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tus festival
[이 아침에] 연꽃이 돌아오다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07.25.14 20:28
동네 어귀 에코파크에 다시 연꽃이 피었다. 2011년 연꽃 축제를 할 땐 연꽃이 한 송이도 없어서 썰렁했다. 연꽃이 안 피었으니 축제의 이름도 '연꽃축제(lotus festival)'가 아닌 에코파크 커뮤니티 페스티벌이었다. 그 이후 2년간 공원은 문을 닫고 호수 바닥을 청소하고 보수했다. 새로 심은 씨앗이 자리를 잡아, 올해 비로소 연꽃이 만개하고 로터스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연꽃축제를 얼마 전 열게 된 것이다.
연꽃은 본래 진흙 속에서 피는 꽃이며, 오염된 수질을 정화하는 꽃이어서 더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인공호수의 오래된 퇴적물이 공해의 원인이 되고 박테리아를 만들어 그걸 견디지 못하고 꽃이 모두 죽었다고 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연꽃 군락지였던 에코파크 호수에선 해마다 7월에 연꽃 축제를 벌이곤 했는데 연꽃이 없으니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렸다. 시에서는 4500만 달러를 들여 호수의 물을 다 퍼내고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고 수질 개선을 한 끝에 연꽃을 살린 것이다.
호수에 가림막을 세우고 공사를 시작할 때 나는 병을 고치러 한국엘 나갔다. 작년 6월 수술을 마치고 LA로 돌아오니 마침 호수가 재개장이 되어서 연꽃의 부활과 나의 새로운 삶이 같은 의미로 다가왔었다. 묵은 때를 벗긴 호수에 새로운 연꽃이 다시 태어나는 축복이, 새로운 신장을 이식하고 새 새명을 얻은 나와 오버랩이 되면서 나와 에코파크의 연꽃을 동일시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로터스 축제는 연꽃문화와 관련된 아시안 아메리칸의 축제의 장이기도 한데, 올해는 필리핀 커뮤니티 주관이어서 필리핀 음식과 음악, 댄스, 풍물이 더욱 풍성했다. 입구에 홍살문이 세워지고 붉게 칠한 구름다리가 동양풍이며, 호수에선 용머리를 한 드래건 보트 경주가 벌어졌다. 1972년부터 행해진 축제여서 오랜 역사 덕분이기도 하고 연꽃이 돌아왔다니 반가운 구경꾼이 잔뜩 몰린 흥겨운 축제였다. 크림색과 핑크색이 어우러진 탐스럽고도 우아한 연꽃은 호수의 절반을 차지하며 당당하고 품위 있게 떠있다. 어려움을 이겨낸 용사처럼 대견했다. 내 분신을 보듯 뿌듯했다.
"이 선생, 살아줘서 고마워요." 아주 오랜만에 듣는 문단 선배님의 음성이다. 신문을 읽고서 나의 근황을 알았다며 전화를 주신 것이다. 전화 너머의 목소리인데도 물기가 느껴진다. 감정이입이 되어서인지 전화를 받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았다. 여성이지만 남성스럽고 터프한 분으로 알고 있었다.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있는 분인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그러기에 더 진정성이 느껴진다. 친정 식구도 아닌 남이, 내가 살아줘서 고맙다니 이런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환자가 회복되었다고 고마워하는 감정이 평소 내게도 있었던가? 반성했다.
사실 수술 후에 카드나 이메일로 "살아줘서 고마워요"라는 글귀를 자주 받긴 하였다. 문인들이 잘 쓰는 인사말 정도로 알고 지나쳤다. 그런 말이 약간 근지럽기도 했었다. 내가 살려고 몸부림치고 고통을 견딘 것이 상대에게 고마운 일이라니 공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에코파크 연꽃의 돌아옴을 여러 사람이 반기듯, 나의 살아 돌아옴도 반가운 것이길 소망한다.
*오래전글, 오늘 일부 수정(사진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