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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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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Mar 05. 2017

#3. 남쪽을 향해 달리는 차 (10)

2014.09.10.~09.11. 나미비아

 타카코 누나는 이후로도 이집트에서는 ‘하얀 사막’ 투어를 해 볼 것과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섬에서 특별히 생각해 놓은 숙소가 없다면 YMCA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등의 조언을 주었다.

 이윽고 해가 서쪽 하늘로 충분히 내려온 오후 5시 30분이 되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가게에서 고기, 맥주, 감자를 산 뒤 야영장에 텐트를 쳤다.

 오늘은 어제보다 좋은 점이 하나 있었는데, 텐트를 치는 구역에서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우물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는 점이었다. 전망대는 오카우쿠에조 내부에 위치해 있어서 폐장 시간에 상관없이 언제든 가서 볼 수 있었다.

 대지가 태양을 집어삼키며 온 세상에 검푸른 빛을 뿜어댔다. 낮의 찬란함은 주황색과 보랏빛으로 변색되어갔다.

 “저기 봐요. 기린이 오고 있어요.”

 다섯 일행은 전망대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 연신 셔터를 눌러대었다. 시야의 오른쪽에서 등장한 기린은 느지막이 호수로 다가와 다리를 삼각대처럼 펼치고는 물을 핥았다. 곧이어 여우와 임팔라도 합류했다. 하늘이 빛을 잃어가며 동물들이 실루엣으로 변해갔다. 초원 위에 덩그러니 놓인 호수와 그 주변에 모인 동물들의 모습이 정제되지 않은 채 뇌리에 박혔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드니 하늘에 별들이 박혀있었다.


 고기, 버터 감자, 콘 버터, 라면, 맥주가 저녁 식사였다. 식사를 준비하던 도중에 계속 전망대를 서성이던 타카코 누나가 돌아와서 “코뿔소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했으나, 하던 준비를 마치고 가보니 이미 사라진 뒤였다.

 식사를 하다 보니 가까운 곳에서 한국어가 들렸다. 바로 우리 옆 구역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한국 분이시구나.”

 우리 일행은 아주머니가 이야기할 때를 제외하고는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서로 식사가 마무리되어갈 즈음에 그쪽 일행에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렌터카 여행 중이세요?”

 “네, 저랑 여기는 한국인이고. 저 뒤에 있는 친구는 일본인이에요.”

 젊은 한국인 남녀와 일본인 남자로 이뤄진 일행이었다.

 “서로 어떻게 아시게 돼서 같이 여행하시는 거예요?”

 “저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만났어요. 이 차도 남아공에서 빌려서 끌고 온 차고요.”

 그녀는 뒤에 보이는 차 한 대를 가리켰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유키 형과 타카코 누나도 그 일본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아프리카만 여행하시는 거예요?”

 “일단은요. 호주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나와서 여행하고 있어요.”

 “호주요? 저도 호주에서 돈 벌어서 왔는데.”

 그녀는 1년간 농장에서 일 한 뒤, 이후 캔버라에서 2년 동안 더 일을 하고 나와서 여행 중이라고 했다. 호주의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최장 2년까지 가능하므로 다른 비자를 활용해서 더 머물다가 나왔다고 한다.

 유키 형, 타카코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일본인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레게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에 문제가 조금 있어요. 어디에 박은 건 아닐 텐데 이 부분이 고정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는 차 앞부분의 위태로워 보이는 부분을 가리켰다.

 “아, 이거 해결할 수 있겠는데?”

 옆에 서 있던 유키 형이 차로 다가섰다. 전문자의 기운을 풍기는 늠름한 뒷모습이다. 어느새 아주머니와 아저씨도 옆에 와서 구경 중이었다.

 고장 난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 여자분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여자분이 한국어로 말하는 것을 일본어로 옮기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유키 형이 고치면서 하는 말을 한국어로 통역했다.

 “다 됐어요.”

 바닥에 누워서 작업을 하던 유키 형이 일어났다.

 “우와, 럭키네.”

 마침 그들의 차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다행히 차에 대한 전문가인 유키 형을 만나 차를 수리하게 되자 타카코 누나는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 이건 알아들었어요. 럭키.”

 매끄럽지는 않더라도 일단은 모든 대화를 되는대로 열심히 통역하고 있는 나에게 여자분이 말했다.

 “킥킥킥. 나도 럭키 알아들었어. 우와, 유키 대단하다.”

 아주머니도 옆에서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유키 형에게 곧장 통역하니, “아니, 아니. 뭘 이런 걸.”하며 멋쩍어했다.

 일련의 사건 이후, 대만부터 시작하여 동남아시아를 돌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건너왔다는 일본인과 여행 이야기도 나누고, 갑자기 나타난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저씨가 아직 살아있는 우리의 불에 소시지를 구워 먹고 싶다면서 가지고 와 함께 나눠먹은 것을 끝으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아침 7시가 채 되기 전에 우리의 렌터카가 오카우쿠에조를 벗어났다. 지난 9월 5일에 타카코 누나가 계약한 렌터카의 대여 기간은 7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7일째가 오늘, 9월 11일이다. 이곳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빈트후크까지는 400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으며, 가는 길에 식사를 해결하고 빈트후크에서 차를 반납한 뒤 일주일 간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유키 형과 나는 추가적으로 할 일이 있었다.

 때는 우리 다섯 명이 빈트후크의 카멜레온 백패커스에서 출발하던 때로 돌아간다. 원래 함께 렌터카 여행을 할 것이라 생각했던 아저씨, 아주머니, 타카코 누나 모두 이미 나미브 사막의 소서스블레이와 데드블레이를 다녀온 것을 확인하고 절망에 빠진 나는 우선 에토샤 여행을 마친 뒤, 다시 빈트후크에서 일행을 모집할 하염없는 기약을 하고 있었다. 그때 눈앞에 기적처럼 등장한 유키 형이 그 일행에 합류하는 것을 알게 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유키 형은 나와 같은 날, 같은 버스로 케이프타운에서 출발하여 빈트후크에 도착했다. 즉, 나미브 사막을 가봤을 확률이 제로라는 뜻이었다.

 “유키 형, 나미브 사막 아직 안 가봤죠?”

 “응, 일단 에토샤 갔다 와서 생각해 보려고.”

 “우리끼리 가죠.”

 “둘이서?”

 “다른 분들은 다 이미 다녀오셨다고 하더라고요. 타카코 누나가 렌터카 찾은 것 봐도 이삼일 정도 빌리는 건 별로 안 비싸니까 다 합해서 1인당 15만 원 정도면 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날 빈트후크 시내를 한참 돌아다니면서도 결국 마땅한 여행사를 못 찾았는데, 허무하게도 숙소에 돌아와 보니 카멜레온 백패커스가 여행사와 제휴하여 에토샤 사파리나 나미브 사막 투어, 스바코프문트 액티비티 체험 등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문제는 나미브 사막 투어가 1인당 비용이 50만 원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렌터카는 하루에 5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 3일을 빌려도 20만 원 내외일 것이었다. 차 기름 값과 식비, 야영장 대여료를 모두 포함해도 30만 원을 넘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세 명 정도가 딱 적당할 것 같았지만 둘이 간다고 해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오케이, 그러면 9월 11일에 빈트후크 돌아와서 바로 다시 차 렌트하자.”

 하여 현재 바로 그 9월 11일이 온 것이다. 나는 오늘 숙소는 아직 못 정했으나 내일 밤의 숙소는 이미 카멜레온 백패커스에 예약을 하고 나왔으므로 가능하면 모레인 9월 13일에는 다시 유키 형과 두 번째 렌터카 여행을 떠나야 할 것이다. 즉, 오늘내일 이틀간 다시 렌터카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우선 카멜레온 백패커스로 갈까요?”

 운전대를 잡은 유키 형이 물었다.

 “응, 우리는 짐이 다 거기 있으니까 우선 카멜레온으로 가자.”

 유키 형과 타카코 누나는 오늘 카드보드 백패커스에 묵기로 하였고, 짐을 맡겨놓고 온 아저씨, 아주머니, 나는 일단 카멜레온 백패커스로 가보기로 했다.


 “출입을 다른 곳에서 하셨네요?”

 “네, 북쪽에서 들어왔어요.”

 “그러면 이쪽 게이트에서 정산을 못 해요. 저쪽 길로 돌아서 다른 게이트로 나가셔야 해요.”

 “거기까지 얼마나 먼데요?”

 “70 킬로미터 정도요.”

 오카우쿠에조에서 C38 대로를 따라 곧장 남쪽으로 내려와 마주한 게이트에서 우리를 붙잡았다. 이곳에서 우리가 들어왔던 ‘킹 네할레 랴 핑가나 게이트’까지는 약 200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마도 다른 게이트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문제는 그 위치가 어딘지도 모르므로 헤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과, 만일 70 킬로미터만 가서 그 게이트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길을 멀리 돌아가야 하므로 빈트후크까지의 전체 거리는 상당히 늘어날 터라는 것이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우리가 렌터카를 오늘 이른 오후까지 반납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처리해 주실 순 없나요?”

 “안 돼요.”

 “제발.”

 “으음.”

 직원은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우리가 에토샤에 입장할 때 받은 출입 용지를 받아 들었다. 우리가 머문 시간은 48시간으로 정산되어 사람 다섯 명에 800 나미비아 달러, 차 한 대에 20 나미비아 달러, 총 820 나미비아 달러를 계산했다.

 “대단히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그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고, 멈춰있던 차는 다시 움직였다.


 나흘 만에 다시 방문한 아웃조는 여전히 활기찼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운영하는 깔끔하게 생긴 카페 겸 식당 앞에 차를 대고 내부로 들어섰다. 우리는 취향에 맞게 오믈렛, 스파게티, 레모네이드 등을 주문하고는 체감 상으론 참으로 오랜만인 와이파이라는 신문물을 접하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쌓아두었던 페이스북 사진 업데이트를 시작했고, 유키 형은 라인 메신저를 이용하여 어디엔가 전화를 걸었다.

 “지금 필리핀이야?”

 유키 형은 대화 상대에게 영어로 이야기를 했다. 그와 몇 마디를 나눈 뒤 전화를 나에게 건넸다.

 “받아 봐. 한국 사람이야.”

 “한국인이요?”

 전화를 건네받고는 인사를 나누었다.

 “유키 형이랑은 어떻게 아세요?”

 “전에 필리핀에서 어학연수할 때 같이 공부했었거든요.”

 “아, 그렇구나. 아까 필리핀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지금도 공부하시는 거예요?”

 “아니요. 그건 되게 옛날이고, 지금은 여행 왔어요. 거긴 나미비아라고요?”

 “네, 맞아요. 유키 형이랑 숙소에서 만나서 같이 차 빌려서 여행 중이에요.”

 “유키 형이랑은 같이 다닐 만 해요?”

 “킥킥, 왜요?”

 그와 농담을 몇 마디 나누었다. 이후로는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어서 유키 형과의 삼자대면이었다. 그와의 유쾌한 대화와 함께 즐거운 식사 시간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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