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파랑의 채도

by 조하나


벤이 마련해 준 숙소는 해안가 언덕, 바람이 통하는 길목에 자리한 3층짜리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장식이나 기교를 걷어낸, 차가울 정도로 반듯한 직선의 미학. 벤이 머무는 숙소는 3층이었고, 그녀는 2층에 짐을 풀었다. 스튜디오는 건조하고 단정했다. 문을 열자 훅 끼쳐오는 다다미의 마른 풀 냄새, 창틀에 먼지 하나 내려앉지 않은 결벽에 가까운 청결함. 어제까지만 해도 그녀의 눅눅한 캐리어 안에서 곰팡이처럼 피어오르던 꼬따오의 습기, 벽을 기어 다니던 도마뱀의 비늘 같은 흔적은 이곳에 없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전혀 다른 위도의 세상이었다.


그녀는 짐을 대충 밀어 넣고 벤을 따라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5월의 이시가키는 본격적인 성수기를 앞두고 고요한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관광객의 들뜬 소음은 아직 밀려오지 않았고, 거리에는 하루 일과를 마친 현지인들의 나직한 말소리만이 파도 소리와 섞여 낮게 깔려 있었다.


벤이 그녀를 데려간 곳은 테이블이 고작 네 개뿐인, 붉은 가림막이 걸린 작은 소바 집이었다. 벤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하얀 김이 서린 주방에 있던 주인장과 옆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던 손님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벤을 확인하는 순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허리를 굽혔다.


“오, 벤 상!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


“곤방와(안녕하세요), 벤 상. 오늘은 친구분이 오셨나 보네요.”


그들의 태도에는 친절을 넘어서는, 기이할 정도의 존중과 환대가 섞여 있었다. 이 조용한 섬마을에서 벤은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 이시가키의 태양 아래 건강하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 헐렁한 린넨 셔츠 아래로 언뜻 드러난 다부진 근육, 그리고 훤칠한 키와 깊은 푸른 눈. 그들의 과도한 친절은 벤의 깊고 푸른 눈동자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몸짓 같았다. 벤은 그 시선들을 익숙한 듯 부드러운 미소로 받아냈지만, 그녀는 벤의 길고 화려한 그림자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쏟아지는 환대가 부담스러웠다.


그는 이 마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백인 유러피안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일본인이거나 아시안이었다. 꼬따오에서는 그녀가 철저한 이방인이자 소수자였는데, 이곳에서는 상황이 반전되었다. 하지만 권력의 지형도는 달랐다. 아시안이 절대다수인 이 폐쇄적인 섬 커뮤니티에서 소수의 백인은 언제나 ‘귀한 손님’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일본인 특유의 깍듯한 예의 바름에 백인에 대한 미묘한 선망이 섞인, 과도할 정도로 정중한 공기가 벤을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한 발 물러선 관찰자가 되어 그 낯선 풍경을 조용히 응시했다.


두 사람은 야에야마 소바와 오리온 맥주를 시켰다. 대화는 꼬따오의 파도처럼 잔잔했다. 벤은 굳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고, 이 섬에서 얼마나 머물 건지, 당장 무엇을 할 건지 묻지 않았다. 그녀 역시 그가 묻지 않는 말에 답하지 않았고, 무거운 문장을 식탁 위에 굳이 올리지 않았다. 그저 국물의 깊이에 대해, 내일 날씨에 대해, 그리고 이 섬의 명물이라는 만타가 물속에서 얼마나 우아하게 비행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테이블 위로 떨어진 노란 조명이 벤의 얼굴을 비췄다. 움푹 들어간 깊은 눈매, 그 아래 드리운 짙은 속눈썹의 그림자, 웃을 때마다 양볼에 희미하게 패인 보조개. 살짝 피곤한 듯 풀린 눈매로 그녀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꼬따오의 작열하던 햇살보다 다정하고 따뜻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투명한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기가 버거워 자꾸만 젓가락 끝으로 시선을 떨궜다. 그가 자신을 꿰뚫어 볼까 봐, 자기 안의 어둠이 그 맑은 눈동자에 티끌처럼 묻어 날까 봐 겁이 났다.


그녀는 문득, 젓가락을 쥔 손을 멈칫했다. 익숙한 기시감. 그리고 입안 가득 고이는 쓴물 같은 패배감. 그녀가 서울을 떠나오기 훨씬 전, 비 오는 거리에서 우산을 집어 던지며 해맑게 웃던, ‘태훈’의 냄새가 났다.


‘또, 이런 사람이야.’


그녀는 씁쓸하게 웃음을 삼켰다. 태훈은 태양 같은 사람이었다. 두려움도 의심도 없이, 빗물 웅덩이 속으로 첨벙 뛰어들며 “어설프게 발가락만 담글 바에 풍덩 빠지는 게 낫다”고 외치던 그 순수함.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투명함. 그의 곁에 있으면 그녀는 자신이 한없이 어둡고 눅눅한 곰팡이처럼, 햇볕을 쬐면 말라비틀어져 사라질 존재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의 압도적인 긍정과 건강함은 위로가 아니라 폭력이었다. 빛이 강할수록 그녀의 그림자는 더 짙고 선명해졌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도망쳤다. 그 빛에 눈이 멀어 ‘하나’라는 존재 자체가 증발해 버리기 전에, 그를 밀어내는 것으로 비겁하게 자존심을 지켰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 이 낯선 섬까지 와서 만난 벤에게서 또다시 그 ‘빛의 인간’ 특유의 냄새가 났다. 노력하지 않아도 뿜어져 나오는 여유,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저 천진난만함. 그녀는 본능적으로 의자를 뒤로 살짝 뺐다. 따뜻해서 다가가고 싶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타버릴 것 같은 불꽃. ‘나는 결국 이런 밝음 앞에서는 늘 쪼그라드는구나.’ 그녀는 벤의 호의가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본능적인 거부감으로 한 발짝 움츠러들었다. 그것은 빛을 두려워하는 심해어의 슬픈 습성이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그녀는 창밖을 보고 잠시 숨을 멈췄다. 꼬따오의 아침이 닭 울음소리와 오토바이 매연, 제멋대로 자라난 야자수들의 무질서한 활기였다면, 이시가키의 아침은 자를 대고 그은 듯한 정적의 세계였다. 도로는 티끌 하나 없이 하얗게 빛났고, 건너편 집의 생울타리는 90도로 반듯하게 깎여 있었다. 강박적인 깔끔함. 침범하지 않는 침묵의 예절.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는 공기.


역설적이게도 그 서늘한 거리감이 그녀는 꽤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세계 안에 단정하게 머물면서, 타인의 영역을 함부로 넘보지 않았다. 숙소 주인아주머니도 마주치면 가볍게 목례만 할 뿐 사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았고, 골목 어귀의 빵집과 라멘집은 하루에 딱 서너 시간, 자신이 정한 원칙대로만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 절제된 삶의 방식, 타인에 대한 무관심에 가까운 예의가 상처받아 너덜너덜해진 하나의 마음을 오히려 차분하게 다림질해 주는 것 같았다.


“가자, 하나. 바다 보여줄게.”


벤의 트럭을 타고 해변으로 나가 배에 올랐다. 다이빙 포인트에 도착해 장비를 메고 입수하기 직전, 그녀는 꼬따오와는 차원이 다른 바다의 채도를 눈으로 확인했다.


그녀가 머물던 타이만의 바다가 에메랄드빛이 섞인 몽환적이고 탁한 녹색이었다면, 지금 이곳의 바다는 잉크를 통째로 쏟아부은 듯 짙고 깊은 파랑이었다. 사람들이 왜 이 바다를 ‘이시가키 블루’라고 부르는지 설명이 따로 필요 없었다. 수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시릴 만큼 쨍하고 날카로운 원색의 파랑은 아름다움을 넘어선 경외감마저 자아냈다.


“준비됐어?” 벤의 신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호흡기를 입에 물고, 한 손으로 마스크를 눌러 잡았다.


‘풍덩.’


입수하는 순간, 하나는 탄성을 삼켰다. 차가웠다. 그리고 가혹할 정도로 투명했다. 수면 위에서 보았던 그 짙은 파랑은 물속으로 들어오자 수정처럼 맑은 투명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수심 20미터 아래 바닥에 깔린 하얀 산호 조각과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가 HD 화면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숨을 곳이 없었다. 꼬따오의 탁한 물속에서는 자신의 표정도, 흘러나오는 눈물도 흐릿한 부유물 속에 감출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벤의, 그리고 태훈의 그 눈부신 밝음처럼, 이 바다는 그녀의 어둠과 구김을 조금도 숨겨주지 않을 기세였다.


그녀는 천천히 하강했다. 이퀄라이징을 하며 귀의 압력을 맞추고, BCD의 공기를 미세하게 조절해 중성 부력을 잡았다. 그녀의 움직임에는 더 이상 군더더기가 없었다. 벤의 도움 없이도 조류를 읽었고, 핀을 차는 동작은 간결하고 우아했다. 물속에서의 그녀는 육지에서의 소심하고 눈치 보는 그녀와 달랐다.


그녀는 물속에서 벤을 돌아보았다. 벤이 마스크 너머로 눈을 크게 뜨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완벽해.’


그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오래전, 그가 처음으로 안내했던 바닷속 세상에서 마스크 물 빼기조차 무서워 허우적거리던 초보 다이버는 없었다. 대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상실을 견뎌내며, 클로드라는 스승을 잃고 홀로서는 법을 배운 프로 다이버가 그 투명한 이시가키의 물속을 유유히 유영하고 있었다. 그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녀는 벤의 호들갑스러운 칭찬에도 불구하고 그저 담담하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핀을 찼다.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은, 자신의 치부까지 다 들여다보이는 이 정직하고 투명한 세상 속으로. 그녀의 검은 형체가 시리도록 푸른 바다의 심연을 가르고, 한 마리 물고기처럼 유연하게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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