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나를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너는 말했다. 몇 번이나 얘기하려 했으나 혹여나 너의 말이 원치 않는 폭격이 되어 그 사람이 아닌 나를 다치게 할까 봐 망설였다고 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두 잔의 커피는 계속해서 한 사람의 몫만 줄어들고 있었다. 너의 짧은 숨과 긴 문장이 끝나고 잠시 이어진 침묵을 깬 건 너였다. 너는 나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괜찮고 그렇지 않고의 구분이 나에게는 이미 무의미해졌다는 걸.
너의 타당한 의문과 합당한 의심 도출된 결론을 듣는 동안 나는 너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틀리기는커녕 나도 온몸으로 체감하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궁금했다. "다른 사람이나 대상을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쓴다"는 이용의 사전적 정의로부터 너와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지, 네가 그 사람에게 부여하고 싶어 하는 부당함으로부터 과연 우리는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 이쪽과 저쪽이 확연히 구분 지어진다고 해도 너와 나, 그 사람, 우리의 지인들, 그 지인들의 지인들, 그 지인들의 지인들의 지인들을 포함한 세상의 구성원 모두가 이쪽에도 있다가 저쪽에도 있는 건 아닌지가 궁금했다. 만약 네가 이 질문들을 듣는다면 그래도 정도의 차이라는 게 있는 거 아니냐고, 경고장이 겹쳐 퇴장이 필요한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니지 않냐고 반문할는지도 궁금했다.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다. 실은 이 모든 게 나의 관심 밖이었기 때문에. 정말 어느 것 하나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의 폐허는 사람이 아니라 길고 까만 밤이 짓는다는 사실을 나는 끝내 말하지 못했고 말하지 않았다.
마주 앉은 좁은 간격 위로 부유물이 가득한 하늘 같은 아득함이 깔렸다. 만약 푸르고 높게 자리한 하늘과 그곳에 떠 있는 선명한 달처럼 모든 것의 인과관계가 뚜렷하다면. 그렇다면 이 어지러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고, 마치 실수로 혹은 고의로 하수구에 떨어지거나 버려진 소지품들처럼 이 망할 놈의 세상이 개개인의 상세하고 복잡한 서사를 생략과 삭제의 구덩이에 던져버리는 바람에, 사람의 내면이 애초에 불투명한 유리로 태어나는 바람에, 조각난 내면들이 빈번하게 생성될 뿐 아니겠냐고 너에게 말할 수 있었을까.
너의 선의는 따뜻했다. 따뜻해서 나는 분명히 말해야 했다. 걱정해 주어서 고맙다고, 그렇지만 나라고 아무것도 얻지 않은 건 아니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내가 말한 문장 속에 거짓은 없었다. 거짓이 없었다고 해서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대답을 끝으로 너와 나는 정지 화면 속 인물들처럼 미동이 없었다. 나의 커피잔은 비워졌고 너의 커피잔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였다. 갈까, 라는 말을 누가 먼저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각자의 마음을 가지고 돌아선 그날로부터 많은 날이 지나갔다는 것만이 확실했다. 눈앞의 어느 집도 불이 켜지지 않았다. 이곳에서 나의 폐허는 구분되지 않는다. 혼자만 알아서 길고 다행인 밤이 깜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