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소음은 단순한 ‘공해(公害)’가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를 향한 다층적인 ‘공격’이었다. 도시라는 거대한 시스템 자체가 생존을 위해 내지르는 기계음과 마찰음이 첫 번째 공격이라면, 두 번째 공격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교묘하고 파괴적으로 이루어졌다. 외부의 불협화음은 내면으로 파고들어 와, 불안과 두려움, 허무와 패배감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소음을 끝없이 증폭시켰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천장 위로 수만 가지 잡생각들이 기차처럼 지나가고, 인간관계의 갈등은 날카로운 비명처럼 뇌리를 할퀴었다. 때로는 심장이 멋대로 내달리는 공황의 사이렌이 울리기도 했다. 그렇게 도시의 소음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도망치게 만드는, ‘영혼의 이명(耳鳴)’과도 같았다.
그러나 수면 아래로 몸을 담그는 순간, 마침내 그 지독한 이명이 멎는다. 물은 세상의 모든 소란을 너그럽게 흡수해 버리는 거대한 막(膜)과 같다. 외부의 공격이 차단되자, 신기하게도 내면을 할퀴던 소음들 역시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갔다. 그렇게 찾아온 침묵은 텅 빈 공백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게와 질감을 가진,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어떤 물질에 가까웠다. 그 충만한 고요함은 나의 귀와 마음을 닫는 대신,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소리를 향해 활짝 열어주었다.
처음에는 오직 나의 숨소리만이 전부인 듯했다. 하지만 온 신경을 집중하자, 그 침묵의 막 너머에서 ‘소리 없는 것들의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요히 자리한 산호초 군락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였다. 귀를 기울이자,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타닥, 타닥!’ 하고 무언가 터지거나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그저 물의 압력이나 온도 때문에 생기는 미세한 잡음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있는 바다의 가장 내밀한 교향곡이었다. 그 소리의 주된 연주자는 ‘딱총새우’라 불리는, 고작 2~3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작은 거장이었다. 이 작은 생명체는 자신의 몸집만 한 거대한 집게발 하나를 권총처럼 사용한다. 집게를 초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닫는 순간, 그 압력으로 인해 물속에 ‘공동 버블’이라는 미세한 진공 방울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방울이 붕괴하며 터지는 찰나, 순간적으로 태양 표면과 맞먹는 온도와 함께 강력한 충격파와 ‘타닥!’하는 파열음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냥을 위한 무기이자, 동족과 소통하는 언어이며, 이 작은 생명체가 온몸으로 외치는 치열한 존재 증명이었다.
여기에 다른 연주자들의 소리가 더해졌다. 울퉁불퉁한 산호를 정원사처럼 갉아먹으며 백사장으로 보낼 새로운 모래를 만들어 내는 앵무고기의 ‘서걱거리는’ 소리, 성게들이 바위를 긁으며 지나가는 소리, 수많은 물고기들이 내는 각양각색의 투덜거림과 신음 소리까지. 내가 ‘침묵’이라 믿었던 세계는 사실 수많은 생명의 소리로 가득 찬,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시끄러운 장소 중 하나였던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것은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오직 ‘인간 세상’의 소음뿐이었음을. 수십 년간 나는 인간의 언어와 기계의 소음에만 길들여진 채, 이 거대하고 장엄한 생명의 오케스트라 앞에서는 완벽한 귀머거리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 ‘타닥’ 하는 소리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침묵은 텅 빈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소리로 가득 차 있는 상태일 뿐이라고. 이제야 비로소, 인간의 언어를 넘어선 세상의 진짜 목소리에 귀를 여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미세한 소리에 집중하던 나는, 이내 내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소리로 다시 돌아왔다. 바로 내 생명의 리듬, 호흡 소리였다. 물 밖 세상에서는 너무나 당연하여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나의 숨결이, 이 깊고 고요한 세계에서는 유일무이한 교향곡이 되어 울려 퍼졌다. 공기탱크의 압축공기가 레귤레이터의 좁은 관을 통과하며 ‘쉭-’ 하고 빨려 들어오는 소리. 그 생명의 공기가 나의 폐부를 가득 채우는 충만함. 그리고 마침내 숨을 내쉴 때, 수십 개의 공기 방울들이 ‘보글, 보글’ 거리며 수면을 향해 상승하는 소리까지.
그 소리는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지금, 여기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선명하고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였다. 들이쉬고, 내쉬고, 또다시 들이쉬는 그 반복적인 리듬 속에서, 나는 나의 존재를 외부의 어떤 증명도 없이, 오롯이 나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역할이라는 껍데기로 규정되던 ‘나’는 사라지고, 오직 호흡하는 생명체로써의 순수한 ‘나’만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호흡이라는 생명의 북소리에만 집중하던 의식이 한 단계 더 깊은 곳으로 침잠하자, 그 북소리마저 배경음악처럼 멀어지며 마침내 완벽에 가까운 내적 고요가 찾아왔다. 모든 소음이 걷힌 텅 빈 무대. 바로 그 무대 위로, 아주 조심스럽게 ‘내면의 목소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도시의 잡념처럼 시끄럽거나 불안에 떨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심해의 수압처럼 묵직하고, 맑은 물처럼 투명했다. 음파가 아닌 영혼의 파동으로 직접 울려오는 듯한 그 목소리는 나를 다그치거나 평가하지 않았다. 대신, 오랫동안 내가 외면해 왔던 질문들을 아주 나지막이, 그러나 단호하게 던져왔다. ‘무엇이 너를 그토록 지치게 했는가?’, ‘너는 진정으로 무엇을 사랑하는가?’, ‘어디에서 상처받았고, 어떻게 치유받고 싶은가?’
그것은 사회적 성공이나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꿈, 이유 없이 가슴 뛰던 순간들, 상처받았지만 차마 돌보지 못했던 나의 여린 부분들을 하나하나 보듬고 어루만지는, 근원적인 자아의 목소리였다. 마치 수십 년 만에 만난 가장 친한 친구처럼, 혹은 가장 지혜로운 스승처럼, 그 목소리는 나 자신과의 진정한 대화를 청해왔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었던, 아니 들으려 하지 않았던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오랫동안 나를 짓눌러왔던 정체 모를 슬픔과 상실감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잃어버린 데서 오는 슬픔이었다.
그렇게 나는 물속에서, 세상의 모든 소리로부터 가장 먼 곳에서, 비로소 나 자신과 가장 가까이 마주 앉았다. 내면의 목소리와의 대화는 때로 고통스러웠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깊은 위로와 정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호흡이 나의 ‘존재’를 증명해 주었다면, 이 내면의 목소리는 나의 ‘존재 이유’와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속삭여 주고 있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진실과 마주하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모든 존재의 시작이자,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장엄한 진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