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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Sep 02. 2017

하나님 난 몰라요

책임지세요

불량품
                                                                                                                                 수필가 이정아
 
  의사로부터 신장이식을 해야한다는 선고를 받고 나서는, 세상이 다 끝났다싶어 울며불며 지냈다. 친구들도 교인들도 위로 차 방문해서 함께 붙들고 기도하며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사무실 뒤편의 은밀한 장소에서 그랬어도 단체 울음소리에 놀란 직원들은 무슨 일인가 의아하게 바라보곤 했다.
 
 시간이 약이 되는 것인지 몸 상태가 호전된 것은 아닌데 마음이 점차 안정이 되어간다. 내 힘으로 고칠 수 없는 것이면 그냥 받아들이자고 생각을 바꾸니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생김새, 부모, 형제, 선천적인 질병 등의 타고난 것은 수단을 써서 변경 가능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나의 병도 그랬다. 선친과 같은 약한 신장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 신장기증자를 형제나 자매가운데 찾는 것이 가장 좋다는데 나의 남동생 셋은 모두 나와 같이 좋지 않은 신장을 가지고 있어서 나누어 가질 형편이 되질 못하였다. 다행이 혈액형이 같은 남편의 것을 받기로 하고 일단 큰 걱정을 덜었다 싶었는데, 이곳 UCLA 의사와 상담을 하니 50세 넘은 사람의 신장은 받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나?
 
 내가 다급한 마음에 "겉은 50이 넘어도 건강관리를 잘해서 속은 젊다."고 의사에게 애원하듯 매달리니 내가 생각해도 우스웠다. 토끼간을 빼먹으려는 거북이가 된 듯 별주부전이 생각난 탓이다. 알배기 꽃게를 파는 어물전 아주머니가 까보면 알이 많다고 호객 하는 것과 다를 게 무언가 말이다.
 
 같은 학번으로 생일이 늦을 뿐인 남편을 어리다고 타박하고 종종 놀리곤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영계와 결혼 할 걸 그랬다."는 푸념이 나왔다. 가족 중에서 찾지 못하면 신장센터에 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그 기간이 평균 5년 이상이라니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참을성 없는 나를 이번 기회에 혹독하게 훈련시키시려 작정한 듯 싶다.
 
 연휴에 으레 떠나는 맘모스 스키여행을 올해는 가지 못했다. 지난 밤까지도 가려고 짐도 쌌는데 며칠 전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다. 일년 전에 예약을 해 둔 것이라 취소도 불가능하고 해마다 아들과 남편은 스키여행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던가? 미안해하며 떠나는 두 부자를 보내고 나니 마음이 쓸쓸했다.
 
 주변의 친지와 교인들은 새벽기도로 중보 기도로 혹은 단체로 순번을 돌아가며 나를 위해 기도한다.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도 그러하다. 기도의 사슬이 든든하다. 그에 비해 정작 당사자인 나는 그러하지 못하였다. 기도를 해야하는 줄 알지만 마음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막막하여 기도도 나오지 않는다.
 
 마침 기회가 좋았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리라 결심했다. 지나온 날을 감사하기도하고 지금의 처지를 울며 하소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였다. 유전적으로 약한 신장을 갖고 태어난 것을 원망하곤 했는데, 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것이면 하나님이 불량품을 내보낸 것이 아닌가 싶었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는 공정에 약간 힘을 보태었을 뿐 원자재는 하나님이 만드셨을 테니 공연히 친정아버지를 탓할 일이 아닌 것이다.

 배꼽은 '메이드 인 헤븐'을 표시하는 하나님의 손도장이라고 어느 글에서 읽었거늘, 아직도 내 복부 한 복판엔 검수 낙관이 엄연히 존재하는 터이다. 디펙트(Defect)에 도장을 찍은 것이면 하나님이 책임져야할 일이 아닌가? 나의 이 신통한 생각에 처음엔 울음으로 시작된 기도가 슬며시 웃음으로 변하였다. 하나님이 반드시 고쳐주셔야 할 이유를 발견한 것이다.
 
 주님께 당당히 기도했다."불량품을 책임지세요. 나는 몰라요." 짐을 모두 벗은 듯 참 후련하였다.




펜문학 / 펜문학상 수상자 특집 / 자선 대표작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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