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걸 습관이라 부르자면 이상한 사람 같고, 내 의지라고 하기도 참 뭐했다. 나는 수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집에 가는 사람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가며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이수진 하나. 이수진 둘. 이수진 셋. 이런 식으로. 왜, 굳이. 대체 무슨 연유로 그러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거의 매일, 그 악수회가 끝나면 퇴근이 훌쩍 다가왔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 짓지 않으면 왠지 모를 찜찜함이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양옆으로 쫙 찢어진 어떤 아저씨가-그 분은 시험에 참여한지 칠개월 정도 지났기 때문에 얼굴을 익히고 이미 모두와 친해지고 나아가 설명까지 해주는 터줏대감이나 다름 없었다-나를 빤히 보다가 한마디 툭 던졌다.
"선생님, 이 양반도 악수 한번 해주구려."
언제나처럼 수진 옆에 멍하니 서서 숫자를 세고 있던 내게 한 소리란 걸 처음엔 인지하지 못했다. 그 아저씨가 마지막이었다. 스물셋까지 세던 숫자가 머릿속에서 날아갔다. 내가 반문했다.
"네? 저 말입니까?"
"그래요."
"왜요?"
"..."
그걸 내가 말하면 곤란한건 너 일텐데. 얼굴에 쓰여 있는 문장이 술술 읽혔다. 당황스러운 건 나였다. 그는 헛기침을 큼큼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냥 이 양반도 수고했으니께.."
그러곤 나를 향해 따가운 듯 한쪽눈을 살짝 찡그렸는데 그게 윙크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수진은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그럴까요? 하며 웃었다. 아저씨의 손을 부드럽게 맞잡는 손이 보였다. 스물셋이었나 스물다섯이었나. 하얀 손이 내 앞으로 내밀어졌을 때, 나는 얼떨결에 내밀었고 두 손이 꽉 맞물렸다. 그녀의 손은 내게 악수를 청했다기보다 내 손에 감싸져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뭐하는 거예요?"
최훈이 끼어들었다. 수진은 자연스럽게, 하지만 빠르게 내 손을 놓았다. 내 속에서 뭔가가 올라오려다 차갑게 식었다. 감정을 채 인식하기도 전에.
"나만 뺀거야? 나도 악수해줘요."
하여간 이 인간은 초치는데 뭔가 있구나.
그러고선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다 붙잡았다.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이 상황을 만든 아저씨가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서 나는 웃었지만 그건 애를 쓴 흔적이 역력했을 것이다.
무너지는 것에는 소리가 없다.
실로, 진실로 끔찍하게 무너지는 것에는 소리가 없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동안 모든 게 무뎌졌다. 그렇게 낡아지는 감각이 나를 통수칠거라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점점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이제 곧. 그런 말은 겪는 사람에겐 결과의 머리털, 조금만 더 하면 보일 정수리가 실재했다. 곧이야 곧.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외부의 누군가가 이 일을 알고 신고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막을 시간이 없었다는 사실을 내가 인지하기란 불가능했다. 상부의 부름이나 징계가 아닌 낯선 이들이 우리가 매일매일 출근하던 사무실로 아무런 제약도, 배려도 없이 비집고 들어왔다.
막으려던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의 최훈과 어쩐지 모든 걸 직감한 듯한 수진의 얼굴을 보며 올것이 왔다는 사실, 실상 원인과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한채 떠오르는 감각만 깨달았을 따름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바보가 되었다.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라고 표현하고 싶지만 정말로 바보가 되었다. 어떤 말이든 해보라는 말에 어버버 말을 흘렸고, 당황스런 동공만 이리저리 움직이며 이 상황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처음엔 화가 났지만, 화를 내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중앙에서 추진하던 게놈 연구에 네카가 투입되었다는 사실은 상황이 표면에 드러나고 나서야 알았다. 기존 연구에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만 자료에 포함시키고 실질적인 연구는 후방 건물로 빠졌다. 모든 의약품이 하청업체로 전달되는 허브인 그 하얀 건물로.
정말 몰랐습니까?
그렇게 묻는 이들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내가 어떠한 논리와 동정심을 호소하더라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여러 번 묻자, 그 말은 꽤 일리 있게 들리기 시작했다. 정말, 정말 몰랐을까? 여기서 받아가는 돈이 쏠쏠하다며 매일같이 오던 어르신이나 아주머니, 아저씨들. 갑자기 보이지 않았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몸이 결리고 쑤신다던 사람들. 요즘 뭔가 이상하다던 사람들. 그들의 푸념 같은 이야기들을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들었나.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던가?
눈에 띄는 효과를 발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 검은색이었던 머리카락으로부터 드문드문 금발이 나기 시작했다. 어떤 자는 유치도 아닌 이가 빠지고 새 이가 자라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독특한 합병증에 걸리거나 유전적 성향이 강한 질병을 얻었다. 상태가 안 좋아 지거나 심하면 죽는 경우도 있었다. 적절한 수용체를 찾지 못한 신호물질은 세포에 악영향을 끼쳤다. 대략 300명정도의 소집군을 2년 시간을 공들여 지옥으로 몰아가고 있던 것이다.
회사는 그러한 사실을 묵인했다. 비밀규약이라는 명목으로, 혹은 아예 자료에 끼워 넣지 않거나 누락시키는 방향으로 해당 실험을 교묘히 가리고 덮었다. 하지만 도명제약의 이러한 행위는 길게 가지 못했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모집하던 과정에서 덜미가 잡혔다. 특정 몇 명의 성과를 바탕으로 좀 더 적합한 사람을 찾으러 들쑤신 결과였다. 기본적인 방어태세가 강화되어있지 않던 터라 윤리위원회와 경찰이 개입하기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밝혀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