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숲속 시골 마을에 살다 보면 가끔 읍내에 나가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에 갈 일이 생긴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짧게는 몇 주, 길게는 한 달에 한 번 숲속을 벗어나는 특별한 외출을 감행할 때가 있는데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서 걷다 보면, 지나다 차를 멈추고 읍내까지 태워주겠다는 마을 이웃의 호의를 한사코 거절하며 “오랜만에, 걷고 싶어서요”라고 낭만적인 이유를 대며 씩 웃곤 한다.
“오랜만에, 걷고 싶어서요”라고 낭만적인 이유를 대며 씩 웃곤 한다 ⓒ 조하나
숲속의 집을 나서 읍내까지는 직접 차를 몰고 갈 수도 있고, 스쿠터나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나는 두 발로 천천히 걷는 걸 좋아한다. 서울 생활을 하며 가까운 거리도 택시를 타고 다녔던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지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을의 이 집 저 집 정원에 핀 꽃들과 담벼락에 걸어 말리는 마늘 더미들과 온종일 할 일이라곤 낯선 사람을 향해 악의 없이 짖는 개들과 인사하며 걷는 게 어느새 설레고 기대되는 특별한 이벤트가 되어간다.
그렇게 천천히 걷다 보면 작고 외로운 버스 정류장이 나타난다 ⓒ 조하나
그렇게 천천히 걷다 보면 작고 외로운 버스 정류장이 나타난다. 몇 번 버스가 몇 분 후 도착한다는 정보도 없이 정류장에 앉아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눈앞에 지나는 차들이라곤 노인 돌봄이나 요양 서비스뿐이다. 대중교통이 들어오지 않는 깊은 숲속 마을에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살아온 이제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시에서 지원하는 마을 택시 서비스가 있었지만 얼마 전 지역 시군의 예산 부족으로 중단됐다. 나는 감사하게도 여전히 튼튼한 두 다리가 있어 걷기라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이동권조차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들었다 놓이길 반복하니 숲속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젊음에만 허락된 것일지도 모른다.
버스에선 내가 제일 어린 막내다 ⓒ 조하나
운이 좋으면 10분, 아니면 1시간까지도 기다려야 하는 마을버스가 도착하면 기사님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천천히 문을 열어주고, 버스에 올라 자리를 찾은 내가 앉고 나서야 서서히 출발하는 습관은 평균 연령이 60대 이상인 시골 마을에서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버스에선 내가 제일 어린 막내다. 급할 것 없는 버스가 인적도 차량도 드문 유령도시의 도로를 천천히 달리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에 버스에 탄 할아버지, 할머니의 은빛 머리칼을 보드랍게 쓸어내린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아 버스를 탄다.
버스에 탄 사람들 대부분의 목적지는 같다. 5일마다 열리는 장을 보러 가거나 의사를 만나러 병원에 가기 위해 모두 읍내에 내린다. 몇 명 안 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버스에서 내리는 시간만 해도 서울에서 한 정거장은 운전했을 법하다. 하지만 아무도 재촉하지 않고, 팔짱을 끼고 눈을 흘기지도 않는다. 아무리 긍정의 언어를 바닥까지 긁어낸다 해도 소멸하는 지역을 관통하는 쓸쓸하고 무기력한 분위기는 읍내도 피해 가지 못한다. 각양각색의 병원과 의원들 말고는 대부분 상가는 빈 채로 영원히 오지 않을 임대인을 기다리고 그나마 있는 식당들도 점심과 저녁 장사 한두 시간 외에는 전부 브레이크 타임이라 영업하는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더 길다.
나는 읍내에 가면 맥도널드부터 들린다. 소멸하는 공간의 서글픔과 애잔함이 짙게 깔린 곳에서 전 세계 어딜 가든 같은 이름의 메뉴와 맛을 선보이는 글로벌 시대를 상징하는 맥도널드의 생경한 분위기가 재미있어서다. 매장은 텅 비었지만, 시골 땅값이 싸니 크고 널찍하다. 서울에서도 방콕에서도 타이베이에서도 엘에이에서도 늘 주문하는 쿼터 파운드 치즈버거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가 아무도 없는 창가 테이블에 앉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소멸하는 풍경과 사람들을 바라본다.
아무도 없는 창가 테이블에 앉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소멸하는 풍경과 사람들을 바라본다 ⓒ 조하나
숲속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나의 시간은, 그리고 나의 삶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지나간다. 다른 사람의 신체나 공간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인간은 속해 있는 공간의 템포에 따라 우리 몸의 템포를 조절한다. 높은 밀도의 일상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도시 전체의 분위기와 달리 이곳은 맥도널드마저도 세상에서 가장 느린 시간이 흐른다. 여기에 속한 나의 의식 또한 자연히 밀도를 낮추고 속도를 늦춘다.
도시에서 휘두르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휘두르는 칼과도 같은 악의가 없다는 칼 같은 말들로 나는 힘없이 무너지곤 했다 ⓒ 조하나
얼마 전 잡지사에 다닐 때 친했던 후배를 만나러 서울에 올라가 신사동 스타벅스에 앉아 있을 때가 떠올랐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둔 엄마들 셋의 티타임 대화를 들었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서로의 외모에 대한 칭찬과 평가를 시작했다. “얼굴이 안 좋네” “살이 좀 쪘나 봐?” “좀 피곤해 보여” 등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면서도 상대를 잔뜩 경계하고 판단하며 그로부터 자기만족을 얻는 강남 아줌마들의 아주 평범한 대화였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요즘 좋다는 화장품과 생활용품에 대한 정보 교환, 아이를 가르치는 학교와 선생에 대한 불만을 지나 남편에 대한 자랑과 디스가 뒤섞인 채로 마무리되는 아주 평범한 일상의 대화.
나는 후배를 기다리며 이 세 여성이 이곳을 나서 각자의 집에 도착하면 오늘 아침 거울을 보며 스스로 충분히 만족했을 얼굴에서 늘어난 주름과 처진 턱살, 짙어진 다크서클이 보이기 시작할 거라고, 그리고 스스로에게 그 모든 책임을 돌리며 편치 못한 밤을 보낼 거라는 상상을 한다. 아니, 상상이 아닌 경험의 회상이다. 그들은 내가 그랬듯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도 한때 저 자리에 앉아 있었고, 잠들 수 없어 괴로운 숱한 밤을 보냈다. 도시에서 휘두르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휘두르는 칼과도 같은 악의가 없다는 칼 같은 말들로 나는 힘없이 무너지곤 했다.
수십 년 의학을 공부해도 정작 자신을 조절 못 하는 의사들, 수십 년 법 집행을 했어도 자신의 도덕과 신념을 지키지 못하는 검사들,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은 부자들이 많은 곳에 살면서 나는 늘 넘어지지 않는 법에 집착했다. ‘인간 개조’에 가까운 자기 계발서를 신봉하며 실수도 빈틈도 없는 삶을 지향하다 결국 나는 넘어졌다. 하지만 나는 다시 일어나는 법을 몰랐다. 그때 내가 넘어지지 않는 법에 집착 말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초 체력과 회복탄력성을 길렀더라면 나에게 평안의 시간이 좀 더 일찍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에 ‘만약’은 없으며 나는 이제라도 목적으로 수단을 정당화시키지 않고, 어떻게 먹고살지 고민하기보다 어떤 사람이 될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읍내에서 천천히 일을 마저 보고 같은 길로 돌아오다 보면 사람이 얼마 안 사는 깊은 숲속 시골 마을, 집집이 주인의 성향과 개성을 표현하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소중히 가꾼 정원들이 더욱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계절마다 바뀌는 꽃들로 밖을 가꾸는 소박한 시골집은 몇 년 후 집값이 크게 올라 이익을 볼 리 만무하지만, 서울의 그 어느 삐까번쩍한 건물들보다 자연스럽게 아름답다. 나는 여전히 MBTI를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그저 나에게 친절하고 내 인생에 관대하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데 시간을 쏟아붓던 도시 생활의 찌꺼기를 조금씩 비워낼 뿐이다.
오늘도 나는 튼튼한 두 다리로 소멸하는 풍경의 마지막 관찰자가 된다 ⓒ 조하나
경쟁에 최적화된 인간이 되어 승리하고 쟁취해야 한다는 말들로 넘쳐났던 도시를 빠져나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너는 네 모습 그대로 아름답고 가치 있다’라고 말해주는 숲속의 작은 속삭임과 위로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도시에 살던 때보다 더 적은 돈을 가졌는데도 훨씬 덜 불안해진다. 좋은 질문을 품는 법을 먼저 배우고 나서 좋은 답을 찾아야 한다는 걸 배우며 스스로 좋은 질문을 찾으며 천천히 산다. 오늘도 나는 튼튼한 두 다리로 소멸하는 풍경의 마지막 관찰자가 된다. 도시의 관찰자들은 나 말고도 차고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