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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보리 Aug 27. 2022

제주도 뚜벅이 여행  - 계획


숙소를 협재에 구했다. 바닷가에서 도보 10분 거리. 이번 여행은 한 지역에 머물면서 현지인처럼 느긋하게 보낼 예정이다.


아침에는 늦잠 자고 일어나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며 동네를 구경하고, 낮에는 수영과 스노클링을 즐기다가 책을 읽고 낮잠도 자고, 저녁에는 선셋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는 것. 말 그대로 관광이 아닌 쉼에 포커스를 두는 것이 이번 휴가의 목적이다.


제일 먼저 제주도 한 달 살이를 알아보았으나, 나 홀로 한 달 살이를 하기에는 남편에게도 미안하기도 했지만 숙소 가격도 무시할 수 없었다. 

월 150만원에서 350만원 선. 그마저도 저가인 150만원의 숙소도 원룸의 수준이다. 혼자 원룸에서 한 달을 지내자니 집 놔두고 너무 고생스러울 듯했다.

결국 일주일로 정했고, 남편도 휴가철에 함께 하기로 했다. 단, 최대한 현지인스럽게.



여태 제주도를 꽤 왔지만 뚜벅이 여행은 연애 때 둘 다 20대 초중반이었던 그때 딱 한번 이후로 처음이다. 남편과 나는 연애 8년 반, 결혼 1년 반이 지났다. 그때는 그저 당연했었지만 30대 초중반이 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둘 다 걷는 걸 무지 싫어하기 때문에.


단지 돈 때문은 아니었다.

자전거나 스쿠터 여행을 한 사람은 알겠지만 차와는 달리 시야가 가까워지면서 볼 수 있는 나름의 풍경이 있다. 마찬가지로 뚜벅이 여행은 몸은 좀 불편해도 걸으면서 보는 것, 즐기는 것이 분명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20대 때 제주도에서 자전거 일주 여행, 스쿠터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었다. 그때를 추억해보자면 당시에는 자전거로 일주 자체가 목표였기 때문에 그날 목적지에 도달하고자 끊임없이 달렸던 기억이 든다. 쉼과는 당연히 거리가 먼 여행이었다. 나이가 어렸고 청춘이었기에 가능했고 (물론 지금도 청춘...이라고 믿고 싶지만) 제주도를 일주하는 뿌듯함은 있었지만 사실 체력적으로 힘들었기에 그다지 즐기지는 못했다.


그보다 조금 더 편했던 스쿠터 여행, 일주를 하면서 관광지다니다 보니 역시나 숙소를 서쪽, 남부, 동쪽 이런 식으로 매번 옮겨야 했었다. 


숙소를 옮기다 보면 생각보다 오전에 시간을 많이 차지한다. 짐 정리를 하고, 옮겨서 짐을 푸느라 오전에 시간을 만끽하는데 짧다고 느껴졌다. 물론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여행'스쿠터 여행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지만. 그래도 여행자라는 느낌이 강하다.

 


제주도는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추억할 거리도 달라진다. 결혼하기 전 엄마와 단 둘이 한 제주도 여행과 결혼하고 6개월 뒤 시부모님 환갑으로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갔었다. 그때도 주로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코스, 매번 가도 좋았던 비자림, 우도, 성산일출봉 그리고 주상절리와 쇠소깍 등 관광지 위주로 다녔다. 


당시에는 제주를 즐기기보다는 어른들을 편히 잘 모셔야 한다는 느낌으로 다녔었고 제주에 함께 온 가족들이 좋아하면 나도 덩달아 기뻤던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 관광지라, 나에게는 즐거움이 덜 했던 건 사실이었다. 이제는 제주도에 관광지는 더 이상 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남편과도 제주도에서 추억이 많다. 결혼 전에 제주에서 봄, 여름, 가을의 만끽한 것도 모자라, 코로나 때문에 신혼여행 또한 제주도로 다녀왔으니. 그래서 더 특별한 곳이 되었다. 누구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신혼여행지'가 나에게는 마음 먹으면 언제든 쉽게 갈 수 있고 신혼여행을 추억할 수 있는 곳이니까.

 

 신혼여행을 제주로 가는 것에 주변에서 대신해서 아쉬워해줬으나 사실 너무나 좋았다. 비행시간은 짧은데 해외 못지않게 고급스런 휴양지라고 느껴질 정도였으니. 신혼여행이다 보니 호텔과 풀빌라에서 휴양을 위주로 했었기 때문에 호텔에서 누리는 서비스와 뷔페, 그리고 동남아 풍의 풀빌라에서 즐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제주 '휴양지'로는 최고다. 신혼여행으로 온 제주는 깨끗한데다 맛있고 분위기가 좋은 레스토랑이 많다. 돈을 지갑을 열수록 정말이지 완벽했다.


남편과 겨울을 제외한 매 계절마다 찾아왔었던 제주에서는 그래도 즐기려고 많이 노력했다. 봄에는 유채꽃과 벚꽃 핀 제주를 감상하고 여름에는 카약과 배낚시를, 가을에는 핑크뮬리로 물든 한라산 인근에 갈대숲과 감귤도 수확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매번 유명하다는 카페와 맛집은 꼭 들렀던 거 같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자리도 별로 없어서 기다림의 연속이었던 그런 곳.


물론 코로나로 인해 해외를 못 가다 보니 제주를 찾은 것도 있지만 제주에 매력에 푹 빠져서, 제주의 바다와 풍경을 즐기며 나처럼 한량을 즐기러 제주도에서 지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매번 차를 타다보니 자연스럽게 목적지를 설정하고 멀리 떠나려고 했었다.



우리는 또다시 올여름 휴가를 제주도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것도 서쪽에서, 무언가를 기대한 것도 없다.

무턱대고 한 숙소에서 일주일을 예약했다.

지루하지 않을까란 조바심과 마지막까지도 그냥 어차피 중간에 택시라도 탈 텐데 렌트를 할까? 하는 고민이 들었지만, 차로 다니면 유명한 곳만 찾아다닐게 뻔하기에 도보로 갈 수 있는 시내의 거리들을 돌아다녀보자며 남편을 설득, 끝내 결심을 굳혔다.



그저 제주의 석양만 내내 바라보고 오고 싶단 생각이다.

오로지 쉬고 먹고 그러다가 또 쉬고 그러고 오자고.

일상도 여행도 아닌 그냥 제주에서 머무는 한량처럼 말이다.


제주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은 협재와 금능 주변에서 관광객과 현지인 그 중간 사이에서 조금은 한적한 여행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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