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자신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 이후 최고의 홀로코스트 영화”라 극찬한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입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더 웨일> <패스트 라이브즈> <톡 투 미> <비프> <문라이트> 등 기발하고 파격적인 예술 영화를 및 시리즈를 제작 및 배급해 오며 미국 독립영화계의 떠오르는 신흥 강자로 꼽히는 스튜디오 A24 영화이기도 합니다. 제76회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죠. 같은 해 황금종려상은 <추락의 해부>에 돌아갔지만, 두 작품 모두 산드라 휠러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1943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지휘관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와 가족이 사는 그들만의 꿈의 왕국 아우슈비츠.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가 정성스럽게 가꾼 꽃이 만발한 정원에는 재잘거리는 다섯 자녀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합니다. 회스는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과 낚시를 즐기고, 회스 부인은 정원을 가꾸며 시간을 보내죠. 대부분의 집안일은 유대인 하인들이 처리하고, 담장 너머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유대인의 유품은 회스 가족에게 전달됩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예고편 / 한국 배급 찬란
독보적인 스타일리스트이자 유대인 감독이 다룬 홀로코스트 영화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영국 출신으로 1990년대 미셸 공드리, 스파이크 존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뮤직비디오계에 혁명을 불러일으킨 독보적인 스타일리스트입니다. 90년대 황금기를 맞았던 브릿팝과 브리티시록을 대표하는 매시브 어택, 블러, 라디오헤드 등의 뮤직비디오를 찍었죠. 자미로콰이의 ‘Virtual Insanity’는 지금까지 회자되는 글레이저 감독의 명작입니다.
자미로콰이 ‘Virtual Insanity’(1996)
2000년, 글레이저는 <섹시 비스트>를 통해 장편 영화감독으로 데뷔합니다. 동시대 스타일리스트로 함께 비교되는 가이 리치와 에드가 라이트와는 달리 대중성을 지양하고 색다른 소재와 연출의 예술 영화를 지향하는 글레이저 감독은 독창성과 실험성 강한 연출과 각본을 고집하죠. 건조한 화면과 실험적인 연출 속에서 소품을 탁월하게 이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배경 채도를 낮춘 대신 극단적인 조명을 사용해 화면의 시야와 집중도를 높여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감독의 스타일은 그의 세 번째 장편 <언더 더 스킨>에서 도드라집니다.
글레이저 감독은 유대인입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통해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대명사와도 같은 ‘아우슈비츠’라는 엄중한 주제를 절제된 연출과 각본으로 탄생시킨 그는 놀랄 만큼 덤덤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합니다. 이와 상반되게 고급스럽고 화려하면서도 날카로운 정원의 조경을 보여주는 미술과 조명으로 잔인한 상황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풍경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을 꼬집고 풍자합니다.
ⓒ 존 오브 인터레스트 / A24
영화 배경에 깔린 무시무시하고 진저리 쳐지는 소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그중 음향상과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았습니다. 제77회 영국 아카데미에서도 음향상을, 제36회 유럽영화상에서도 음향상을 받았죠. 글레이저 감독이 영화의 주제와 거리를 유지하고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사운드 연출’이었습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고, 보이지 않음으로써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글레이저 감독은 영화 내내 유대인이 박해받는 모습을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간접적인 음향과 암시, 대화, 연출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을 뿐이죠. 담장 너머에선 인류 역사의 가장 끔찍한 만행이 벌어지고 있는데 가해자와 그 가족은 아무렇지 않게 평화롭게 일상을 누립니다. 게다가 그들을 다루는 시각조차 건조하고 덤덤합니다. 그런 와중에 동물과 식물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회스 가족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위화감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영화 속 음향이 탁월하게 작동합니다. 평화로운 회스 가족의 일상에서 마음대로 켰다 끌 수 없는 배경음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담장을 넘어오는 유대인들의 아우성과 나치의 명령 소리, 발포음과 비명소리, 불길에 휩싸인 용광로 소리입니다. 회스 가족이 아무리 탐스럽고 생명력 가득한 꽃들로 정원을 가꾸어도 담장을 넘어오는 소리는 막을 수 없습니다. 영화 내내 이 무시무시하고 진저리 쳐지는 소음이 저음역부를 차지하며 깔려있습니다. 가장 압권은 영화가 끝난 후 스태프 롤이 올라갈 때 나오는 배경 음악입니다. 영화 내내 조금씩 들리던 아우성을 한꺼번에 응축한 듯 관객을 압도하는 이 사운드는 베를린 지하철, 함부르크 축구 경기장, 2022년 파리 폭동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난 소리를 수집한 것이라고 합니다.
중공업과 인간의 고통이 공존하는 수용소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영화 내내 관객을 괴롭힙니다. 아니, 영화가 끝나고 더 괴롭힙니다. 그 불쾌하고도 불편한 배경음은 회스 가족의 아름다운 정원에 피어난 달리아의 핏빛을 더욱 붉게 느껴지도록 만듭니다. 끔찍한 폭력과 공포를 직접 보여주지 않고도 가장 폭력적인 영화가 될 수 있음을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우아하게 보여줍니다.
ⓒ 존 오브 인터레스트 / A24
나치의 집, 빅브라더, 그리고 하나의 세계
유대인 글레이저 감독이 이 영화와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독특한 ‘촬영 방식’입니다. 집 안과 정원 곳곳에 여러 개의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한 뒤 스태프들은 벽 뒤에 있는 트레일러로 모두 철수했죠. 배우들은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 덕분에 배우들은 정말 자기들끼리만 생활하듯 행동하며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글레이저 감독이 “나치의 집에 있는 ‘빅브라더’ 같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관찰 일지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결과물이 되었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는 드라마가 없습니다. 피해자 서사나 절망과 싸운 홀로코스트 영웅 서사를 피하는 대신 관객의 상상력과 감정적 반응을 위해 최대한의 공감을 남겨둡니다. 관객은 드라마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회스 가족의 저택 담장 너머 수용소 화장터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밤하늘을 밝히는 용광로의 붉은빛,장미밭을 비옥하게 하는 회색빛 재 같은 디테일에 주목하게 됩니다.
강박에 가까운 사각형 촬영 구도 역시 단조롭고 평범한 누군가의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겐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이자 감옥일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극적인 드라마 없이 영화에서조차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홀로코스트라는 배경에 사운드와 미술만으로 서늘한 암시를 만들어 관객을 공포로 휘감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름다움과 잔인함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 존 오브 인터레스트 / 한국 배급 찬란
칸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그랑프리를 수상할 당시 일부 비평가들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이것이 바로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메시지입니다. 이 영화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그립니다. 유대인 감독이 결코 객관적일 수 없는 홀로코스트라는 민감한 소재를 영화로 다루는 데에 있어서 이러한 자기 절제와 감성의 결여가 오히려 감독이 이 주제에 대해 얼마나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더욱 강력하게 말해줍니다.
괴물 같은 인물에게 인간의 얼굴을 부여하다
영화에서 인부가 집에 돌아온 루돌프 회스의 가죽 장화를 수돗물로 씻자 물이 빨갛게 변하고, 정원 인부가 수용소에서 나온 재를 화단에 뿌리고, 회스 부부의 딸은 몽유병을 앓고 있으며, 큰아들은 동생을 온실에 가두고 ‘쉭쉭’ 거리는 가스실 소리를 내며 괴롭힙니다. 가족의 개는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정원을 뛰어다니며 벽 아래 흙냄새를 맡죠. 영화 내내 관객을 괴롭히는 불쾌하고 불편한 배경음과 시각으로 전해지는 매쾌한 연기 냄새는 회스 가족에겐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얻어야 할 ‘인터레스트(이익)’가 있으니까요.
ⓒ 존 오브 인터레스트 / 한국 배급 찬란
반대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 있는 포로들은 담장 너머로 무슨 소리를 들었을까요? 회스 가족의 아이들이 웃으며 뛰놀고 수영장에서 물장구치며 즐거워하는, 자신들에겐 결코, 다시는 허락되지 않을 일상의 소리를 들었겠죠. 이처럼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신화적인 악’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묘사된 홀로코스트의 가해자들에게 평범한 인간의 얼굴을 부여합니다. 그저 우리처럼 평범한 존재 말입니다.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 이들은 별나거나 특별하거나 미치거나 아프지 않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관객으로 하여금 용서할 수 없는 잔인함 뒤에 숨겨진 악의 평범성을 냉정하게 바라보도록 하죠.
회스 가족의 실제 저택 사진
ⓒ 존 오브 인터레스트 / 한국 배급 찬란
‘악의 평범성’은 나치 친위대 장교이자 홀로코스트를 총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한 말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뿐 아니라 수많은 나라에서 유대인 교수를 해고하고, 철도 회사는 수용소행 열차를 운영했으며, 화장 회사는 수용소에 대규모의 화장터를 지원하고, 각종 제약 회사는 수용소 포로를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 참가 등 학살에 대한 대규모 시스템적 동조가 이뤄졌고, 이러한 구조적 악이 나치의 전체주의를 기능하게 했으며, 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학살에 책임이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을 비롯한 독일 나치 부역자들은 무슨 특별한 사이코패스나 고도로 훈련된 살인 병기가 아닌, 그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의미합니다.
히틀러나 괴벨스 같은 괴물도 물론 존재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질문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믿고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명확히 짚어냅니다.
ⓒ 존 오브 인터레스트 / 한국 배급 찬란
회스 부부는 제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는 신분 상승의 기회로 삼은 노동자 계급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과 다르지 않듯 부르주아가 되기를 열망했죠. 유대인 포로에게서 가져온 모피 코트를 입고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주머니 안에 있던 립스틱을 발라보는 회스 부인은 “사람들이 나를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라고 불러요”라며 어머니에게 자랑합니다. 남편이 다른 수용소 감독 일로 자리를 옮기게 되자 회스 부인은 히틀러까지 운운하며 자신이 지금껏 가꿔온 아름다운 저택을 포기할 수 없다고 떠나기를 거부하죠.
인간은 멈추면 생각합니다. 생각하면 반성하게 되죠. 그래서 회스 부인은 생각하지 않으려 항상 뭔가에 몰두합니다. 그녀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성찰이나 배려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생각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끊임없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 존 오브 인터레스트 / 한국 배급 찬란
감독은 회스 가족의 자료를 조사하면서 당시 그들의 모습이 현재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계층, 인종, 젠더, 세대 갈등은 물론 온갖 종류의 벽으로 가득 찬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가 회스 가족이 아우슈비츠 수용소 담장 바로 옆에 지은 낙원, 그리고 그곳을 떠날 수 없다는 회스 부인의 천박한 기괴함을 그저 ‘역사에 기록된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요?
(좌) 존 오브 인터레스트 / (우) 루돌프 회스 가족의 실제 모습
악의 힘이 있다면 선의 힘도 있다
영화에서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해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장면들은 글레이저 감독이 사전 조사를 할 때 만난 한 폴란드 여성의 실제 경험담입니다. 당시 아우슈비츠 근처에서 거주하던 10대 소녀 알렉산드라 비스트론-코우드지젝은 밤마다 유대인들의 호송 루트 및 노역 장소에 몰래 과일을 갖다 놓았었다고 해요. 이후에는 폴란드 지하 반군에도 가입해 메시지 전달 임무를 수행했다고. 영화에서처럼 그녀는 한 포로가 작곡한 음악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에 나온 소녀의 자전거와 드레스 역시 모두 그녀가 실제 간직해 온 것들이었죠.
ⓒ 존 오브 인터레스트 / 한국 배급 찬란
글레이저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2014년부터 이 영화를 준비하던 중 너무 절망적이고 암울해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 했었답니다. 그때 만난 알렉산드라 비스트론-코우드지젝 때문에 힘을 얻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 작은 저항의 행위, 노역장에 사과를 남기는 단순하고도 성스러운 소녀의 행위가 한 점 빛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소녀의 장면들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유일하게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드라 비스트론-코우드지젝은 영화가 공개된 후 얼마 안 돼 세상을 떠났습니다.)
회스가 건물 복도 계단을 내려오다 말고 구토를 하는 장면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가장 악몽 같은 장면입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2012년 다큐멘터리 <더 액트 오브 킬링>에서 인도네시아 대학살범이 구토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죠. 하지만 회스는 결국 아무것도 토해내지 않습니다. 그는 실제로 전범 재판을 받는 동안 자신의 죄를 조금도 후회하거나 뉘우치지 않았고,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바로 그가 초대 소장으로 부임하고 수백만의 유대인 학살을 감독했던, 바로 그의 집 앞 아우슈비츠 형무소에서 말이죠.
존 오브 인터레스트
(좌) 실제 회스 가족 (우) 아우슈비츠 형무소에서 처형되는 루돌프 회스
몇 걸음만 더 가면 다시 그 길이다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을 때 글레이즈 감독은 수상소감을 통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한 가자 지구 민간인 사망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그들이 그때 우리에게 무엇을 했는지 보세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보세요!’를 말하는 영화”라며 “하마스의 10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으로 살해된 사람들이든 지금 진행 중인 가자 지구 공격의 피해자들이든, 인간성 말살의 희생자란 점에선 다르지 않습니다. 이에 우리는 저항하고 있습니까?”라며 호소했습니다. 소감을 말하는 감독의 손이 떨리는 걸 보면, 그 역시 이 말의 경중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 감독이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로 아카데미 상을 받으면서 이런 말을 하긴 정말 쉽지 않았죠. 자신의 영화 커리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유대계 영화인들이 양분되어 격렬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후 에이미 파스칼, 제니퍼 제이슨 리, 줄리아나 마굴리스, 데브라 메싱, 일라이 로스, 마이클 래퍼포트 등 1천여 명 이상의 유대인 창작자와 경영진이 글레이즈 감독을 명예훼손으로 비난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했습니다. 그리고 몇 주 후, 이번에는 450여 명이 넘는 유대인 창작자들이 글레이저 감독을 옹호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했죠. 그중에는 조엘 코엔(코엔 형제), 토드 헤인즈, 호아킨 피닉스, 데이비드 크로스, 일라나 글레이저, 애비 제이콥슨, 엘리엇 굴드, 월리스 숀, 영화 작곡가 미카 레비, 극작가 토니 쿠슈너와 조이 카잔 등이 있습니다.
홀로코스트를 말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 명작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유대인 감독은 그 영화로 상을 받는 자리에서 용기를 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의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 만행에 유대인의 정체성과 홀로코스트가 활용되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낸 것입니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 ⓒ AFP PHOTO
“제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우리가 ‘과거’라고 생각하는 이 끔찍한 사건과 우리가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지를 다시금 상기시키고 경종을 울리기 위함입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결코 과거가 아니며, 현재 전 세계 곳곳의 극우 포퓰리즘의 성장과 함께 이러한 일들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어리석고 위험하고 끔찍한 길이 불과 몇 걸음만 가면 있습니다. 불과 몇 걸음 떨어져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