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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을 위해 영혼을 파는가?

균열은 반짝이는 것에서 시작된다|넷플릭스 추천작 <사이렌이 노래할 때>

by 조하나



반짝이는 것들 아래에는 언제나 균열이 있다


호화로운 해변 저택, 실크 드레스, 완벽한 미소, 랄프 로렌 카탈로그에서 막 튀어나온 듯 완벽하게 재단된 풍경과 그 속을 유영하는 사람들. 넷플릭스가 2025년 여름, 세상에 내놓은 5부작 시리즈 <사이렌이 노래할 때>(원제:SIRENS)는, 그 첫인상만으로 관객을 강력하게 매혹합니다. 줄리앤 무어, 메건 파히, 밀리 알콕 등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품게 하는 배우들은, 실크 스카프가 칼날보다 위험하고, 일상의 친밀한 인사가 권력의 언어가 되는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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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려한 낙원의 설계자는 몰리 스미스 메츨러입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조용한 희망>에서 따뜻하면서도 집요한 시선으로 계급과 빈부 구조 속 여성의 생존을 예리하게 조명했던 그녀는, 부와 계급, 그리고 여성들 사이의 복잡 미묘한 관계라는,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영역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녀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반짝이는 것들 아래에는 언제나 균열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이야말로 <사이렌이 노래할 때>의 핵심을 관통하는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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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의 진정한 기원은 메츨러의 2011년 희곡 <엘레메노 피(Elemeno Pea)>에 있습니다. 부유층 저택에서 일하는 동생과 그녀를 찾아온 언니의 계급 갈등을 다룬 이 희곡의 DNA는, 한정된 무대에서 응축되었던 심리적 압박감을 광활한 섬이라는 시네마틱한 공간으로 확장시키며 그 비극성을 증폭시킵니다.


이 무대 위에서 세 명의 배우는 현대의 신화를 체현합니다. 줄리앤 무어의 ‘미카엘라(키키)’는 움직이는 <보그> 잡지이자, 부와 취향을 무기로 왕국을 건설한 현대의 ‘사이렌’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완벽한 미소 뒤에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깊은 상처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줄리앤 무어는 특유의 서늘한 연기로 우아함과 신경증이 공존하는 이 복합적인 인물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메건 파히의 ‘데번’은 섬의 위선과 허위를 꿰뚫어 보는 관찰자이자, 이 기만적인 낙원에 돌을 던지는 이방인이자 관객의 시선을 대리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밀리 알콕의 ‘시몬’은 매혹의 노래에 가장 먼저 홀려,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기꺼이 ‘사이렌’의 세계에 편입되려 합니다. 자신의 순수한 야망이 어떻게 괴물성으로 변모하는지를 처절하게 증언합니다.


이 작품은 겉보기엔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과 자매애에 관한 익숙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반짝이는 표면 아래,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이렌의 노래’란 무엇인지 물으며, 그 노래에 홀려 난파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날카롭게 겨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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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스카프와 유리 조각들


이 드라마는 뉴욕주 외딴섬의 호화로운 저택을 배경으로, 두 자매의 복잡한 관계와 그들이 얽힌 계급 및 권력의 역학을 다룹니다. 그녀는 동생 시몬이 억만장자 미카엘라의 화려한 세계에 빠져든 것을 우려하며 섬으로 향하지만, 미카엘라의 매혹적인 권력과 섬의 위선에 휘말립니다. 시몬은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그 세계의 일원이 되려 하지만, 자매 사이의 균열은 깊어집니다. 파티와 자선 행사 속에서 드러나는 비밀과 트라우마는, 이 우아한 낙원을 심리 스릴러의 무대로 바꿉니다.


이야기는 자매의 어린 시절 상처—어머니의 극단적 선택과 아버지의 무관심—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극복하려는 두 사람의 선택을 조명하며, 계급과 욕망의 갈등을 심화시킵니다. 일부 시청자는 결말의 모호함이 미완성으로 느껴진다고 비판하지만, 이는 관객 각자의 해석을 열어둔 연출의 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이렌이 노래할 때>의 탁월함은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청각 언어의 정교함에 있습니다. 촬영팀은 아름답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늘하고 위협적인 섬의 풍광을 감각적인 미장센으로 담아냈습니다. 인물들을 멀리서 따라가는 롱테이크는 우리가 그들의 사생활을 몰래 엿보는 듯한 불편함을 자아냅니다. 눈부신 태양광 아래 인물들을 벌거벗겨 심판대에 세우는 듯한 해변의 조명과, 비밀스러운 음모를 암시하는 실내의 어두운 그림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가 됩니다.


미술팀은 생활감 없이 박물관처럼 비인간적인 ‘조용한 럭셔리’의 공간을 창조했습니다. 편집은 고요한 풍경과 인물의 신경질적인 불안을 교차시키며 내면의 분열을 시각화하고, <겟 아웃> <어스>로 유명한 마이클 아벨스의 음악은 위험의 전조처럼 기능하며 서늘한 거리감을 유지시킵니다. 이 모든 기술적 장인정신이 합쳐져, 이 작품을 단순한 드라마가 아닌 한 편의 감각적인 심리 스릴러로 완성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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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진정한 괴물은 누구인가?


줄리앤 무어의 얼음처럼 차가운 연기와 메건 페히, 밀리 알콕의 태양처럼 뜨거운 연기는 찬사를 보내기에 마땅합니다. 또한, 메츨러의 ‘여성의 야망’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이 돋보이죠.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를 듣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어야만 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유혹이 얼마나 강력하고 치명적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남성의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여성의 매력을 '위험'으로 규정하는 가부장적 시선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이 신화는 역사적으로 남성의 나약함과 실패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편리한 장치로 기능해왔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스타벅스의 로고가 된 사이렌의 이미지는 이러한 '매혹적인 위험'을 상업적으로 소비하는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지만, 그 근원에는 여전히 여성을 타자화하는 시선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고대 신화의 ‘위험한 유혹’을 상징하는 ‘사이렌’을 말할 때 늘 사이렌의 노래에 홀린 ‘선원’들의 관점에서만 바라봤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바로 사이렌 그 자체와 ‘사이렌은 왜 노래를 불렀는가?’라는 새롭고도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익숙했던 신화를 전복시킵니다. 남성 중심적 서사 속에서 위험한 유혹의 화신으로 박제되었던 사이렌의 신화적 존재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현대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외로움, 그리고 복잡한 주체성을 비추는 거울을 세우죠. 작품은 사이렌을 단순한 악녀가 아닌, 남성 중심적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과 오해의 희생자이자 그 안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복합적 존재로 재탄생시킵니다.


작품 속에서 줄리앤 무어가 연기하는 ‘미카엘라’는 바로 이 현대적 사이렌의 화신입니다. 그녀의 부와 취향, 언어는 하나의 권력이자, 선망의 대상이 되어 주변 인물들을 끌어들이죠. 이 지점에서 작품은 ‘괴물성’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작중 인물들은 서로를 ‘괴물’이라 칭하지만, 작품은 그 누구도 일방적인 악인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동생 ‘시몬’을 구하겠다고 섬으로 들어온 ‘데번’의 정의감은 종종 무례함과 폭력성으로 드러나고, 동생 ‘시몬’의 순수해 보이는 야망은 가족을 등지는 잔인함으로 변모합니다. 모두가 흠결투성이이며, 각자의 상처와 결핍을 안고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진정한 괴물은 태생적인 악이 아니라, 계급과 욕망의 파도에 휩쓸린 우리 자신입니다.


결국 이 작품이 보여주는 ‘괴물’은 태생부터 뿔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계급, 결핍, 욕망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린 채 떠밀려 가는 익사체들에 가깝습니다. 이는 선과 악의 이분법을 넘어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며, ‘과연 진정한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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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배를 난파시키는 남자들: 남성 중심주의의 폭로

이 시리즈의 진정한 탁월함은 비난의 화살을 '사이렌'에게서 남성들에게로 돌리는 데 있습니다. 작품 속 남성 인물들은 자신의 실패와 비도덕적 행위의 책임을 끊임없이 여성에게 전가하며 신화의 구조를 그대로 재현하죠.


'피터(케빈 베이컨)'는 이 구조의 정점에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첫 번째 부인 조슬린을 버리고 키키와 결혼했으며, 결국 키키를 버리고 시몬을 선택하죠.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사회적 비난과 '가정을 파괴한 여자'라는 오명은 여성들의 몫이 됩니다. 그의 부와 권력은 그를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고, 여성들은 그의 욕망의 대리물이자 희생양이 됩니다.


'이선(글렌 하워턴)'과 레이먼드(조쉬 세가라), 이 두 인물은 남성적 책임 회피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이선은 시몬과 다투다 술에 취해 절벽에서 떨어지고는 그 책임을 시몬에게 돌리려 하고 유부남인 레이먼드는 데번과의 불륜이 발각되자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며 그녀를 '괴물'이라 비난합니다. 이들의 모습은 신화의 핵심 기능, 즉 남성 주체의 책임 전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처럼 <사이렌이 노래할 때>는 제목을 통해 신화적 사이렌, 위기의 순간을 알리는 경찰과 구급차의 사이렌, 그리고 부와 권력, 과거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은유적 의미를 중첩시킵니다. 이 세 겹의 의미는 신화, 사회 비판, 심리 드라마를 하나의 응집력 있는 개념으로 묶어내는 마스터키 역할을 하며,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 구조를 관통합니다. 결국 이 작품이 들려주는 '사이렌의 노래'는 유혹의 노래가 아니라, 남성 중심적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오해, 그리고 생존을 위한 처절한 외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영혼의 값은 얼마인가?


이 작품의 가장 빛나는 성취는 ‘계급’이라는 무형의 권력을 감각적으로 시각화했다는 점입니다. 메츨러는 과거 요트 클럽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상류층이 공유하는 특유의 말투, 릴리 퓰리처 스타일의 화려한 의상, 특정 장소에서만 구할 수 있는 로켓 목걸이 등을 디테일하게 재현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부의 과시가 아니라, 소속과 배제를 가르는 견고한 문화적 장벽입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이 장벽을 넘기 위해, 혹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연기합니다. 이는 SNS를 통해 이상적인 삶을 전시하고, ‘좋아요’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는 현대 사회의 ‘있어빌리티(있어 보이는 능력)’ 문화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시몬이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키키의 취향을 복제하는 모습은, 더 나은 계급으로의 상승을 꿈꾸며 자신의 정체성을 기꺼이 지워나가는 현대인의 슬픈 초상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은 과연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가면 뒤의 진짜 우리는 어떤 모습인가? 이 작품은 계급이 더 이상 돈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임을 지적하며, 우리 시대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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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게으른 신화에 대하여


<사이렌이 노래할 때>는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는 언제나 아름답기만 한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작품은 남성 중심의 서사에서 흔히 소비되던 ‘캣파이트(Catfight)’를 답습하는 대신, 여성 관계의 복잡성을 계급 문제와 엮어냅니다. 서로를 선망하고 질투하며, 의지하다가도 배신하는 인물들을 통해 ‘자매애’라는 이름 아래 가려졌던 권력, 경쟁, 그리고 생존의 역학을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섬은 이러한 인간 군상의 욕망을 실험하기 위한, 외부와 단절된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인 셈입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명제는 게으르고 위험합니다. 그것은 모든 복잡한 갈등을 손쉬운 편견의 틀에 가두고,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의미는, 그 낡은 통념을 답습하는 대신 오히려 그 통념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동하는지를 영리하게 폭로한다는 데 있습니다. 작품 속 여성들은 본성이 악해서 서로를 할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굶주린 두 사람을 빵 한 조각만 있는 방에 가두고는, 빵을 두고 싸우는 그들을 비난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짜 질문은 ‘그들은 왜 싸우는가’가 아니라, ‘누가 그들을 굶주리게 만들었는가’여야 합니다.


작품 속 여성들은 남성의 인정과 사회적 지위라는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도록 내몰린 존재들입니다. 그들의 질투와 반목은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시스템이 강요한 생존 전략입니다. 그들은 서로가 적이 아니라, 같은 규칙의 희생자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생존 경쟁은 오늘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단단한 암석이 아니라,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는 유체와 같습니다. 타인의 ‘좋아요’와 인정 속에서 잠시 형태를 유지할 뿐, 우리는 끊임없이 더 나은 나, 더 선망받는 나를 연기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립니다. 결국 <사이렌이 노래할 때>의 인물들이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채우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의미’의 공허입니다. 그들이 부르는 사이렌의 노래는 타인을 유혹하는 노래이기 이전에, 스스로의 공허함을 견디기 위해 내지르는 비명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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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반복되는 사이렌의 노래


작품의 마지막,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노래가 끝나고 침묵이 흐를 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과연, '사이렌'이 키키이긴 했던 걸까? 과연, 시몬은 '사이렌'이 되기나 할 수 있을까? 키키와 시몬도 결국, 사이렌의 노래에 홀려 파멸하는 선원들 중 하나가 아닐까? 사이렌은 꼭 여자여야 하는 걸까? 혹시 피터가 사이렌은 아닐까?


시몬의 마지막 선택은 생존일까요, 항복일까요, 혹은 주권적 행위일까요? 시리즈의 논쟁적인 결말, 즉 시몬이 키키를 밀어내고 피터의 새로운 파트너가 되기로 한 선택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배우 밀리 알콕과 제작진이 강조하듯, 이 선택은 시몬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버팔로로 돌아가는 것은 "확실한 트라우마와 궁핍"으로의 회귀를 의미하기에 그녀의 결정은 비정하지만 현실적인 자기 보존 행위로 볼 수 있죠. 그녀에게 피터는 절망적인 과거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황금 티켓'인 셈입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시몬은 가부장제 시스템에 완전히 투항한 것입니다. 그녀는 키키가 그랬던 것처럼, 남성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는 젊은 여성이 됨으로써 스스로 시스템의 일부가 됩니다. 이는 하나의 속박에서 벗어나 또 다른 속박으로 들어가는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죠.


또한, 결말은 비극의 순환 고리를 보여줍니다. 시몬은 이제 클리프 하우스의 새로운 '괴물'이 될 운명에 처합니다. 이는 피터의 첫 번째 부인 조슬린을 대체했던 키키의 역사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죠.


제작진은 의도적으로 이 결말을 모호하게 남겨둠으로써 우리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러한 도덕적 판단의 유보가 바로 이 작품의 힘이자, 좌절감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그 노래의 메아리


<사이렌이 노래할 때>는 신화, 계급, 심리라는 세 개의 실을 정교하게 엮어 현대 여성의 상태에 대한 복잡하고 불안한 초상화를 그려냅니다. 이 시리즈는 궁극적으로, 자신들을 끊임없이 침묵시키거나 규정하려는 세상 속에서 여성들이 생존을 위해 불러야만 하는 각기 다른 '노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유혹과 파멸의 노래라는 고대의 선율은, 이 작품을 통해 고통과 저항, 그리고 마침내 이해에 이르는 새로운 화음으로 변주되죠.


이 작품의 메시지는 시리즈의 마지막 장면, 섬을 떠나는 페리 위에서 나누는 데번과 키키의 짧은 대화로 수렴됩니다. 데번은 한때 자신의 동생 시몬을 홀린 '사이비 교주'이자 '살인마'로 의심했던 키키에게 이렇게 말하죠. "나는 당신이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자 키키가 화답합니다. "시몬 역시 괴물이 아니"라고.

이 짧은 대화는 세상과 신화가 그들에게 씌웠던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분법적 굴레를 초월하는 심오한 인식의 순간입니다. 서로 적대적 위치에 놓여 있던 두 여성은, 비로소 서로의 선택 뒤에 숨겨진 고통과 절박함을 이해하고 그들의 공유된 인간성을 확인합니다. 키키는 시몬의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를 보고, 데번은 키키의 모습에서 시몬이 마주해야 했던 시스템의 무게를 어렴풋이 짐작합니다. 그들은 모두 남성 중심적 욕망과 계급 사회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스스로 배를 난파시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래를 불렀던 존재들입니다.


이 마지막의 조용하고 급진적인 공감의 순간이야말로 '사이렌의 새로운 노래'이자 '그 노래의 메아리'입니다. 그것은 유혹이나 파멸의 노래가 아닙니다. 압도적인 시스템과 심리적 폭력 앞에서,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고 타인의 복잡성을 온전히 인정하려는 노력의 노래입니다. <사이렌이 노래할 때>가 남기는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메아리는 바로 이 고요하지만 단단한 연대의 가능성이며, 이것이 이 작품이 도달한 가장 깊고 빛나는 인문학적 성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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