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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Sep 17. 2024

나는 숲속에서 연애를 한다

이 불안을 더 이상 피하지 않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다시 눈을 감는 것이다. ⓒ 조하나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다시 눈을 감는 것이다. 그러고는 바닷속에서 살 때 배운 호흡법을 잊지 않기 위해 천천히 나에게 허락된 공기를 조금씩 감사히 들이마셨다가 또 천천히 조금씩 내쉰다. 들숨과 날숨을 부드럽게 이어가다 보면 내 몸은 어느새 들어왔다 나가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고요한 파도가 되고 내 마음은 깊고 넓은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가 된다.      


1946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닌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말한다”라고 선언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에 공표된 건강의 정의에 의학과 기술이 훨씬 발전한 현대 사회에 사는 사람으로서 그 어느 의미에서도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이 서글펐던 때가 있었다. 도시에선 나뿐 아닌 모든 사람이 진단받지 않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아니, 누군가를 진단할 자격을 갖췄다는 정신과 의사조차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어쩌지 못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고통스러운 아침이 반복되었고, 눈을 뜬다는 사실이 저주처럼 느껴져 천근 같은 눈꺼풀을 들지 못하고 만근 같은 이불속을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하고 두려울 때가 있었다.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고 나를 덮칠 수 있고 지금도 그때를 호시탐탐 노릴 테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 나는 다시 일어나는 법을 안다.      




똑바로 숲을 걸으며 지나치는 나뭇잎의 미세한 흔들림과 푸릇한 내음과 따뜻한 햇살과 서늘한 그늘을 가슴에 새긴다. ⓒ 조하나




이따금 예고도 없이 살아있다는 두려움과 출처 없는 불안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올 때면 무조건 바닷속으로 뛰어들던 고래는 이제 숲속 산책을 나선다. 운 좋게도 내가 사는 외딴 시골 마을엔 소박한 둘레길이 나 있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덕에 온 숲이 내 것이다. 똑바로 숲을 걸으며 지나치는 나뭇잎의 미세한 흔들림과 푸릇한 내음과 따뜻한 햇살과 서늘한 그늘을 가슴에 새긴다. 그 와중에도 내 양쪽 어깨에 앉아 조용히 할 기미가 안 보이는 불안과 걱정, 두려움의 감정들이 끊임없이 속삭인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불안을 ‘존재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게 하는 감정’이라고 했다. 인간은 존재하는 한 불안을 영원불멸시킬 수 없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불안과 두려움은 무언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 때문에 생겨났다. 지금 가진 무언가를 잃게 될까, 혹은 지금 가지지 못한 걸 시간이 지나서도 못 가지게 될까, 더 나아가서는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단어 자체로 인해 생기는 감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불안은 때론 내 마음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고, 나를 더 깊은 진실로 이끈다. 차라리 불안은 영원히 배신하지 않는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훨씬 도움이 된다.      




불안은 때론 내 마음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고, 나를 더 깊은 진실로 이끈다. ⓒ 조하나




나는 마음껏 풀어놓은 모든 불안의 감정들을 숲속에 내맡긴다. 숲은 나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비밀을 품고 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숲속에선 자신이 의도하든 아니든 마주하기 싫어 외면해 온 내면의 불안을 직시하게 된다. 도시의 소음과 속도에 눌러두었던 감정이 숲의 침묵과 함께 차츰 떠오른다. 스스로 ‘자(自)’에 그러할 ‘연(然)’,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의 자연(自然) 속 인간의 인위적인 노력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에서 나 자신 역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숲속의 조언이다. 이곳에서 불안은 더 이상 억압하고 해치워버려야 할 감정이 아니라 수용하고 탐구해야 할 감정으로 바뀐다. 나는 불안과 걱정, 두려움, 외로움, 그 모든 감정과 친구가 되어 그들을 내치는 대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느낀다. 가벼운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내 마음도 흔들리지만 끝내 평온함이 찾아온다. 감정은 지나가는 바람이다. 나뭇잎이 바람 그 자체가 되지 않듯 나는 그 감정 자체가 되지 않는다.     




감정은 지나가는 바람이다. 나뭇잎이 바람 그 자체가 되지 않듯 나는 그 감정 자체가 되지 않는다. ⓒ 조하나





마주하는 감정을 숲속 여기저기에 걸어놓으면 마침내 아름다움이 고개를 내민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낄 때 뇌 안에 자동적으로 연동되는 부위를 밝혀낸 영장류 시각 뇌 전문가인 세미르 제키는 피실험자들이 예술 작품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 뇌에서 어떤 활동이 일어나는지를 기록했다. 아름다움과 연동되는 부분은 안와전두피질이라는 부위에 속해 있는데 이 영역이 활성화되면 인간을 기분 좋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급격히 증가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이 사랑에 빠졌을 때도 이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경탄이 터져 나오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나 자연풍경을 마주할 때 인간의 미적 경험은 로맨틱한 사랑에 견줄만한 기쁨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형형색색의 자연 속을 걸으며 아름다움이 바로 내 안에 있다는 확신을 얻는다. 그리고 그러한 충만함은 불안의 자리를 조금 밀어내고 차지한 자리를 조금씩 넓혀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면 아름다움, 그다음으로 용서가 나타난다. 나에게 상처 준 타인에 대한 용서가 아닌 스스로에 대한 용서다. 내 모든 행동에 책임을 지며, 고의적이든 무의식적으로든 나 자신과 다른 개인에게 상처를 준 모든 일에 대해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 나는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높지만, 그것이 곧 자신을 향한 공감으로 자동 전환되는 건 아니다. 나는 타인에게 마음이 열려 있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굳게 닫혀 있었고, 다른 사람은 공감받을 가치가 있지만 나는 아니라고 여겼다. 그렇게 가장 중요한 나를 외면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결국 번아웃과 탈진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숲속에서 나를 조금 더 용서했다. 과거의 실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과 나를 화해시킨다.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것이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결국 그 끝에는 자유가 기다린다는 것을 안다.      


관대한 숲은 나에게 오늘 무엇을 보고 배웠느냐 시험 치지 않는다. ⓒ 조하나



관대한 숲은 나에게 오늘 무엇을 보고 배웠느냐 시험 치지 않는다. 내가 숲속에 두고 온 이산화탄소에 왜 이리 독성이 가득하냐 투덜대지도 않고, 내가 맡겨둔 불안과 두려움을 재지도 않는다. 숲속에서 그저 나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Monica Martin with James Blake - Go Easy, Kid


‘Cos after all, no ones in control  

Go easy kid, it’s only rock and 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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