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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노 Nov 25. 2016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커피를 마시나보다

EBS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커피 어드벤처]

하루 중 커피를 한 잔도 마시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2014년을 기준으로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338잔이라고 하니, 산술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하루에 0.92잔씩은 마시고 있다. 필자도 따로 계산하지 않더라도 하루에 한 잔 이상은 마시고 있다. 특히 오전에는 커피를 마셔야 몸이 움직이고 머리가 돌아가는 느낌이다. 스타벅스에 처음 가본 때는 성인이 된 20살 이후였지만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가는 편이다. 가족들 모두가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집에는 에스프레소 머신도 있고, 바리스타에 도전하고 있는 누나 덕분에 드립 커피도 자주 마시고 있다. 핸드 블랜더와 드립 도구까지 갖춰져 있고 여러 종류의 원두를 맛보기도 했다. 인스턴트커피인 카누나 G7도 좋아하며, 맥심 화이트 골드로 아침을 시작할 때도 많다. 커피에 관한 본인의 입맛은 보급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적당한 수준의 커피라면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다 보니 취향이 까다롭지 못하다고 해서 아쉽지는 않다. 그래도 일부 프랜차이즈에서 파는, 커피라고 하기도 어려운 수준의 검은색 물은 구분해낼 수 있다.

2014년에 방영된 EBS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커피 어드벤처]는 시애틀 여행을 준비하면서 보게 되었다. 시애틀 하면 당연히 스타벅스라고만 생각하고 자료를 찾던 중 이 작품을 만났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크게 세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커피를 재배하는 농부, 생두를 원두로 바꾸는 로스터, 그리고 원두로 커피를 뽑아내는 바리스타. 이렇게 세 명이다. 3편으로 구성된 [커피 어드벤처]는 각각 콜롬비아, 과테말라 그리고 시애틀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크게 보면 1, 2편은 커피 원두와 농부들에 관한 이야기이고 3편은 바리스타에 관한 이야기다. 중간중간 로스터의 모습도 녹아들어 있다. 그중 3편에는 당시 시애틀에서 열렸던 미국 바리스타 대회의 모습이 담겨있다. 바리스타 대회에서는 에스프레소와 카페 라테, 그리고 시그니처 드링크 세 종목을 심사한다. 에스프레소와 카페 라테는 바리스타로서의 기본 자질을, 시그니처 드링크는 새로운 커피를 만들어내는 창의력을 보는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지역의 유명한 카페들에 가서 시그니처 메뉴에 도전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심사 비중이 가장 크기도 한 시그니처 드링크들이 더욱 끌렸다. 샌프란시스코 Phliz Coffee에서 마신 청량감이 살아있는 모히또 라테나 Buena Vista의 술에 가까운 아이리쉬 커피, 뉴욕 La Colombe Coffee의 진한 니트로 더치 라테, 그리고 한국에 있는 슈퍼커피의 오렌지 라테같이, 시그니처 커피는 바로 그곳에서만 마실 수 있고 그 맛이 여행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커피는 차의 한 종류이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장르로 간주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전문 용어도 많다. 이 다큐멘터리에도 나오는 파치먼트, C.O.E, 슬러핑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필자의 경우 용어들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는 허영만 화백의 작품 [커피 한 잔 할까요?]를 본 덕이 크다. 허영만 화백의 작품답게 커피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술술 넘겨볼 수 있는 만화책이다. 필자 역시 기본적인 지식만 가진 채로 각각의 에피소드에 담긴 스토리를 음미하면서 봤지만, 6권까지 나온 작품을 다 보고 나니 적어도 머리로는 커피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가령 건식법과 습식법으로 나뉘는 원두 가공 방식에 따라 같은 원두도 맛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점과 로스팅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원두와 바리스타의 스타일에 따라 약배전, 중배전, 강배전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국내의 유명한 카페들이 종종 카메오처럼 등장하는데, 종로의 카페 뎀셀브즈나 연희동의 메뉴팩트 커피 등 방문해본 경험이 있는 카페가 나오면 괜히 뿌듯하기도 했다. 

사실 드립 커피 같이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면 와인만큼이나 어려운 게 커피지만,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마셔라. 싱글 오리진이든, 블랜드이든, 설탕과 크림을 넣은 커피든 중요하지 않다. 음료로써의 커피보다는 커피로 연결된 사람들 간의 관계가 중요하다.


2004년 미국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 브론윈 세르나(Bronwen Serna)의 말이다. 맞다. 자신에게 맞는 커피를 마시면 되지 다른 게 무슨 상관인가. 커피를 사러 갈 상황이 안되거나 귀찮을 때는 카누 같은 인스턴트커피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고 우리나라만의 믹스커피도 독자적인 맛을 가지고 있지 않나. 


[커피 한 잔 할까요?]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회사 대표가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최상급 원두와 드립 세트를 구비하고 에스프레소 머신까지 들여다 놓았는데, 직원들은 굳이 회사 외부에 있는 저렴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문제로 고민하는 스토리가 있다. 알고 보니 직원들에게는 커피가 단순히 카페인을 들이켜는 것뿐만이 아니라(물론 카페인도 큰 이유지만) 잠시 회사 밖으로 나가서 바람을 쐬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매개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커피 한 잔이 맺어주는 관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보내는 시간, 그리고 상황이 녹아있는 것이 바로 커피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커피를 마시나보다. 커피는 단순히 음료가 아니라, 하나의 미디어이자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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