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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월 Dec 01. 2024

노란 우체통의 비밀


어느 날, 동네를 걷다가 유난히 눈에 띄는 노란 우체통 하나를 발견했다. 요즘은 우체통이라는 것 자체가 희귀한 풍경인데, 더구나 빨간색도 아닌 노란색이라니. 낡은 듯하면서도 어딘가 아늑한 느낌이 드는 그 우체통은 마치 오래된 영화 속 소품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앞에 멈춰 선 나는 그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 궁금해졌다. 몇십 년 전에 누군가 넣은 편지가 아직도 배달되지 못한 채 잠들어 있는 걸까? 아니면 도시의 분주함 속에서 길을 잃은 엽서 한 장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예상 밖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곳에 넣은 편지는 어디로든 갈 수 있습니다.”


‘어디로든?’ 순간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재미있는 상상이 떠올랐다. 편지를 넣으면 타임머신처럼 과거로도, 아니면 누군가의 꿈속으로도 배달될지도 모른다. 괜한 상상이겠지만,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책상에 앉아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주소를 적을 필요가 없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편지지 위에 “어린 시절의 나에게”라고 적고는 솔직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10살의 내가 좋아했던 것들, 지금의 내가 겪고 있는 고민, 그리고 어른이 되는 것이 생각보다 멋진 일이라는 위로까지. 편지를 마치고 봉투에 넣으니 묘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다음 날 다시 그 노란 우체통을 찾아갔다. 아침 햇살이 비추는 가운데 우체통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안에 편지를 넣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우체통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 후로 나는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내가 꿈속에서 나를 만났다. 꿈속의 나는 내게 물었다. “어른이 되면 행복해?” 나는 잠시 멈칫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때로는 힘들지만, 꽤 괜찮아. 너도 좋아할 거야.”


며칠 뒤 그 노란 우체통을 다시 찾았지만,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쩌면 그 우체통은 내가 잊고 있던 어떤 감정을 되찾아주러 온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 나는 종종 편지를 쓴다. 꼭 누군가에게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고 있던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때로는 누군가의 과거로, 또 때로는 꿈속으로 향하는 길을 그리며.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쓰는 편지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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