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대신 찾은 것

Korea, 1998

by Keempado
IMG_9075.jpg Korea, 1996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엄마 아빠이던 때가 있었다. 동생이랑 싸우다가도 아빠의 이것들이, 라는 한 마디면 얼음이 되고, 엄마에게 회초리 한 대만 맞아도 세상이 떠나가도록 울던 시절. 그때는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거나 '어른이 되면 내 마음대로 티브이도 보고 잠도 늦게 자야지. 엄마가 사지 말라는 것도 다 사야지!' 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지금이 제일 좋을 때라고 말했지만 나는 몰랐다. 어른이 되고 나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엄마 아빠 말고도 이렇게나 많다는 걸, 그때는 정말 몰랐다.


민증을 당당히 꺼내놓고 술을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 나는 세상이 쉬워졌다고 생각했다. 내가 수업을 가든 과제를 하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고 나도 이제 어른이야, 라는 말을 무기 삼아 밤늦게까지 친구들을 만나거나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다. 역시 어른은 좋은 거라고, 엄마 말이 늘 맞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 이학년을 지나 선배라는 말에 더 익숙해지고 휴학과 복학을 차례로 하고 나서야 나는 예감이 좋지 않다고 느꼈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신입생들과 달리 우중충한 잿빛 기운을 몰고 다니며 취업을 준비하던 선배들의 대조적인 모습은 '어른'의 무게를 조금 실감 나게 했다.


학교를 방패 삼을 수 없는 나이가 되고나서부터는 어른이라는 사실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세상천지에 모르는 것 투성이고 어려운 게 너무 많은데 어른에게 어떤 질문이나 망설임은 허락되지 않는 것 같았다. 막막한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는 인생이라는 과목을 가르치지 않은 학교를 원망했다. 근의 공식이나 화학 원소가 아니라 진짜 인생에 대해서는 왜 가르쳐주지 않은 건지, 이렇게 가이드라인 하나 없이 세상에 내보내도 되는 건지, 묻거나 따지고 싶었다.


계속되는 서류 탈락에도 자신감과 자존감을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 영원할 거라고 믿었던 첫사랑과 이별하고도 살아가는 방법 외에도 삶이 주는 수많은 갈림길 위에서 정답을 알고 싶었다. 아무래도 교육 시스템이 잘못된 거 같다며, 그렇지 않냐고 투덜거리며 묻는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인생이라는 과목은 누가 가르칠 건데? 엄마는 나이가 오십이 넘었는데도 아직 인생이 어려워. 어떤 게 옳은 선택이었는지 여전히 물음표고. 학교를 떠나 그 누구도 인생이라는 과목을 가르칠 수 없는 건, 무엇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엄마의 대답은 일순간에 나를 당황시켰다. 엄마 정도의 나이가 되면 인생이 한층 쉬워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니. 내가 원하던 답은 아니었지만 엄마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는 알 수 없는 인생에 대한 답을 찾는 대신 여행을 자주 떠났다. 운이 좋게도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일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여행 가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여행을 통해서 만나게 된 사람, 그들과 나눈 대화, 그곳에서 보고 느낀 경험들은 답은 내려주지 않아도 답을 내리는 데에 도움을 줄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여행은 내게 이야기들을 남겨주었다.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세상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이곳에 옮겨보려 한다. 내 인생은 여전히 미궁 속이지만, 이제 한 가지는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쓰는 게 나의 행복이라는 것. 나의 이야기를 오래 들려주고 싶다. 지금부터,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