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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마야의 심장 세노테, 시간과 공간의 문턱

2부. 경계를 넘어, 물의 언어를 배우다

by 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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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의 삶은 보이는 것들의 폭정 아래 있었다. 스크린이 제시하는 가상의 삶과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에 비친 모습, 그 끊임없는 비교와 증명의 요구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파편처럼 흩어졌다. 나는 나 자신의 주인이기보다, 외부의 빛에 의해 규정되고 평가받는 객체로 살아가는 데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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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소음과 빛이 증발하는 듯한 이곳, 정글의 심장에 위치한 세노테의 입구에 서면, 나는 비로소 그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심연을 찾아 나선 순례자가 된다. 이것은 차가운 물속으로의 입수가 아니라, 소란스러운 세계의 표면을 뚫고 마침내 나 자신의 가장 깊은 본향(本鄕)으로 귀환하는 경건한 의식이다.


물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세상의 언어가 바뀐다. 흙과 식물의 비린내가 뒤섞인 정글의 농밀한 공기는, 서늘하고 청정한 광물질의 향을 품은 물의 세계로 전환된다. 피부에 닿는 서늘함은 단순한 온도 변화가 아니라, 세속의 먼지를 씻어내는 정화의 세례와 같다.


이윽고 눈앞에는 텅 빈 어둠이 아닌, 오직 이곳에만 존재하는 ‘성스러운 푸른빛’이 가득 찬다. 마치 시간의 사원(寺院)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듯, 수면을 뚫고 들어온 빛은 어둠 속을 가르며 장엄한 기둥을 세운다. 내가 내쉬는 숨의 공기 방울들은 그 빛기둥 속에서 은하수처럼 피어오르다 사라진다. 지상의 이분법적 질서가 사라진 그곳에서, 빛과 어둠은 적대하기는커녕 서로의 깊이를 더해주며 하나의 완전한 공간을 빚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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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빛의 질서 아래, 나의 수중 라이트 불빛은 수억 년의 시간을 품고 침묵하는 동굴 벽면, 거대한 책의 페이지를 넘긴다. 희미한 홍조를 띤 한 줄기 붉은 흙은, 대륙의 이별을 몰랐던 시절의 아련한 기억이자 모든 갈라진 것들의 근원적 외로움을 품고 있는 아프리카의 흔적이다. 그 위로 돌 속에 얼어붙은 비명처럼 새겨진 상처는 공룡 시대를 끝낸 우주적 폭력이었으나, 역설적으로 그 파괴의 신(神)이 이 깊은 침묵과 생명의 공간을 잉태한 창조의 신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수만 년 전 이곳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 거대 나무늘보의 뼈와 마주한다. 시간의 심연 속에 박제된 그것은 자연이 내게 건네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였다. 이 장구한 시간 앞에서 티끌만도 못한 존재라는 겸허함과, 그럼에도 이 순간 숨 쉬며 이 광경을 목도하는 유일한 존재라는 경이감이 나의 영혼을 동시에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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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지구의 시간 위로, 비로소 인간의 절박한 역사가 겹쳐진다. 물 한 방울이 운명을 가르는 석회암 평원에서, 세노테는 마야 문명의 생존을 가능케 한 생명의 젖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샘의 깊이에서 하늘과 땅, 그리고 지하 세계를 잇는 우주의 축(Axis Mundi)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 샘에서 생명을 길어 올리는 대가로, 지하의 신들에게 마땅히 빚을 갚아야 한다고 믿었다. 황금과 옥, 가장 순수한 피를 바친 것은 맹목적인 공포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필사적인 시도였으며,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그들만의 우주적 회계 장부였다. 수평적 확장에만 몰두하는 현대인과 달리, 그들은 언제나 발밑의 깊이를 의식하며 수직적 세계의 균형 속에서 살았다.


고대의 마야인들이 우주의 균형을 위해 건넜던 그 경계에, 이제 나의 몸이 닿는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며 세상이 물이 스스로에 대한 꿈을 꾸는 듯 아지랑이처럼 흐려지는 곳. 할로클라인(Halocline)을 통과하는 순간, 눈앞의 풍경뿐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윤곽마저 녹아내리는 황홀한 공포에 휩싸인다. 도시의 삶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겹겹이 둘러쌌던 단단한 껍질들—나의 이름, 나의 직업, 나의 사회적 관계들이 이 투명한 막 속에서는 너무나 쉽게 용해된다. 그 껍질이 사라진 알몸의 존재가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서의 가장 완전한 자유와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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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가 사라진 텅 빈 충만함 속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선명한 목소리가 내면에서 울려온다. 지상의 소음과 욕망이 끊임없이 ‘무엇이 되라’고 외쳤다면, 이 깊은 침묵 속에서 떠오른 목소리는 ‘너는 본래 누구였는가’라고 나지막이 묻는다. 그것은 언어를 배우기 이전,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기 이전의 ‘원형의 나’에서 보내오는 신호와 같았다. 정답을 강요하는 지도가 아니라, 나의 심장이 설레는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었다. 오랫동안 외면했던 상처와 마주하게 하고, 잊고 살았던 순수한 기쁨의 순간들을 상기시키며,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의 목록을 조용히 읊어주었다.


나는 깨달았다. 세노테는 지질학적, 역사적 공간을 넘어, 잃어버린 나 자신과 재회하는 심리학적 성소(聖所)라는 것을. 화폐처럼 잘게 쪼개어 소비하는 도시의 직선적인 시간은 이곳에서 힘을 잃는다. 과거-현재-미래는 일렬로 늘어선 길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 안에 겹겹이 쌓여 서로의 무늬를 만들어내는 풍경으로서의 시간임을 배운다. 과거의 상처는 지워야 할 오점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더 깊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드는 고유한 지층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세노테는 내게 가르쳤다.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내려갈 때, 비로소 내 존재를 비추는 단 하나의 소박한 빛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발밑의 세계에서 길어 올린 그 깊이의 감각으로, 나는 마침내 발 딛고 선 이 세계와 그 안의 나 자신을 온전히 긍정할 힘을 얻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 더 거대한 진실이 있음을, 나는 당신의 발 밑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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