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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Aug 17. 2016

더불어 살기

앞 세집, 두 옆집은 적어도 이웃으로

오래 전 읽은 책에서 일본 속담에 '앞 세집 두 옆집'이라는 이웃의 범위가 있다고 읽었다. 동네에 살면서 적어도 다섯 집과는 이웃이 되어 살라는 뜻으로 전해 내려오는 금언이라는 것이다. 그걸 읽고 나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생각했다.

어린시절 살던 연희동 신문사 주택은 온 마을이 서로 알고 교류하지 않았던가. 대한일보의 홍부장댁, 서울신문 송부장댁, 소설가 곽학송 선생이 오래 어울려 살았고 김광섭 시인도 새집 지어 이사오고, 조지훈 시인은 담 너머 뒷집 살다 이사가셨다.  집집마다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넘어 아이들 성적은 물론 아버지들의 월급과 명절 때 들어오는 선물까지 공유되어서 비밀이라곤 없었다.

너무 오픈된 한국식보다 이웃의 범위를 숫자로 정한 일본식 방법이 더 합리적인 것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살자 했는데 다섯집과 이웃되는 건 쉽지 않았다. 다섯집을 이웃으로 만들기 위해 수 많은 잡채 접시와 불고기와 부침개가 담장을 넘었다. 감사절엔 파이를, 성탄절엔 초콜릿을 돌렸다. 드디어 별식을 나눠먹는 친구사이가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니 두 앞집의 한나 할머니와 일본계 3세인 미오 아주머니가 세상을 뜨고, 옆집의 잭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다섯 이웃 중 한 앞집과 한 옆집만 남았다. 그 집들에 새로 이사온 젊은 가족들과는 통성명도 못했다. 서로 얼굴 마주칠 일이 없었다. '혈육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되었다.

2년 전 일요일 아침 아랫집에 불이 났을 때 불구경 나온 이웃들을 단체로 만날 수 있었다. 정말 많이 바뀌고 모르는 얼굴이 많아 놀랐다.  요즘 핫스팟이라는 우리 동네에 젊은 아티스트들이 몰린다는 소문대로 동네 길에 주차한 차들도 젊어졌다. 주민들의 차림도 깜짝 놀랄 만큼 파격적이다. 언덕 중턱엔 새 콘도가 들어서고 한적했던 실버타운이 활기가 넘치나 그리 반갑지는 않다. 이젠 내가 나이가 들어 소란한 게 싫어졌기에 말이다. 이웃과의 세대차를 절감하는 요즈음이다.

옆 집의 잭 할아버지와의 이야기를 쓴 글을 신문에서 읽은 분이 재미있게 읽었다며 방송출연을 요청하셨다. 그 분이 마침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여서 팔자에 없는 전파를 탔다. 수필가가 된 이유, 이민 1세로서의 글쓰기 전망, 문인의 삶 등을 질문하셨다. 한 편의 글 때문에 생긴 인터뷰였으나 내겐 시사하는 바가 컸다. 글을 쓰면 어느 누군가는 읽게 되며 단 한 명에게라도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글 쓰는 이유는 충분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좋은 이웃으로 살며 주변을 행복하게 하는 글을 써 달라는 덕담에 "네, 물론입니다" 흔쾌히 대답하고 왔는데 걱정이다. 적어도 세 집의 새 이웃을 만들어야 할 일이 숙제가 되었다. 주말에나 얼굴을 마주치며 "하이!" 인사만 나누던 앞 집의 젊은 부부를 뭘로 공략하여 마음을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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