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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쇼 Mar 05. 2020

가장 살고 싶은 곳

세비야의 안정감, 칭찬해


바야흐로 여행 4주 차 진입! 그러고 보니 이삿짐만 때려 넣고 부랴부랴 나온 어색한 우리 집, 잘 있느냐? 부디 무탈하시기를. 2개월 후 돌아가면 여기저기 많이 손 봐줄게.


론다를 벗어나 세비야로 가는 길이다. 말라가에서 론다로 올 때와는 반대 방향으로 시에라 산맥을 넘고 있다. 다행히 주로 내리막이고 도로가 넓게 뚫려 멀미와 두통의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마드리드의 한인민박에 이어 론다의 누에보 다리에서 마주친 ‘여배우’씨가 세비야에서 당일치기로 왔다는 말이 마음 한구석에 설렘을 안겨주었다.


결국 의식의 흐름을 따라 나는 어제 버스터미널에 들러 세비야행 아침 출발 버스를 예약했다. 론다 터미널은 규모가 작아서 창구 직원이 한 명이다(그가 화장실을 가거나, 다른 버스가 들어오거나 혹은 출발하게 되면 직접 매표하러 나가므로 기다려야 한다).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을 것 같아 미리 종이에 행선지와 날짜, 인원, 편도 여부, 원하는 시간대를 적어 가서 보여주었다. 긴장하던 직원도 나도 ‘올라(안녕)-뽀르빠보르(부탁해요)-그라씨아스(땡큐)-데나다(별말씀을)’ 4단 콤보를 발사하며 일사천리로 예약을 마쳤다. 여행의 요령이 하나 더 생겼다.


적어간 종이와 당시 버스시간표(계절별로 바뀐다고 함)


그렇다면 ‘세비야’라는 도시에 왜 마음이 설레었는지 알아볼 차례. 바야흐로 2015년 11월, A와 스페인에 함께 왔을 때 세비야에 머물며 “아.., 이 동네에 살고 싶다.”라고 강력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는 프랑스 파리를 거쳐 세비야에 왔다. 참 파란만장한, 굉장히 굉장한 여정이었다. 2015년 11월 14일. 서울에선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한 농민이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고 그를 구출하러 간 사람들에게도 물대포가 쏟아졌다. 누군가는 다치고, 실명을 했고, 쓰러진 농민은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서울시내 교통은 마비에 가까웠다. 그 시각 나와 A는 서울 합정동 모처의 예식장에서 똥폼을 잡으며 막춤을 추고 있었다. 연회장에서 방문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릴 때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파리로 간다며? 못 가는 거 아냐?”


맞다. 신혼여행은 파리에서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시간 전, 그 유명한 11월 파리 테러가 발생했다. 예식 전 공항공사에 연락 해 프랑스에서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한 것은 아닌지 물어봤는데 다행히 그런 조치는 없으나 신변을 잘 보호하고 한국대사관 연락처를 미리 적어가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렇게 들어선 파리의 풍경은 참혹했다. 예약한 숙소는 여러모로 교통이 편리한 리퍼블리크 지역. 당시 테러 최대 피해지역인 ‘바타클랑’ 극장, 거리 총격 발생 지역이었다. 총격 이후의 풍경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고 거리는 초와 꽃, 추모의 글로 가득했다. 파리는 물론이고 프랑스 전 지역이 심란 그 자체였다. 11월 중순임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 살얼음이 낀 아침과 우중충함을 뽐내는 오후들을 겪었다. 모든 관광지의 입장도 제한되었다. 그래서 노트르담 대성당도 못 들어가고 밖에서만 봤는데... (당시 파리 풍경의 단상은 아래의 사진과 링크에서)

2015년 11월 15일 파리 숙소 앞, 바타클랑 극장 앞.


프랑스에서 혹독한 열흘을 버텨내고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대표 도시 세비야로 넘어갔다. 내리쬐는 태양과 겨울 같지 않은 온화한 날씨에 우선 깜짝 놀랐다. 골목을 돌고 시장엘 가고 세비야 대성당을 걷고, 스페인 광장에서 날뛰며 저렴한 물가에 또  한 번 놀랐다. 프랑스에서 내내 긴장했던 모든 것들이 나른하고 편안하게 다가왔다. 이후 그라나다와 바르셀로나로 여정을 이어갔지만 A와 내내 세비야에 대해 이야기했다. 머물던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친절함과 잘 갖춰진 용품들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세비야는 여행했던 많은 도시들 가운데 내가 가장 살고 싶은 도시가 됐다.


“그래, 뭐, 여기까지 왔는데 이틀만 지내고 마드리드로 돌아가자!”


역시 세비야.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니 마음에 안도감도 크다. 론다가 협곡 지대라 확실히 추웠던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후끈한 열기와 따가운 자외선이 몰려온다. 예전 호스트의 집에 머물고 싶었지만 너무 임박한 탓에, 그리고 슈퍼 호스트로 번창했기에 좀처럼 예약불가. 혼자 머물기 적당한 금액의 숙소를 겨우 예약했는데 도착까지 참 헤맸다. 10차선 급 대형 도로를 건너면 코앞인데 건널목이 없었기 때문.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못 할 비효율적인 동선! 그렇다고 타지에서 목숨 내놓고 무단횡단할 수도 없는 일. 돌아 돌아갈 수밖에. 땀이  오듯 흐른다. 배가 고프다. 스멀스멀 화가 난다!!(우리는 외가의 핏줄 대대로 배고프면 화를 내는 고얀 습성이 있다.) 세비야 주민들이 가득한 골목에서 홀로 쌍욕을 시전 하며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 일단 말끔히 씻고 세탁기를 돌려두곤 집 밖을 나섰다. 아직 13시 45분, 메뉴 델 디아(오늘의 정식)를 쟁취할 수도 있다!!


버스터미널에서 집으로 오던 방향과 반대로 나가면 바로 작은 광장이 나온다. 이름하여 가비디아(Gavidia)광장. 늘 그렇듯 광장을 둘러싸고 상점, 식당, 술집, 슈퍼들이 있었다. 대충 스캔하니 가격도 분위기도 비슷비슷. 그렇다면 좀 더 식당스러운 곳으로! Dos de Mayo(도스 데 마요)로 들어갔다. 입구의 점원에게 메뉴 델 디아가 가능한지 물어보고 안내에 따라 좌석을 배정받았다. 스페인어로 적힌 메뉴판을 우선 건네며 “Bebida?(음료는?)"하고 묻는다. 고민 없이 띤또 데 베라노를 주문하자 엄지를 추켜세우며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이어 묻는다. 그리곤 한국어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친절하잖아. 게다가 한국어 메뉴판이라니!


주문한 대구요리와 빠따따스 브라바스(감.튀 요리)


일단 스페인어 메뉴판을 보니 Bacalao(바깔라우, 대구)가 보인다. 럭키!! 그렇다면 메인은 무조건 대구요리죠. 나머진 대충 Patata(빠따따, 감자)나 Sopa(쏘파, 수프)중에 고른다. 그럼 실패가 없으므로. 배가 너무 고파 빵에 올리브 오일과 식초를 처발처발하고 있을 때 메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와... 맛있다. 오오 되게 맛있다... 미쳤나 봐!!’ 대구는 그릴에 구운 뒤,  접시에 바질과 라즈베리 소스를 깔고, 크림소스와 치즈를 올려 토치로 녹여낸 요리였다. 후루룹냠냠쩝쩝 맛있게도 먹었다. 배고픔도 있었지만 이 식당은 동네에선 유명하고, 몇 해 전 까진 미슐랭에도 소개된 준수한 요리를 선보는 곳이다. 우연찮게 들어와 합리적 가격에 잘 먹고 간다.


3개월의 경험에 미루어 볼 때 스페인에선 식당에 들어서기 전, 빈자리가 보여도 입구에서 점원을 기다린 뒤 안내를 받아 자리를 배정받는 게 매너인 듯 하다. 자리에 앉으면 우선 음료만 주문한다. 점원이 주문한 음료를 오더하고 주방에서 만들고 있을 때 나는 메뉴판 완독을 끝내고 먹을 음식을 결정할 시간이 생긴다. 점원이 음료를 나의 테이블에 내려놓을 때가 비로소 음식 주문 타이밍! 그러니 먼저 식당에 들어가 빈자리 찾아 앉고, 메뉴 본다고 번역기 돌리면서 점원을 세워두지만 않으면 불친절이나 동양인 차별을 겪지 않을 수도 있다. 더불어 빵값은 상점 정책마다 다르다. 나는 무조건 먹는 편. 남을 것 같으면 숙소로 가져가 샌드위치로 소진했다.


마요 광장 앞엔 우리들의 친구, 대형슈퍼 DIA도 있고 건너편엔 백화점 엘 꼬르떼 잉글레쓰와 식품관이 있었다. '오늘내일 먹거리 걱정은 없겠군, 그래 숙소 잘 잡았어!!' 아까 욕하던 심보는 환희로 바뀌었다. 얄팍한 감정 기복 같으니라고 ㅎ. 백화점을 지나 저기 보이는 세비야 대성당을 향해 힘차게 걸었다. 오늘따라 성당도 알카사르도 입장 대기줄이 엄~청 길다. 무료 관람일이었기때문. '메트로폴 파라솔'에 갈까 했는데, 성당이 무료입장이라니깐 일단 줄을 서 본다. 잠시 후, 안내요원이 내 앞 앞사람들에게 뭔가를 설명하자 그들은 양팔을 벌리며 불편하고 곤란한 표정을 보인다. 분위기가 딱 '당신부터 입장을 할 수 없다'로 보였다. 안내요원을 붙잡고 직접 확인해보니 ‘피니시, 엔드’를 외친다. 여행 눈치도 빨라졌다. 그럼 더 이상 서 있을 필요는 없지요!


스페인광장의 플라멩코. 펄럭이는 치맛자락 굳~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여전히 웅장하고 멋진 광장이다. 빠알간 벽돌과 호수 사이로 북적이는 많은 사람들. 그들을 원형으로 품은 멋진 타일 장식을 끝부터 끝까지 둘러보기로 했다. 스페인 도시들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재미있다. 내가 거쳐 온 혹은 또 가보고 싶은 도시들 앞에선 괜스레 더 설렌다. 타일 장식 뒤쪽 회랑에선 플라멩코가 한창이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연보라 땡땡이 스커트를 펄럭이는 댄서도 멋지지만 역시 나는 뒤에서 노래하고 손박자를 타는 연주자들에 눈이 간다. 1유로를 기부하고 마음껏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두곤 그늘진 회랑을 다시 걷는다. 예전에 왔을 땐 반대편 입구로 들어왔었다. 오늘은 그쪽으로 나가 봐야지. 한 발 두 발 걷다 보니 사람도 적어지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온다. 그 바람에 기타 연주 소리가 실려 날아온다. 익숙한 기분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빠르게 발을 옮겼다. 어머나! 4년 전에 봤던 아저씨가 아직도 이 곳, 같은 자리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또 1유로를 기부하고 호숫가 한 켠에 앉아 한참 아저씨의 연주를 듣는다. 그의 연주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인사를 하며 내가 4년 전 찍어 두었던 그의 사진을 보여주자 그도 재미있어한다. 왜 때문인지 나에게 일본어로 인사를 해서 ‘꼬레아노(Coreano, 한국사람)’라고 하자 ‘안니영하시에요’라고 답하는 아저씨. 인싸가 되셨구먼요!

 

(왼쪽)오늘의 아저씨 VS 4년전 아저씨(오른쪽)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6시. 작은 원룸이지만 넓은 테라스가 돋보이는 숙소다. 빨래를 널고 무알콜 맥주와 고당도 멜론을 먹으며 석양이 내리는 도시를 내려다본다. 반가운 세비야. 내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 이 곳.


다시 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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