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글을 거의 쓰지 못했다.
글을 업으로 삼지 않은 이상, 글을 거의 쓰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글로 적는 것은 그저 지적 허세일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작하고 끝맺지 못한 글이 많은 것은 내 게으름 때문이지만, 요새는 뭐라도 써내려 가는 일 자체가 불편해졌다. 글은 쓰는 행위 자체에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은 마음이 내포되어 있다는 글을 어디서 읽었기 때문이다. 묘하게도 나는, 모두가 내 글을 읽었으면 하면서도 동시에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한다.
얼마 전에 방을 정리하면서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을 모두 버렸다. 나로서는 굉장히 부끄러운 일인데, 이 일기장은 학예회에 전시된 적이 있다. 전시 후보는 친구의 한 권짜리 일기장과 나의 일기장'들'이었다. 그때는 숙제로 일기장을 검사하고 했으니 혼나지 않으려고 틀에 박힌 일기를 매일 썼을 뿐인데, 그 일곱 권의 일기장이 학예회의 전시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양이 많은 것과 내용이 좋은 일기, 둘 중에 뭘 전시할까요?"
이 일을 떠올리면 언제나 나의 가장 부끄러운 글들은 박제되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은 몰이해 속에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타인에게 쉽게 내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상황에서 쉽게 쓴 글은 더 그럴 것이 아닌가. 더 이상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시키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글을 쓴다고 하여 무엇이 남을 것인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다만 쓴 글은 읽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