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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유리벽 안의 섬들, 가까울수록 외로운 군중

1부. 콘크리트 정글, 보이지 않는 감옥

by 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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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삶이 안겨주는 감각적 혼란 너머에는, 또 다른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것은 물리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타인과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지만, 심리적으로는 마치 보이지 않는 유리벽에 갇힌 섬처럼 외로워지는 기이한 역설이었다. 수백만, 수천만의 익명들이 서로의 곁을 스치며 살아가는 거대 도시. 그 눈부신 외피 아래, 우리는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현대 도시의 해묵은 질병을 남몰래 앓고 있었다.


아침 출근길, 숨 막히는 인파로 가득 찬 지하철 객차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호흡마저 느낄 만큼 가까이 서 있었지만, 각자의 시선은 허공이나 작은 스크린에 고정된 채였다. 창문 너머로 이웃집의 일상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우리는 서로의 삶을 배경처럼 공유했지만, 정작 따뜻한 눈인사 한번 건네는 일은 드물었다. 한 뼘의 사적인 공간도 허락되지 않을 듯한 공공장소에서,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타인의 삶 속으로 끊임없이 침투하거나 침투 당하며 살았다. 모든 것이 너무 가까웠고, 모든 것이 너무 잘 보였다. 그리고 그 과도한 가시성은 필연적으로 서로를 향한 끊임없는 시선과 암묵적인 평가를 낳았다.


그 시선은 때로 날카로운 탐색전과 같았다. 아침 지하철에서 스치는 눈길은 순식간에 상대의 옷차림과 손에 든 가방, 신발의 브랜드를 훑었고, 점심시간 카페에서 무심코 들려오는 옆자리 대화 속에서는 자녀의 학교 성적이나 남편의 직장, 주말 골프 약속 따위가 은근한 과시와 비교의 잣대가 되어 공기를 떠돌았다. SNS의 타임라인은 연출된 행복과 성공의 각축장이었고, ‘좋아요’ 숫자는 보이지 않는 인기의 척도이자 사회적 자본의 크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사회는 끊임없이 개인에게 점수를 매겼고,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점수표 앞에서 늘 주눅 들거나 반대로 일시적인 우월감을 확인하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내면화된 치열한 경쟁의식은 생존 본능처럼 작동하여, ‘뒤처지면 끝’이라는 강박적 불안과, 쉬지 않고 더 나아져야 한다는 자기 착취적 채찍질로 우리를 몰아갔다. 그 결과, 마음은 늘 어딘가 쫓기는 듯 초조했고, 타인의 시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스스로를 끊임없이 검열했다. 사소한 실수에도 밤새 뒤척이며 자책감에 시달렸고, 진정한 자기 가치보다는 외부의 인정과 평가에 목마르게 되었다. 만성적인 불안과 자기 회의는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었고, 삶의 자발적인 기쁨과 순수한 호기심, 느긋한 여유는 그렇게 황폐한 마음의 풍경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져갔다.


이처럼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의 살얼음판 위에서, 진실한 관계가 뿌리내리기란 기적에 가까웠다. 타인은 편안한 위로와 깊은 연대의 대상이기보다, 어느새 나를 앞질러 갈지 모르는 잠재적 경쟁자이거나 나의 가치를 냉정히 매기는 평가자로 여겨지기 십상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마음을 열고 솔직한 감정이나 연약한 속내를 드러내는 것은 곧 스스로를 무방비 상태로 노출하는 것과 같았다. 깊은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혹은 속물적이거나 나약하다는 낙인이 찍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우리로 하여금 저마다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갑옷, 즉 ‘유리벽’을 단단히 두르게 만들었다.


어떤 이에게 그 유리벽은 타인의 무례함과 침범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어선이었을지 모르나,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진정한 소통을 가로막고 스스로를 더욱 깊은 고립으로 몰아넣는 투명한 감옥이었다. 사람들은 그 유리벽 안에서 안도하는 동시에 질식했고, 타인과의 연결을 갈망하면서도 다가서기를 주저했다. 그 매끄럽고 차가운 벽 너머로 의례적인 미소와 예의 바른 대화는 수없이 오갔지만, 가슴 깊은 곳의 온기가 오가는 진정한 교감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다. 관계는 종종 피상적인 안부와 기능적인 필요를 교환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깊은 이해나 공감보다는 사회적 네트워크의 일부로, 혹은 외로움을 잠시 가리는 도구로 소비되기도 했다.


결국 남는 것은 화려한 도시의 불빛 아래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짙은 고독감이었다.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그 누구와도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서늘한 감각. 이것이 바로 ‘가까울수록 외로운 군중’의 실체였으며, 우리 모두는 저마다 유리벽 안의 섬이 되어 소리 없이 서로를 밀어내며 차가운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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