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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자루 Oct 31. 2024

To. 미등록 제자가 선생님에게

교생선생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 소개를 먼저 할게요.

나이가 딱 두 자릿수가 되는 열 살. 두 달 정도. 첫 번째 교생실습이라고 했던 그때 계단 끝에 있는 3학년 반에서 만난 아이입니다.


살면서 많은 선생님들이 있었지만

언제나 가장 만나 뵙고 싶은 건 당시 교생실습을 나와 우리 반에 있던 당신입니다.

선생님이 되었겠지요? 아마 멋진 선생님이 되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진짜 '제자'들이 생겼을 거고,

스승의 날엔 축하도 받았을 거예요.

그러니 교생실습을 하는 잠깐의 기간, 스쳐가는 인연으로 만났던 저를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이건 부치지 않는 편지입니다.

그래도 남기고 싶은 마음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저도 살아온 시간이 쌓일수록 기억은 조금씩 변화하고 희미해집니다.

그래도 이번 편지를 쓰며 그 시절을 기억해보려 해요.

어째서 선생님 당신이 그렇게 기억에 남아 있는지를. 되짚어보려고 합니다.


저희 반에는 총 3명의 교생선생님이 왔습니다.

아마 비슷한 또래였겠지요? 모두 여성분이었고, 당시 저희 담임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분이었으므로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신은 그중 가장 키가 크고, 동그랗고 큰 눈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긴 생머리로 기억하는데.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반짝였던 것 같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교생선생님을 좋아했어요. 세분이나 있었으니 취향 따라(?) 더 좋은 선생님도 고를 수 있었죠.

그 나이 때 아이답게 모두가 이쁨 받고 싶어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선생님에게 질문을 던지고, 관심받고 싶어 했어요.


저 역시 그런 아이였습니다. 다만 극히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였어요.

그래서 아무런 말도 건네지 못하고. 선생님 앞에서 재롱을 부리거나 쫑알쫑알 말을 거는 아이들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도 그러고 싶다...' 생각만 하는 아이였답니다.


그런 제게 말을 걸어준 건 선생님.

이름이 뭐냐고 물어봐주고, 좋아하는 게 있냐고, 이쁘다고,

뭐든 먼저 제게 말을 걸어준 당신을 기억합니다.

짤막하게 제게 써주던 조그만 손편지들을 기억합니다.


내가 나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당신에 대해 많은 것을 묻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나를 관찰한 이야기(오늘은 뭘 입고 왔네. 수업시간에 눈이 똘망똘망했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네^^ 등)

그리고 선생님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나는 무엇을 좋아하네 그래서 00 이도 그걸 좋아하니?라고 묻는 말들)

가 편지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 같아요.


열 살짜리 아이가 뭐라고

그녀는 그렇게 진심으로 저를 대해주었을까요.


많이 티를 내지 못해서. 내 마음이 어디까지 전달되었을지 몰라 아쉽고 또 아쉽지만,


누군가를 믿고 곁을 내주기 어려운 성격인 만큼

누군가를 믿고 곁을 내주면 한없이 주는 그런 사람이라서

선생님을 정말 많이 좋아했습니다.




선생님이 떠나는 날, 아이들은 메일 주소며 휴대폰번호 같은 것을 받았어요.

우리 반 모두에게 교생선생님들은 노트를 선물해 주고 갔는데,

저에겐 노란색 노트를 주고 갔답니다.


노트 첫 세 장은 각 선생님들이 남긴 편지가 있었어요.

선생님들의 메일주소와 핸드폰번호도 있었고요.


선생님이 떠난다고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선생님은 차를 타고 떠났어요.


솔직히 너무 어릴 적이라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몇 아이들이 아쉬워하는 소리를 내었고.

그제야 꽁꽁 숨긴 마음이 울컥 올라와서

눈물이 났습니다.


다시 반에 들어갔을 때는 한 아이가 저를 보고 오버하지 말라고 화를 냈습니다. 반에서도 무서웠던 남자애라 내가 울었고 그 말을 들었던 기억만은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꼭 선생님한테 연락을 해야지.

이 감정은 오버가 아니라 '진짜'니까.

당시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커가면서 이따금 선생님의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은 선생님이 되었을까?


한동안 자음이 모음보다 훨씬 커서 귀엽고 동글동글한, 딱 선생님 같다고 생각했던 글씨체를 따라 하다 말았는데.


아직도 그런 귀여운 글씨체를 가지고 있을까


이메일도, 전화번호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연락할 용기는 나질 않더라구요.





고등학교 1학년쯤이었을까. 문득 이상한 용기가 나서, 노트를 펼쳤어요.

아낀다고 쓰지 않은 노란색 노트는 이미 낡아서 바래기 시작했습니다.

핸드폰번호를 누르는 손이 얼마나 떨렸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수화기너머 들리는 목소리는 남자. 000 선생님을 아냐는 물음에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연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착각이었구나.


그 후로도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이십 대 초반을 지나며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시절 그토록 어린 나이였다고.


이십 대 후반이 넘어가며 생각했어요.

정말로 어린 나이였다고.


삼십 대 초반을 지나, 결혼을 하고 나서 보니

선생님은 그 후로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궁금합니다.


단순히 선생님이 되었겠지, 말고

나이를 먹어가며 어떻게 변해갔을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갔을지 말이에요.


과거로 화살표를 향한 이 편지를 쓰면서,

아직도 기억하는 선생님의 이름을 검색해 봤습니다.


나오는 사람이 몇이 있긴 한데

그게 선생님인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그때의 어린아이보다는 사회성이 생기고, 덜 소심하지만

여전히 내향적이고 조용한 사람입니다.


교사가 되기도 전에, 그 작은 아이에게 진심을 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좋아한다는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아이들을 그렇잖아요.

말하지 않아도 진실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잖아요.


말로 감사했습니다.

유년시절에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제 편지가 닿지 않아도

제 마음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닿지 않을까요.

선생님이 어디에 계시든

행복하길 바랍니다.


이만 줄일게요.



- 미등록 제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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