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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pado Sep 29. 2021

살아남은 대화_불쌍하다는 말

F: 나는 불쌍하다는 말 싫더라.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거잖아. 고작 한 시간 뒤나 아니면 당장 내일이라도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데, 나의 오늘이 다른 사람보다 나아 보인다고 불쌍하다, 운운하는 게 우스워.


우리가 눈으로 확인하는 건 몇 안 되는, 정말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 뿐이잖아. 이해가 안 되는 관계를 지키고 있다거나 그만두는 게 더 나아 보이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거나. 아니면 나보다 몸이 안 좋다거나 형편이 넉넉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사람이 불쌍해지는 데에는 별 이유가 필요하지 않더라. 근데 우린 모르잖아. 당사자가 자신의 하루를 감내하기 위해 사용하는 치열함을. 그 안에서 그 사람이 어떤 빛을 지니고 있는지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섣불리 불쌍하다고 말하는 게 싫어. 그런 사람들이 더 안타까워 나는. 


X: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래?


F: 아니, 그냥. 다들 뭐가 그렇게 잘났을까 싶어서.


X: 내버려 둬~ 그런 사람들. 제 잘난 맛에 살라고.


F: 그래. 내비 두자. 제 잘난 맛에라도 살라고. 근데 애쓰는 사람들 있잖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려고 전전긍긍하는 사람들. 자기가 이만큼 안다고 이만큼 낫다고 자랑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빛나는 줄 알겠지. 불안할 거야. 가진 게 껍데기뿐이라.


X: 말을 날카롭게 하는 게 수상한데. 너 무슨 일 있었지?


F: 그런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X: 나는 니가 걱정하지 말란 소리 할 때가 제일 걱정돼. 말해봐. 무슨 일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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