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ynn Mar 21. 2018

그래서 커뮤니티는 도대체 무엇인가

푸른 꽃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조건 같이 산다고 덜 외롭고, 소속감이 생기나? 

커뮤니티가 마구 형성될까?


때로는 살아가면서 부딪혀서 몸으로 직접 해봐야 마침내 알아채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다. 한 번으로는 부족해서, 여러 번 부딪히다가 마침내 갸우뚱 거리면서 알아채리는 것이다. 아. 왜 안 되는 거지?


왜 여러 커뮤니티를 다녀봐도 나에게 맞는 커뮤니티는 없는 거지?

왜 여러 밋업과 공동체에 있어도 외로운 거지?

왜 심지어 내가 직접 집을 운영해도 숨고 싶은 거지?

왜 이렇게까지 해도 난 이모양인 거지?

내가 문제인 건가?


도대체 이 길의 끝은 어디인걸까. 너무 답답하고... (장소: 모로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거의 2~3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생각한 질문은 단 하나였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그러한 곳을 찾으면, 당장 정착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말이다. 마음에 드는 커뮤니티 찾으면 그곳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해야지 부푼 꿈을 안고 생각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뭐 다른 곳을 가보자, 세상은 넓으니까! 나름의 자신감 그리고 희망이 있었다. 


인도 오로빌

태국 퍼머컬쳐 농장

태국 치앙마이 코워킹 스페이스

독일 베를린 밋업

인도네시아 발리 리트릿

.... 등등


전 세계를 거의 한 바퀴를 돌고 나서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


전 세계를 거의 한 바퀴를 돌고 나서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을 바라보면서 그제야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구나. 여기를 가야 하나? 이곳은 이게 문제야! 저기를 가보면 다를까? 이러한 질문들, 밖으로 향하는 질문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질문은 나 자신을 향해야 했다. 질문 뒤에, 거대한 단어 '커뮤니티'라는 단어 뒤에 숨어있는 가난한 나 자신을 먼저 멀끄러미 들여다봐야 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감흥이 없더라 (장소: 루마니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없이 많은 커뮤니티, 밋업, 이벤트, 모임을 돌아다니면서 그나마 내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커뮤니티'가 무엇인지 나만의 정의를 찾아낸 것이다. 인도 오로빌의 명상 모임이, 태국의 퍼머컬쳐 농장이, 그리고 베를린의 밋업이 그러했다. 가면 없는 관계. 커뮤니티는 나를 나 자신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을 의미했다. 그 숫자나 규모, 형식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단 한 명이라도 가짜 관계가 아닌, 진짜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곳이 내가 찾는 커뮤니티였고, 진정한 관계였다.


그런데 왜 계속 난 허기졌을까? 외로웠을까?

왜냐면, 내가 나 자신을 가면 없이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를 하나하나 찾기 전에, 나 자신부터 가면을 벗고 당당하게 나 자신을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사실 난 어디 소속되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으니까. 아무런 소속이 없는 상태가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책을 쓰고 있다는 핑계 아닌 핑계라도 대서 나 자신을 숨겨야 마음이 그제야 놓였다. 아무런 소속이 없는, 목적 없는, 그저 방황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당시 그때 나 자신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고 가엽다. 하지만 난 두려웠다. 정신 차려!라는 말을 들을 용기도, 아니야- 괜찮아- 힐링류의 위안을 받아먹을 마음의 여유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난 어디 소속되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으니까


어찌 보면 상투적인 결론일 수도 있겠지만, 커뮤니티를 찾아 전 세계를 헤맨 기록은 결국 '나 자신'에게로 수렴한다. 마치 파랑새를 찾아 헤맨 그들이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어찌 보면 비슷한 것일 수도 있겠다. 나 자신조차 기회를 주지 않았고, 나 자신조차 나의 친구가, 가족이 아닌데, 그러한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멋진 커뮤니티를, 집을, 제공할 수 있겠는가. 


'푸른 꽃'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 꽃을 발견한다 해도 금방 시들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푸른 꽃이 주는 선물은 그 꽃을 향해 떠나는 여정에 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다. 목적지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여정 그 자체이다. 그 여정이 나를 허물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간다. 현실에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가 있다 해도 그 낭만적인 꿈이 없다면 우리는 일생 동안 현실에만 머물 것이다.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는 ‘너 자신의 신화를 펼쳐라(Unfold your own myth)'라고 말했다. 걸음을 옮겨라, 두 다리가 점점 지쳐 무거워지면 너의 날개가 펼쳐져 비상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 류시화


그래, 푸른 꽃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여정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이전 08화 가족의 탄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