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cal Honesty 극단적 솔직함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베를린이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고, 수많은 밋업과 커뮤니티가 형성이 된다는 정보가 다였다. 큰 기대 없이 찾아간 베를린에서 배우게 된 것이 있었으니, 바로 'Radical Honesty, 극단적 솔직함'이었다.
> 방문 도시: 독일 베를린
> 체류기간: 총 석 달
> 참고 웹사이트: 밋업 'Radical Honesty'
베를린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든다. 하지만 특히 '히피' '좌파' 가 가장 많이 모인 곳이 베를린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게 뭔 말이냐? 아래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많다.
구글, 페이스북, 우버, 에어비앤비와 같은 일명 tech 대기업의 서비스는 절대 사용하지 않고,
비슷한 맥락에서 윈도, 맥이 아닌 리눅스를 사용!
어도비, ms 시리즈를 사용하지 않고, 오픈소스 서비스를 사용!
왓츠앱, 메신저는 사용하지 않고, 이메일만 사용하거나 혹은 텔레그램을 사용!
더 나아가서 스마트폰을 일부로 사용하지 않기도 함
20년이 훌쩍 넘은 전자제품을 꾸준히 고쳐가면서 오래오래 쓰고 싶어 함
채식을 넘어서 vegan 때로는 raw food 생채식
refugee 이슈에 관심이 많고 자원봉사 등 참여
(당연히) 정치에 관심이 지대하다.
어찌 보면 tech-savy 하고 유럽 스타트업의 허브인 베를린이지만 또한 정반대로 본인의 의지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고집 세고 무뚝뚝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 베를린이 아닌가 싶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왔지만, 그전에 있었던 곳이 'land of smile' 일명 미소의 나라였던 태국 치앙마이였기에 독일인 특유의 '무뚝뚝함'이 나는 당황스러웠다. 싱글싱글 웃으면서 '당케~"를 날리면 이미 그분의 시선은 다른 손님을 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치앙마이처럼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캅쿤카-'를 하는 것은 당연히 기대하지 않았지만 사실 약간 실망을 하고 있었다. '심플하고 단조로운'(?) 문화처럼 독일의 실내 디자인도 매우 모던하고 실용적이었다. 아름다운 꽃장식과 귀여운 커피잔이 넘쳐나는 치앙마이에서 네모 반듯한 독일의 디자인을 마주하니 약간 썰렁한 느낌이랄까?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를 소화를 시키느라 애를 쓰다가 'Radical Honesty'라는 이름의 밋업을 발견하고 무엇인가에 끌리듯 모임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Radical Honesty
Radical Honesty is a technique and self-improvement program developed by Dr. Brad Blanton. The program asserts that lying is the primary source of modern human stress, and speaking bluntly and directly, even about painful or taboo subjects, will make people happier by creating an intimacy not possible while hiding things.
극단적 솔직함은 Dr.Brad Blanton 박사가 개발한 자기계발 프로그램이다.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원인은 거짓말이며, 무뚝뚝하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고통스럽고 터부시 되는 주제라 할지라도 이야기하는 것이 사람들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서로에게 진정으로 다가가게 되어 행복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모임에 참여하면 여러 세션을 통해서 이와 같은 Radical Honesty를 연습하게 한다. 예를 들면 갑자기 급작스럽게 조를 짜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를 하는 거다. 그러나 기존에 하던 것처럼 형식적으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으로 솔직하게' 서로 느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30대쯤으로 보이는 독일 청년과 급작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당황해버렸다. 항상 거짓 미소를 띠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는 나의 스킬은 일단 여기서 버려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말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 "사실 오늘 그냥 별생각 없이 왔어. 이걸 해야 한다니까 피곤하고 당황스럽네" 그 친구도 비슷한 생각이었나 보다. "나도 그래" 둘 다 뽱 터져서 낄낄 웃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세션 이후, 모임 리더가 본인 느낌이 어떠하냐고 물어봤다. 다들 손을 들어서 이것저것 '개 솔직 하게' 본인들의 느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들 와르르르 웃었다. 그게 '거짓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날 모임에 함께 온 친구가 있었는데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난 작년에 이혼을 했어. 그 사실을 왠지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못했어. 친구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날 그 모임 이후로 그 친구와 급속도로 친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무뚝뚝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봤다. 그게 나쁜 건가? '세일즈맨은 친절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내가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닐까?
친하지 않지만 친한 척해야 하고, 사실 그다지 동의하지 않지만 동의하는 척하고, 껄끄럽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하고..
베를린의 시간은 그 이후 더욱 매력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난 독일인의 '무뚝뚝함'과 '간결함'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어찌 보면 한국은 (이웃나라 일본처럼) '눈치' '과잉 친절' '거짓 웃음'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이 당연시되는 나라니까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흠칫한 멘트가 아닐 수 없다.) 피곤해도 예의상 웃어야 하고, 별로 친하지 않지만 친한 척해야 하고, 사실 그다지 동의하지 않지만 동의하는 척하고,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친구이고, 껄끄럽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하고... 그렇게 거짓 관계 속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사무치게 외로운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수많은 이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웃고, 사진을 찍지만, 정작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허전했던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서울, 치앙마이의 코워킹 스페이스, 정보성 모임에서 더욱 외로움을 느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Appearances and salesmanship became more advantageous forms of expression. Knowing a lot of people superficially was more beneficial than knowing a few people closely.
외면적인 모습 그리고 세일즈맨쉽이 더욱 유리한 표현의 방식이 되었다. 많은 사람을 두루 널리 아는 것이 그 숫자는 적지만 제대로 몇 명을 아는 것보다 더욱 유리하다. - 마크 맨슨
그리하여 수많은 이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웃고, 사진을 찍지만, 정작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허전했던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무뚝뚝하지만 레알 솔직한 독일 아저씨와 두 달을 살면서 다시 한번 커뮤니티 그리고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한국에서 '두루 널리' 알고 있던 그 '친구라고 불리던' 사람들은 어디에 간껄까. 유용한 정보를 내뱉지 않으면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인 것 같아서, 그렇게 잊히는 것이 싫어서 허우적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 그러한 관계라면 그냥 잊혀지는 것을 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