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삶을 정리하는 데는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국의 각종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와 인디 밴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낡은 28인치 캐리어 하나. 그것이 ‘하나’라는 인간이 30여 년간 쌓아 올린 생의 물리적 부피였다.
한때 서울의 아파트 평수와 통장 잔고, 직함과 명함으로 자신을 부풀리고 증명하려 했던 그 거대하고 시끄러운 삶이, 고작 이 사각형 플라스틱 상자 안에 구겨져 들어갔다. 바닷물에 절어 뻣뻣해진 수영복, 낡은 래시가드 몇 장, 다이빙 센터에서 준 공짜 티셔츠 몇 장, 그리고 아직도 김치 냄새가 배어있는 옷가지들. 그녀는 캐리어의 지퍼를 눌러 잠그며, 마지막 1센티미터를 닫을 때 손끝에 전해지는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녀를 잠식할 만큼 압도적이었던 고통도, 숨 막히게 했던 책임감도, 결국 지퍼 하나로 밀봉되어 바퀴 달린 가방 속에 갇혔다. 이토록 가벼운 것을 짊어지기 위해, 그녀는 지난밤 그토록 무겁게 울었던가. 그녀는 캐리어 손잡이를 잡았다.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플라스틱의 감촉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너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뿌리 없는 부레옥잠처럼.
항구로 가는 픽업트럭은 다이빙 센터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케빈과 줄리앙, 안드레가 문 앞까지 배웅을 나왔다. 아침 8시의 평온한 햇살 아래, 그들은 그녀가 열쇠를 반납하고 떠나는 순간에도 여전히 지독하게 느긋했다. 줄리앙은 아직 덜 깬 숙취로 충혈된 눈을 비비고 있었고, 케빈은 찻잔을 든 손으로, 안드레는 오일이 묻은 검은 손을 흔들었다.
“잘 다녀와, 하나. 만타 사진 꼭 보내주고.”
“돌아올 때 면세점 위스키 알지? 싱글몰트로 부탁해.”
그들의 작별 인사는 비장한 ‘굿 바이(Goodbye)’이 아니라, 편의점에 다녀오는 사람에게 건네는 가벼운 ‘씨 유(See you)’에 가까웠다. 아무도 그녀가 영원히 떠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꼬따오는 원래 그런 섬이었다. 조류에 떠밀려온 플라스틱 병처럼 아무런 예고 없이 흘러들어왔다가, 기약 없이 떠나고, 또 어느 날 갑자기 유령처럼 다시 나타나 “맥주 한잔 줄래?”라고 묻는 곳. 그녀 역시 그 유동적인 흐름의 일부였으므로 눈물 젖은 포옹 따위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 다들 잘 지내고 있어. 센터 망하게 하지만 말고.”
그녀는 쿨한 척 선글라스를 끼고 트럭에 올랐다. 짐칸에서 덜컹거리는 캐리어를 붙잡고는, 그녀는 트럭이 코너를 돌아 흙먼지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그들의 태평한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것이 밉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무심함이 지금은 위로가 되었다.
고단한 수행과 같은 여정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고속 페리의 눅눅하고 곰팡내 나는 선실에 앉아 있다가 그녀는 밖으로 나가 점처럼 멀어지는 섬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검푸른 바다를 가르는 새하얀 물살의 요동을 바라보며 당장이라도 여기에서 뛰어내려 바닷속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춤폰 항구의 비릿한 짠내를 뒤로하고, 다시 8시간을 달려야 하는 방콕행 2층 버스의 좁은 좌석에 몸을 구겨 넣었다. 에어컨 바람은 시렸지만, 차창 밖 어둠 속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태국의 시골 풍경은 여전히 습하고 끈적했다. 유리창 너머로 뭉개지는 야자수와 드문드문 박힌 태국어 간판. 기시감이 밀려왔다. 몇 달 전, 그녀는 정확히 이 버스를 타고, 이 좁은 좌석에 앉아, 저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 채 남쪽으로, 더 깊은 남쪽으로 내려왔었다. 그때의 그녀는 서울에서 도망친 겁쟁이였고, 내일이 두려운 이방인이었으며, 아직 바다의 깊이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버스는 필름을 되감듯 북쪽으로 달리고 있고, 창가에 기대앉은 그녀는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질량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태양에 그을려 뻣뻣했고, 손바닥에는 쇠붙이를 쥔 굳은살이 박여 있었으며, 폐부 깊숙한 곳에는 질소의 마취와 수심 30미터의 고요가 침전물처럼 쌓여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이제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이 얼마나 쿨하고 비겁하게 삶을 이어가는지를 알아버렸다. 같은 버스, 같은 풍경이었지만, 그 안에 앉아 있는 영혼의 무게만큼은 더 이상 같을 수 없었다.
새벽의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오키나와 나하 공항으로, 다시 거기서 국내선을 갈아타고 이시가키(石垣) 섬으로.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동안, 공기의 질감이 바뀌었다. 태국 특유의 향신료와 매연, 젖은 흙냄새가 섞인 무겁고 둥근 공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소독된 듯 건조하고 날카로운, 소금기 머금은 일본의 공기가 채워졌다.
이시가키 공항에 내렸을 때, 그녀는 묘한 이질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같은 아열대의 섬이지만, 꼬따오와는 결이 달랐다. 도로는 자를 대고 그은 듯 반듯했고, 가로수로 심어진 야자수조차 군대 사열을 받듯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었다. 거리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고, 사람들의 표정에는 침범할 수 없는 얇은 막이 씌워져 있었다. 이곳은 류큐(琉球). 역사적으로 일본이 아니었던 땅. 본토 사람들은 그들을 남쪽의 변방이라 불렀고, 이곳 사람들은 스스로를 ‘재패니즈’가 아닌 ‘오키나완’ 혹은 ‘이시가키 사람’이라 칭했다. 그 미묘한 정체성의 틈새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그녀의 마음을 묘하게 파고들었다.
렌터카를 타고 해안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내면에서 불쑥 낯선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질투였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꼬따오보다 투명했고, 검은 현무암과 어우러진 하얀 백사장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다 가졌구나.’ 한국인으로서 유전자에 각인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본능적인 적개심과 경쟁심이 꿈틀거렸다. 북쪽 끝 홋카이도의 설산과 유빙(流氷)부터, 남쪽 끝의 이 거대한 산호섬 군도까지. 사계절의 절경을 모두 품에 안은 이 나라의 지리적 축복이 샘이 났다. 그들의 조용하고 예의 바른 문화,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개인주의를 동경하면서도, 압도적인 풍경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패배감을 느끼는 자신의 이중성이 우스웠다.
아차, 상념이 너무 깊었다. 한국과는 반대인 운전석과 주행 방향. 풍경에 대한 질투와 동경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 탓일까. 습관적으로 우측통행을 하려다 마주 오는 차를 보고 황급히 핸들을 꺾었다. 깜빡이를 켠다는 게 와이퍼를 작동시켜, 맑은 유리창 위로 고무 날이 끼익 끼익 비명을 질렀다. 당황한 그녀가 급하게 핸들을 왼쪽으로 꺾어 갓길로 붙이려는 찰나였다. ‘쿵!’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차체가 푹 꺼지며 기우뚱했다. 도로 경계석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타이어 옆구리를 찢어발긴 것이다.
그녀는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아… 제발.” 내려서 확인해 보니, 왼쪽 앞 타이어는 처참하게 찢어져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의 주저앉은 마음 같았다.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는 한적한 해안 도로였다. 사탕수수밭 너머로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휴대폰 로밍 신호는 약했고, 보험사 번호가 적힌 서류는 트렁크 깊숙이 처박혀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또 사고라니. 내 인생은 왜 늘 이 모양일까.’ 자조 섞인 한숨이 터져 나올 무렵, 낡은 경트럭 한 대가 덜덜거리는 엔진 소리를 내며 그녀의 차 뒤에 멈춰 섰다.
트럭에서 내린 건 칠순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이시가키의 태양에 새까맣게 그을린 노인이었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에 수건을 머리에 두른 그는 영어를 전혀 못 했다. 하나 역시 일본어라곤 인사말 몇 마디가 고작이었다. “아노… 타이어… 펑크….” 그녀는 손짓발짓을 하며 찢어진 타이어를 가리켰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울상이 되어 있었다. 노인은 말없이 타이어를 쓱 훑어보더니, 찡그리는 기색 하나 없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 잡힌 주름은 깊고 온화했다. 마치 이 섬의 파도가 수만 번 깎아 만든 해안절벽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트럭에서 묵직한 공구를 꺼내왔다. 그녀가 렌터카 트렁크를 뒤져 스페어타이어를 꺼내는 동안, 그는 이미 쟈키를 차체 밑에 밀어 넣고 능숙하게 차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대화는 필요 없었다. 기름때 묻은 투박한 손이 휠 너트를 풀고, 펑크 난 바퀴를 빼내고, 새 바퀴를 끼워 넣는 일련의 과정은 마치 무성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고요하고 리드미컬했다. 쇳소리와 바람 소리뿐인 그 공간에서, 그녀는 옆에서 볼트를 받아 들거나 물병을 건네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아리가또….” 그녀가 아는 유일한 감사의 언어였다. 그 말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타이어 교체가 끝날 무렵, 세상은 온통 보랏빛과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잠기며 뿜어내는 마지막 빛이 사탕수수밭을 황금색으로 일렁이게 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쏴아아’ 하고 사탕수수 잎들이 서로 몸을 비비는 소리가 파도 소리처럼 들려왔다. 노인은 기름 묻은 손을 바지에 쓱쓱 닦으며 하나를 바라보았다. 땀방울이 맺힌 그의 이마가 노을빛을 받아 붉게 빛났다.
“나마에(이름)?” 노인이 툭, 던지듯 물었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하나. 마이 네임 이즈 하나.”
“하나?” 노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는 입속으로 ‘하나, 하나’를 몇 번 되뇌더니, 빙그레 웃으며 길가 풀숲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가 허리를 숙여 꺾어 온 것은 이름 모를 들꽃 한 송이였다. 도로변 먼지 속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난, 작고 노란 꽃. 바람에 가늘게 흔들리지만 꺾이지 않는 연약한 생명. 그는 그 꽃을 하나의 손에 쥐어주며, 굵고 투박한 손가락으로 꽃을 한번, 그리고 하나를 한번 번갈아 가리켰다.
“하나(花).” 그가 말했다. “하나와, 하나(꽃은, 하나).”
그 순간, 하나의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하고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다. 일본어로 ‘하나’가 ‘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낯선 섬의, 말도 통하지 않는 타인에게서, 사고로 얼룩진 하루의 끝에 선물 받은 그 이름은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서울에서의 ‘하나’는 그녀의 부모님이 지은 소중한 이름이었다. ‘이 세상에 너는 하나뿐이란다.’ 그 ‘유일함’의 축복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거친 파도 속에서 닳고 닳아, 언제부턴가 그녀 자신조차 잊고 지냈던 의미였다. 그저 흔한 이름, 혹은 감당하기 버거운 삶의 명찰로만 느껴졌을 뿐. 꼬따오에서의 ‘하나’는 과거를 지우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익명에 가까운 껍데기였다. 하지만 이곳 이시가키의 노을 아래서, 낯선 노인의 투박한 손끝에서, 그녀의 이름은 다시 태어났다. 세상에 하나뿐인 꽃. 아무런 수식어도, 기대도, 책임도 없이. 그저 길가에 피어있다는 이유만으로 존재를 인정받고 사랑받는 꽃. 부모님이 처음 그녀를 안고 불러주었을 그 따뜻한 온도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방의 땅에서 꽃 한 송이가 되어 되돌아왔다.
그녀는 노란 꽃을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싸 쥔 채, 90도로 허리를 깊게 숙였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이번에는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었다.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노인은 쿨하게 손을 한번 흔들고는 경트럭에 올라타, 털털거리며 황금빛 사탕수수밭 사이로 사라졌다.
사탕수수 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만이 남은 적막한 도로. 그녀는 붉게 물든 바다를 배경으로, 손에 쥐어진 작은 꽃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때였다.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정적을 깨는 짧고 규칙적인 리듬. 그녀는 꽃을 든 손으로 조심스럽게 전화기를 꺼냈다. 액정에 뜬 낯익은 이름. [Ben]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바람 소리와 함께, 기다렸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도착했어?”
그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방금 전 낯선 노인을 통해 ‘꽃’으로 확인받았던 이름이, 이번에는 다정한 ‘사람’의 목소리로 불리고 있었다. “하나?” 대답이 없자 그가 다시 한번 그녀를 불렀다. 그제야 그녀는 노란 들꽃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울음 섞인 미소를 지었다.
“응, 벤. 나 여기 있어.”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를 바라보았다. 타이어는 다시 굴러갈 것이고, 길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하나’였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꽃처럼 피어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