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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Jul 16. 2020

고마운 시행착오



며칠 전 소설가 윤금숙 선생님을 만났다. 돌아가신 소설가 송상옥 선생님의 부인(송경자 사모님)이 전해주랬다며 손뜨개 덧버선을 주신다. 작년 연말에 주려했지만 만날 기회가 없어서 한동네 사시는 윤금숙 선생님 편에 보내신 것이다. 때늦은 추위에 요긴하게 신으면서 해마다의 정성을 생각하며 감동했다. 곱고도 가지런히 뜨여진 덧버선을 보면서 나의 서툰 뜨개질을 생각했다.

뜨개질을 해본 사람이면 다 아는 일이지만, 도중에 실이 엉키는 일은 허다하고, 또 제아무리 고약하게 얽혔다 하더라도 결국엔 실은 풀리게 마련이다. 정 손을 못 쓸 정도로 얽히면 군데군데 가위로 끊어내어 다시 맺는 한이 있어도 실은 한 가닥으로 유지를 해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 해서 다소 흠은 있더라도 하나의 스웨터나 목도리 덧신이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 말을 빌면 어려서 어머니 동네에 소경 처녀가 살았는데 뜨개질을 어찌나 잘하는지, 불을 꺼 놓고도 꽈배기 무늬 스웨터를 능숙하게 뜨더라고 들었다. 늘 우리가 무엇을 건성으로 대하여 잦은 실수하였을 때 어머니가 빈번히 쓰시는 예화이다. 그럴 때면 우리들은 "장님은 불 끄나 마나."라고 어머니의 원래 의도와는 딴판인 말을 하곤 했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무늬를 넣어 스웨터를 짜기 까진 무수한 'trial and error'을 거쳤으리라.

'가정대학을 나온 사람은 살림을 잘할 것이다.' 하는 편견은 내게서 버리는 것이 좋다. 뜨개질도 잘 못하면서 여고의 가정 선생을 7년간 하였다. 실습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정 선생을 하면서 뜨개질은 반에서 유난히 잘하는 아이를 조교 삼아 배워가며 가르쳤다. 후엔 솜씨가 생겨 남편의 조끼도 떠서 입히고 하였으나 그건 많은 양의 실을 버려가며 배운 후의 산물이었다.

남편은 시집올 때 가져온 수많은 덮개와 깔개 등의 수 공예품이 나의 솜씨인 줄 아직도 알고 있다. 거짓말은 안 했다.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을 말하자면 숙제 검사하다가..."참 예쁘구나" 한마디 하면, 마음 착한 여학생들은 고이 포장까지 하여 선생님에게 선물로 주곤 하였다. 옛날이야기 이긴 하다.

아름다운 많고 많은 말 중에 하필이면 고달프기 그지없는 '시행착오'라는 단어를 인생의 지침처럼 생각하며 산지 오래이다. 영어로는 'trial and error'이니 복잡한 문제를 실패를 거듭하면서 풀어 가는 과정, 혹은 그 고된 작업을 일컬음 이리라.

세상 살다가 펄펄 뛸 억울한 일도 있고 오해를 받거나 걸림돌을 만나면, 내 금언인 '시행착오'는 오히려 힘을 얻는다. 돌아보면 어느 발명가가 이 시행착오의 신고를 겪지 않고 인류에게 편함을 가져다줄 수 있겠으며 저마다 이루어낸 값진 빛난 것에 시행착오의 눈물과 땀이 섞이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뜨개질 솜씨 없는 내 앞에 한없이 얼크러져 있는 실뭉치는 언젠가는 적절한 대답이 주어지리라는 암시가 아닐까? 그런 시각에서 보면 오늘의 가망 없어 보이는 노력도 결국은 내일을 위한 투자로 이어질 거라 믿는다. 인생에 반복되는 trial과 error를 거치면서 더욱 성숙해지고 싶다.

수필가/ 이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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