰라요. 한국어랑 중국어는 다르거든요.”

 “아, 그래요?”

 아저씨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나를 데리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대사관에라도 갈래요, 아니면 잘 곳이 급해요?”

 대사관이라니.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곳이다. 여행 중에 내가 대사관을 가볼 일이 과연 있을까?

 “물론 잘 곳이죠.”

 아저씨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숙소를 잘 모르거나 거리가 먼 것 같은 느낌이다.

 “음, 따라와요.”

 우리는 근처에 있던 상당한 규모의 쇼핑몰인 원힐 파크를 통과하고 시외로 벗어난 뒤 이삼십 여분을 걸었다. 이윽고 게스트 하우스 세 채가 연속으로 붙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전화 있으면 줘 봐요.”

 그에게 전화를 건네니 자신의 전화번호를 찍어주었다.

 “문제 생기면 연락해요. 이리로 찾아올게요.”

 그는 친절하게 자신의 이름까지 적어주었는데, 성이 ‘비코’였다. 함께 한 시간 정도 숙소를 찾아 준 비코 아저씨는 나와 작별인사를 하고 자신의 일행과 함께 다른 길로 떠났다.

 그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세 채의 숙소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 정문에 달린 초인종을 눌렀다.


 자동으로 열린 문 안쪽으로 들어가 응접실로 가니 백인 여자 한 명이 앉아 있고, 옆에서는 커다란 개가 시끄럽게 짖고 있었다. 여자는 개를 진정시키고는 말을 건넸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도미토리 있나요?”

 “아니요, 저희는 일반실만 있어요.”

 “1박에 얼마예요?”

 “620 나미비아 달러요.”

 나는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1 나미비아 달러는 1 남아프리카 공화국 화폐인 랜드와 같은 가치를 가진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나미비아 달러를 쓸 수 없지만 나미비아에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랜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 결국 620 나미비아 달러는 한국 돈으로 6만 원이 넘는다는 뜻이다.

 “얼마 정도 가격의 방을 찾으시는데요?”

 한껏 벌어진 내 입을 보고는 그녀가 물었다.

 “200 나미비아 달러 아래로 찾고 있는데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빠르게 영어로 무언가를 적어나갔다.

 “그러면 이 세 군데 중에 하나로 가셔야 해요.”

 그녀가 적어 준 곳은 ‘카드보드 박스’, ‘카멜레온 백패커스’, 그리고 무언가 읽기 어려운 한 곳이었다. 각 숙소 옆에는 친절히 숙소가 위치한 도로 이름을 적어 주었다.

 “정말 고마워요.”

 “천만에요.”

 숙소 이름이 적혀 있는 종이를 보물단지처럼 간직한 채 이름은 모르겠으나 고급스러운 게스트 하우스를 벗어났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나온 지 삼십 분이 지난 나의 앞에 하나의 표지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실제로 빛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표지에는 [만덤 드머파요 애비뉴]라고 적혀 있었다. 여직원이 적어준 세 도로 중 하나였다. 이 도로 어딘가에 ‘카멜레온 백패커스’가 있을 것이다. 왼쪽으로 갈 것인가 오른쪽으로 갈 것인가의 세상 무엇보다 중대한 문제를 놓고 결단력 있게 오른쪽을 선택했다. 사실 그냥 찍었으므로 무언가 시내를 한참 벗어나는 느낌이 들면 다시 돌아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윽고 나는 환호를 질렀다. 십분 쯤 걸으니 왼쪽에 카멜레온이 그려진 표지가 눈에 띄었다. 글자를 살펴보니 ‘카멜레온 백패커스 호스텔’이라고 적혀 있다. 초인종을 누르니 직원이 나와서 문을 열어 주었다.


 “두 밤 묵을 수 있나요?”

 “하루 밖에 안 될 텐데, 잠시 만요.”

 그녀는 장부를 뒤적이다가 곧 말했다.

 “아, 가능하세요.”

 카멜레온 백패커스는 도미토리 1박에 150 나미비아 달러였다. 한화로 15,000원이므로 아주 저렴하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가격이었다. 보증금 50 나미비아 달러를 포함하여 총 350 나미비아 달러를 내고, 체크인 시간까지 1시간 반을 기다리다가 12시에 침대를 배정받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숙소에는 가지고 있는 플러그들에 맞는 콘센트가 있었으나 이 숙소에는 해당되는 콘센트가 없었다. 나미비아의 콘센트는 커다랗고 동그란 구멍 세 개가 뻥 뚫려있는 모습이었다. 플러그와 마실 물을 사러 시내를 한동안 활보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비해 날씨가 상당히 더워진 것이 느껴졌다. 특히나 주변에 식물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서 더위가 더욱 크게 와 닿았다.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알게 된 점은 카멜레온 백패커스가 시내와 정말 매우 가깝다는 점이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걸어왔어도 15분에서 20분이면 도착할 거리였다.

 아까 지나왔던 쇼핑몰의 1층에 위치한 픽앤페이에서 작은 병에 들어있는 물과 플러그를 사고 빈트후크 남서쪽에 위치한 나미브 사막의 ‘소서스블레이’와 ‘데드블레이’라는 곳에 가고 싶어서 시내를 돌아다녔는데 케이프타운 시내와 다르게 투어 사무실이 보이지 않았다. 겨우 찾은 여행자 정보 센터에서도 숙소 정보나 해변도시 ‘스바코프문트’에서 할 수 있는 액티비티에 대한 소책자는 있었으나 소서스블레이나 데드블레이라는 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정처 없이 시내를 걷다가 버스 터미널에 있는 인터케이프 버스 사무실에 들러 스바코프문트에 가는 버스에 대해 물어보았다.

 “월, 수, 금, 토 오전 10시에 버스가 있어요.”

 “가격은요?”

 “280 나미비아 달러에서 420 나미비아 달러까지 요일에 따라 달라요.”

 버스 가격이 요일에 따라 달라지는 건 또 처음 보네. 일단 사막과 스바코프문트, 가려던 두 곳 중 한 곳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얻었으니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다시 픽앤페이에 들러 12 나미비아 달러의 스파게티 면과 각각 6.5 나미비아 달러의 버섯 크림 스프 가루, 야채 크림 스프 가루를 사고 10 나미비아 달러의 물 1.5리터와 8 나미비아 달러의 마운딘듀 600밀리리터를 샀다. 아무래도 점점 저렴한 스파게티와 탄산에 중독되고 있는 것 같다.


 “저기요, 혹시 일본인이세요?”

 장 본 물건들이 들어있는 봉투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난데없이 한 남자가 일본어로 말을 걸어왔다.

 “아니요, 한국인인데요.”

 일본어로 대답하며 그의 얼굴을 보았다. 키는 그다지 크지 않았으며, 머리는 진한 흑발이었고 얼굴은 전반적으로 까무잡잡했다. 나이는 삼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다.

 “아, 그런가요. 오? 일본어 할 줄 아시네요.”

 “네, 조금.”

 뭐랄까. 상당히 활발한 사람 같다. 말투에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과장이 묻어 있었다.

 “에에, 대단하네요! 아, 실은 일본인 여자 한 명이 에토샤에 같이 갈 일행을 구하고 있는데요. 혹시 관심 있으세요?”

 “에토샤요?”

 “네. 만약 가시면 일단 두 명인데 카드보드 쪽에 묵고 있는 일본 여자 한 명 더 갈 수도 있다고 해요. 이건 카드보드 쪽 연락 기다려 봐야 하고요.”

 그는 말을 하다가 내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에토샤 모르세요?” 

 “모르는 곳인데요.”

 그는 놀랍다는 듯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엄청 유명한 곳이에요. 남쪽에 나미브 사막이 있다면 북쪽에는 에토샤가 있죠.”

 “아! 제가 가고 싶은 곳이 나미브 사막이에요.”

 “마침 제가 어제 다녀왔는데. 굉장히 대단한 곳이었어요. 앉아서 이야기할까요?”

 그는 거실 한쪽에 있는 커다란 탁자를 가리켰다. 나는 짐을 방에 정리해 놓고 기다리고 있던 그의 앞에 앉았다.

 “자, 이게 나미비아 지도예요.”

 그는 탁자에 커다란 나미비아 지도를 펼쳐 보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2. 뜻밖의 재회 (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