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우리 동네, 숲속 시골 마을을 산책하면 소소한 눈요기부터 거창한 사유까지 모두 가능하다. 한 점에 모이지 않고 마을 여기저기 흩뿌려진 집들은 제각기 서로 닮은 구석이 하나 없다. 어떤 집은 전통식 한옥이고, 어떤 집은 현대식 가옥이고, 또 어떤 집은 오래된 집을 조금씩 고치다 보니 반반이다. 시골 마을엔 아파트가 없어 하늘이 탁 트이고 주변의 산과 들에 어우러진 집은 계절마다 꽃과 나무가 바뀌며 그 모습도 달라진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외모를 가꾸고,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정원을 가꾼다. 여기저기, 자근자근하게,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개성을 뽐내는 집을 하나씩 구경하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시간이 쏜살처럼 지나가는데, 집과 어우러진 정원에서 드러나는 집주인의 시간과 여유, 꽃과 나무에 쏟는 정성, 그리고 ‘뿌리내림’에 대한 나름의 철학과 삶에 대한 애정을 탐구하는 데 온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 조하나
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 누가 본다고 이리 정성껏 꽃을 가꾸나. 애초에 누구에게 보여주려 가꾸는 꽃밭이 아니지만 이 마을에 지나다 쉬어가는 바람과 새들, 나비와 벌이 구경꾼이 되어준다. 식물을 가꾸는 사람들은 식물도 자신을 해치는 사람을 알아보고,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본다는 걸 안다. 눈도 없고 귀도 없는 식물이지만 보고 느끼고 외부 세계에 반응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숲속에 사는 사람들이 정원을 가꾸는 건 그런 식물과 교감하는 일이고, 몸과 마음의 면역을 키우는 일이며, 흙 묻은 손에 감사하며 삶을 기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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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가꾸는 일은 끊임없이 생명과 연결되어 인간성에 기대는 일이다. 최첨단 기술이 꽃핀 세상에서 우리는 모든 판단은 다 과학에 맡기는 대신 자신을 불신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점점 퇴화하고 바로 눈앞에 살아 숨 쉬는 생명도 누군가가 대신 해석해 줘야 한다고 느낀다. 생명과의 단절이다. 모든 게 편리해진 세상에서 나는 매일 고기를 먹으면서도 이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자연과 야생,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고, 기후 위기로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고, 아마존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돌고래가 떼로 죽고, 하루에 30~70종의 생물이 멸종을 맞이하고 있다는데 우리는 너무 단절되어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 나의 삶이 바뀐 순간은 바닷속에서 생애 처음으로 길이 3~4미터 정도의 거대한 고래상어를 만났을 때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물고기 중 가장 큰 고래상어와 눈을 마주친 순간, 나의 삶은 더 이상 전과 같을 수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 누구든 삶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야생동물과 마주친 적이 있다면 그때부터 자연을, 그리고 동물을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특별하고 예외적인 존재라는 믿음은 오직 인간들끼리 공유하는 것일 뿐 다른 동물들이 보기에 인간처럼 오만하고 어리석은 존재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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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원을 가꾸는 일은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나서야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다. 나를 둘러싼 자연과 환경, 주변을 잘 인식하며 정원을 가꾸면 마음의 정원에도 꽃이 핀다. 우리는 요즘 함께 있지만 진정으로 ‘함께’ 있지 않다. 같은 테이블에서 마주 보고 밥을 먹어도 각자 스마트폰 세상에 들어가 있는 우리는 점점 외롭고 공허해진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바로 ‘지금’, ‘여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지금 내가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에 감사하게 된다. 감사는 발견이 아닌, 내가 찾아 나서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존재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배우려 애쓰던 시간이 있었다. 정원의 모든 꽃이 완벽하게 자라 넘치지 않듯 넘어지면 또다시 잘 일어나서 다시 걷는 법을 배우며 사는 법을 배운다. 경쟁에서 살아남아 일인자가 될 생각보다 ‘~중에 하나’가 되려는 생각보다 나만의 수식어를 만들어 예쁘게 피면 된다는 걸 깨닫는다. 물질 만능주의 사회 시스템은 죽도록 노력하고 좀 더 뛰어서 1등이 되라고 하지만 알고 보니 정원엔 그 어떤 종류의 꽃과 나무든 모두 어울려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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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가꾼 소박한 정원을 하나씩 구경하다 보면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정원의 어느 꽃 하나 튀지 않고 저들끼리 알아서 어울린다. 진정 아름다운 건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 관심을 받기 위해 아름다워지려는 삶은 누군가의 선택이 전제되어야 가치가 정해진다. 나는 선택받는 삶 말고 선택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숲속에선 나의 빛을 가리거나 줄이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얼마든지 빛이 날 수 있다. 아무도 그 빛을 시기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 자체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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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 오래된 집 입구에 우아하게 자리한 고목이 묻는다. 너는 누군가에게 그늘이 되어 준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