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왔다.
3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낯선 마음으로 지하철에 올라탔다. 마침 출근 시간이라 2호선은 직장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지하철에 올라탔고 이내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스마트폰을 꺼내어 분주하게 폰을 응시하거나 두들겼다. 나는 이전에는 꽤나 익숙했던 그 광경을 멀뚱멀뚱 바라보며 실감했다. 돌아왔구나.
Hyper-connected
지하철에서는 물론 고속도로에서도 시골에서도 아무 문제없이 빵빵 터지는 인터넷이 있는, 언제나, 항상 연결되어있는 디지털 사회에 돌아왔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떠나갔던 이유, '왜'를 곧바로 찾을 수 있었다. 수천 명의 페이스북 친구가 있지만, 동시에 마음 편하게 전화할 사람 한 명 없는 현실이 못 견디게 괴로워서, 그 괴리를 못 이기고 난 떠났구나. 차라리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그들을 모르는 곳에 진실로 혼자 있고 싶어서 떠났구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도 스치듯이 했던 것 같다.
외로운 현대인들이 가족 대신 만들어낸 그것들...
소셜다이닝, 소모임, 밋업, 코워킹 스페이스, 코리빙 하우스까지 탐방한 나의 결론은 이렇다.
: 껍데기는 가라
가족이라는 건, 커뮤니티라는 건, 아니 "진짜 관계"라는 건 고작 1-2시간 모임으로 대체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하여, 마치 쇼핑하듯이 만나고 사라지는 관계는 딱 그 정도까지이다. 마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관계의 오프라인 확장판이랄까? 좋아요를 서로 누르는, 서로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계산에 의한, 이 인맥은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이 이미 저변에 깔려있는 일회성 관계가 이미 잠식되어버렸다. 어느 순간 뭐가 친구인 건지, 어떻게 친구를 사귀는 건지, 어떻게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건지, 커뮤니티는 무엇인지 다 섞여버려서 뭐가 뭔지를 모르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밀레니얼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모임들은 그렇게 티슈처럼 한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성 만남과 관계를 반복한다. 편하니까. 빠르니까. 그걸 사람들이 원하니까. 하지만 이것이 내가 찾던 커뮤니티일까?
좋아. 내가 직접 해보지 뭐! 그래서 작은 커뮤니티를 운영해보고 난 나의 결론은 이렇다.
: 정말 어렵구나.
나 역시도 티슈 인맥이라던가 인간관계 O2O에 너무 익숙했던 것일까. 어느 정도 친해지면 거리를 두는 것이 익숙했다. 하긴, 그게 편하긴 하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히 가면을 쓰고 매너 있게 이야기하는 것 말이다. 나 자신이 이러한데 어떻게 커뮤니티를 잘 운영하겠는가. 혼자 방에 처박혀서 난 왜 이런가, 이걸 왜 시작했나, 끙끙 고민하고 자책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한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관계가 서툴구나
처음에는 단순하게 내가 다녀왔던 전 세계 커뮤니티와 모임들을 리뷰하고 소개하려고 했다. 그러나 무려 10주 차에 걸쳐서 글을 연재하고 써 내려가면서 알게 되었다. 그 커뮤니티가 태국에 있든, 인도에 있든, 독일에 있든, 핵심은 그게 아니라는 것 말이다. 커뮤니티라는 것을 요래조래 따져보고 쇼핑하려 했던 내가 잘못이었다. 핵심은 관계였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형성 말이다. 그리고 난 그걸 마치 우유 사듯이 비교하고 따져봐서 쇼핑하려고 했던 것이지. 사실은 그렇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링크드인에서 친구를 추가하고 팔로우하니까. 받아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랑 하면 되니까. 하지만 진짜 세계에선 맘에 안 드는 친구와 태국 농장에서 끙끙 거리면서 합숙해야 하고, 여과 없이 직설을 날리는 독일 친구들의 화법에 익숙해지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사실 핵심이었다. 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쌓아가는 것에 매우 몹시 서툴렀다.
밀레니얼들은 관계 형성에 대체로 매우 서툴다고 한다. 그렇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안도의 한숨) 그 이유가 인터넷이든 스마트폰이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든 간에 우리는 초연결 디지털 사회에 태어난, 그러나 정반대로 '진짜 연결'에 미숙한 세대일 것이다. 그래서 그 외로움을 어떻게든 메워보려고 아등바등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등바등 거리면서 커뮤니티 덕후가 탄생한 것일 게다.
지름길은 없다.
커뮤니티 매니저라고 해서 마법처럼 샤라락 아름다운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으며, 같이 산다고 '효리네 민박'이 탄생하지 않는다. 그저 지난하게 서로 지지고 볶고 괴로운 프로세스가 눈 앞에 놓여있을 것이다.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나라는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되고,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엉엉 울고 싶을 때 진심으로 정신 차리라고 쓴소리 한방을 날리거나 혹은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친구가 한 명쯤은 생기겠지. 그거면 충분한 것 아니겠는가.
지난 10주간 좌충우돌 에세이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커뮤니티, 공동체와 같은 단어를 클릭해서 읽는 여러분들이 많아져서. 우리네 관계가 무취 무색의 '좋아요' 말고, 좀 더 달고, 짜고, 찐득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