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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ohyun Choi Dec 31. 2020

2020년, 얻은 것이 더 많았던 한 해

대혼란시기를 지나 익숙함을 경계해야 하는 때를 맞이하며

어떤 프레임으로 2020년을 회고할까 고민이 많았다.

일상과 업무, 개인, 가족 등 일반적인 카테고리로 나눠볼까 좋았던 것과 나빴던 것, 감사한 일, 새로 시작한 일, 어려웠던 일, 놓쳤던 일, 안타까웠던 일 혹은 새롭게 얻게 된 일로 구분해 볼까. 시간의 순서대로 적어볼까...

모두가 불가항력의 멘붕에 빠진 혼란의 시기를 겪으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안간힘을 쓰며 노력했던 한 해였고, 危機의 단어 안에 위험과 기회가 함께 있으니 그 관점으로 한 해를 돌아볼까. 그러나, 여러 기록들을 되짚어 보고 그룹핑을 하려다 보니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역시 멘붕의 시간들이었던 게다. 그래서 정리를 위한 정리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자기 고백의 회고를 시도해본다.

변해야 할 것, 버려야 할 것, 지켜야 할 것, 강화해야 할 것에 대한 고민이 계속된 매일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지켜야 하는 원칙과 기준, 나의 세계관과 본질은 무엇인지 몇 번을, 아니 몇십 번을 되뇌었던 시간들이었다.


대혼란의 시기에 나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일도 쉽지 않았다. 상황의 변화로 진행되던 클라이언트의 사업들이 홀딩되고 축소되고 재검토를 거치면서 우리의 일에도 영향이 컸다. 직접 운영하는 공간과 자체상품 판매, 교육의 진행도 변화에 적응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위축된 소비심리와 경제위기 또한 영향을 미쳤다. 늘 하던 대로 일할 수 없었고 해 보지 않은 질문과 경험해보지 않은 상황의 시뮬레이션이 필요했다. 작고 큰 분쟁도 있었고, 모두의 마음이 각박해진 까닭인지 평소 같았으면 소소한 일로 넘어갈 수 있었던 상황들과 문제들이 서로 생채기를 내고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경우들도 빈번했다. 만만하고 별 것이 아니었던 일상에 그렇지 못하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자유를 잃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하지 않아도 될 고민들로, 자책과 책임전가를 번갈아가며 에너지를 소진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존재의 이유와 어떤 일을 왜, 누구와 어떻게 할 것인가 밀도 있는 고민이 시작되었고 작고 큰 대안들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것과 나빴던 것 중 무엇이 더 많았는지 정해야 한다면, 좋은 것이 더 많았던 해로 기록하고 싶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 애써 만나지 않아도 될 관계들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밖이 소란할수록 나를 찾고 나에 대해 질문하고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나와 나와의 관계에서부터 나와 타자와의 관계, 우리라는 집단과 그들 혹은 너희와의 그룹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고 유지해야 하고 끊어야 하는지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모두가 힘들었던 만큼 아끼는 이들을 더 소중히 하고 응원하고 위로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걱정하고, 괜찮다 말해주며 따뜻하게 토닥여주는 온기가 느껴졌다. 거짓 인사나 공수표보다 진심이 담긴 진짜 이야기를 건네는 순간이 더 많았다.


우리 존재의 이유와 어떤 일을 왜, 누구와 어떻게 할 것인가 밀도 있는 고민이 시작되었고 작고 큰 대안들을 만들어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 애써 만나지 않아도 될 관계들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었던 일하는 엄마의 미안함은 강제 상황으로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알 수 없는 미묘하고 애매한 감정으로 확대되는데, 이는 일과 가정의 무게중심이 몇 분 간격으로 바뀌면서 애써 지켜왔던 몸과 마음의 균형감각을 잃고 뒤뚱거리는 자신이 참으로 힘들어서였을 거다. 이전보다 조금 더 오래 함께 있게 되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알지 못했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은 즐거움이 되기도 두려움이 되기도 했고 해 내야만 하는 여러 현실적인 일들로 어딘가로 탈출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이 시시때때로 들었다. 재수를 하던 큰 아이와 고등학교 1학년을 보낸 둘째,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막내를 보면서 고등교육과 초등교육의 이슈들이 피부로 느껴졌고, 가장 신중하면서도 속도감 있고 밀도 있게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교육현장의 웃픈 현실인 우왕좌왕 민낯을 마주하고, 사교육의 대부활이 터뜨린 폭죽의 잔재들을 피해 다니며 이리 중요한 문제들을 왜 이제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꾸짖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고민의 지점들이 어디인지 아주 조금 더 알게 되면서 양육도 절대적인 시간의 스킨십, 물리적 비 물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계속 고민해 오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여러 기회 앞에서 두려움보다 도전해 볼 수 있도록 엄마가 뒤에 있으니 다치지 않을 거라는 안도와 안심을 주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어 강제적인 무엇은 거의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었다. 그런데 환경의 빠른 변화도 모자라 당장 내일 격리될지도 모르는 뿌연 상황을 만나니 그나마 붙들고 있던 작은 기준이 흔들리고 뭐가 맞고 틀린 지 무엇은 해도 되고 무엇은 안된다는 이야기를 과연 자신 있게 할 수 있을지 정답 없는 고민에서 맴맴 돌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 되었던 본딩 시간의 증가로 애착관계의 강도는 조금 더 단단해진 것이 분명하니 감사했던 한 해로 기록한다.


인간이 망가뜨린 생태계, 그로 인해 벌어진 일들과 곧 벌어질 무서운 일들, 조금 덜 번잡스러우니 활짝 웃음을 지었던 하늘과 산과 바다를 보면서 한숨을 반복했다. 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대안을 찾는 모임의 등기이사로 첫 시작부터 10년 이상 활동해 오면서도 기후변화와 지구환경의 위기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실천으로 옮겼었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무튼 발등에 불이니 일회용품, 분리수거, 먹거리, 생산과 소비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이전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챙겼다.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집에 묶여있는 상황에 ‘빌려 쓰는 지구, 다음 세대에 어떤 지구를 넘겨줄 것인가’라는 질문이 또렷하고 뾰족하게 각인된 까닭도 실천의 동기가 되었다. 사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자연에게 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경각심을 가지고 행동하고 퍼뜨리고 함께 움직이는 힘이 조금씩 커지고 있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나 자신에게, 가족들에게, 동료들에게, 사회에게, 거창하게는 지구에게 갖게 되는 미안함, 불안과 걱정, 두려움은 연말이 될수록 더 강해졌고 자책의 강도도 더 세졌는데 온전한 정신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근심 가득 걱정만 한다고 상황이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이 변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명제는 “걱정만 하고 있는 내가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나의 문제와 우리 모두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이 있다면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걱정하고 고민할 시간에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실천하자 다짐하게 되었다. 그 실천이 늘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 하더라도 과정에서의 배움이 있으면 그것으로도 괜찮다. 조금은 더 가볍게, 조금은 더 유연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나의 중심에 새겨야 할 must, to do, not to do의 기준이 무엇인지 정리하는 중이다.


나를 나로서 인정하는 것 


누군가 물었다. 나의 근심, 부정적인 감정의 중심에는 어떤 단어가 자리 잡고 있냐고. 늘 긍정적이라며 살아왔던 시간들은 사실은 부정의 감정들을 꽁꽁 숨겨놓고 아닌 척했던 고도의 자기 최면이었다는 것을 오래전 마음의 감기에 걸렸을 때 잠시 깨달았다가 금세 잊고 있었는데 올 가을에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 지금의 나를 어렵고 힘들게 하는, 불면이 지속되게 하는 그것은 무엇일까 하니 ‘불안’이었는데, 막연한 불안감이 아니라 ‘강박에 의한 불안’이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잘해 내야 하는 일이, 책임져야 할 일이 더 많았고 내가 누군가에게 질문하기보다 주변에서 나에게 질문을 던지며 답을 구하라는 요구가 훨씬 더 많았다. 나로 인해 누군가 불편해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미련하고 미련한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었고 그래서 어떤 어려운 일이 벌어져도 모두 내 탓이라 여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기억이 시작되는 네다섯 살 시기부터 지금까지 ‘아무러면 어때. 괜찮으니 네 마음대로 해’, ‘괜찮아 다 괜찮아’라는 말을 들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맏딸에게 매일 하셨던 말씀이 ‘안되면 되게 하라. 될 때까지 하는 거다. 못하는 건 없다. 노력을 덜 했을 뿐이다.’ 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완명상을 돕던 한 지인이 ‘도대체 의식을 얼마나 강하게 붙들고 있길래 무의식의 순간으로 전환이 이리 어려운 건가요?’라며 허탈한 웃음을 짓던 초여름 즈음이 생각난다. 내 안의 나를 마주해야 한다느니,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키고 내 문제를 객관화시키면 해결이 조금 더 쉽다느니 여기저기서 떠들기도 했고 심지어 말만이 아니라 실제 그렇게 실천해오던 나였지만, 자기 최면에 걸려 저 안에 숨어있던 진짜 나의 여러 모습들을 몰라봤었는데, 예상치 못한 곳들에서 쿡쿡 찌르는 질문을 받고 한참을 여러 차례 되새김질하다 보니 알아차림이라는 게 이런 거겠구나 싶은 깨달음을 얻는다. 조금 느리고 답답하고 불투명하게 흐르는 이 시간들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일이다.


여러 얻은 것들의 나열

- 진짜 관계: 개인적인 관계이든 일의 관계이든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조금 더 뚜렷해졌다.
- 마음의 양식: 평소보다 다독했고, 불면으로 시작된 옛 영화 찾아보기에 감성 가뭄은 피할 수 있었다. 물론, 음악과 영화로 시간여행을 충만하게 했으니 그 또한 수확이라면 양질의 수확이겠다.
- 글의 누적: 칼럼 연재를 시작했고, 엉덩이 들썩거릴 일이 줄었으니 진득하게 무엇을 기록하는 습관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
- 아날로그와 디지털,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연결: 뭐가 더 중요한지 따위는 필요 없다. 무조건 연결해서 한 덩어리로 생각하되 상황에 따라 어디에 중심을 두고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 빠르게 선택하고 적정솔루션을 찾는 게 답이다. 대면 매너와 랜선 매너도 마찬가지로 seamless experience가 일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
- 사회적 감수성: 공공의 선과 보편타당한 가치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필요성이 강하게 느껴졌고 생존을 위해서라도 나 아닌 다른 존재(사람이든 동물이든 환경이든 기계든)에 대한 존중과 배려, 관용을 실천해야 지속 가능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잡기: 머리가 소란할 때 꼼지락거리며 무언가 만들었고 그것이 먹을 것이든 입을 것이든 무튼 쓰임새 있는 아무거나를 만드는 내 손이 고맙고 기특했다.
-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 위로가 필요할 때, 몰입이 필요할 때, 상상과 생각의 확장이 필요할 때 나에게 절대적인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는데, 다름 아닌 감각을 자극하는 것들 중에서도 특히 소리와 향이었다. 다음으로는 차.  
- 원칙과 기준은 유연함이 중요해질수록 더 챙겨야 한다는 뻔한 진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 변화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러려면 얼마나 유연해야 하는지 매 순간 경험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가치 기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했다.
- 매번 같을 수 없다는 큰 깨달음: 늘 하던 대로 해도 되는 것이 있고, 하던 대로 하면 절대 안 되는 것이 있으니 맥락을 보고 구조적으로 사고하고 다면적으로 살펴보되 돌다리만 두드리고 있으면 더 큰 위기가 닥칠 테니 빠르게 시도하고 피봇팅 할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각성과 다짐을 해 본다.  
-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고마움: 늘 한결같은 사람, 상대적으로 덜 변하는 공간, 예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들에 대한 그리움, 동경,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다.  
- 시간: 불면증으로 절대적인 수면시간이 부족했으니 당연히 눈 뜨고 있는 시간이 늘어난 거지.  
- 흰머리: 나이를 먹으니 작은 머리를 달달 볶으며 잔 생각 들을 담고 있으니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
- 목디스크와 팔 저림, 오른쪽 어깨의 회전근막염: 활동량이 줄었으니 당연하고, 양팔의 균형감 없이 오른팔을 혹사시켰으니 이 또한 충분히 이해 가능. 물리치료 시작  
- 존버력: 매해 레벨업 해야 했고 언제나 +와 -를 오가며 다이나믹한 곡선을 그렸지만 업그레이드의 강도를 보자면 단연코 올해가 최고


잃은 것

모든 상황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작은 무엇에도 양가감정이 생긴다고, 얻은 것에 죄다 적었더니 잃은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얼마 전 페이스북 포스팅에 남겼던 글이 생각난다. 총천연색의 마블링 위에 ‘대혼란 시기’라 적었었다.

—-

#대혼란시기 #단순하지않은 #일ᅡᆼ의어지러움 #마블링 #평정심찾기 
한 해 마무리도 해야 하고 내년 계획도 세워야 한다. 늘 하던 일들도 똑같이 할 수 없는 한 해였고, 모두의 마음이 조금씩 위축되고 경직되어 스스로를 보살피기도 급급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의미 있는 프로젝트들의 시작으로 벅차기도 바쁜데 예년같은 감이나 확신이 모두 틀릴 수 있으므로 처음부터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하는 때이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호기로움을 갖기 어려운 그런 때이다. 불안과 근심은 아이들이 있는 상황에서 훨씬 가중된다. 뭐가 되었든 목표지점이나 데드라인이 있어야 조금 더 버티기 수월할텐데 그 지점이 보이지 않고, 진척되는 무언가 느껴져야 어려운 순간도 견뎌낼 수 있을텐데 제자리에서 맴맴 도는 느낌이다. 학기 말을 몇 일 앞두고 zoom 수업을 처음 시도하겠다 하고 평가시험도 이해가 어려운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어린이의 상황과, 다시 일어난 ‘사교육의 亂’으로 가치관과 현실 사이에서 어떤 대안을 선택해야할지 확신이 어려운 고등교육을 함께 마주하니 머리가 핑 돈다. 다음 주에 벌어질 일들을 하나씩 살펴보다가 ‘욱’, ‘띵’, ‘핑’, ‘헐’... 의 감정들을 지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여야 하니, 평온한 마음 불러오기에 노력을 다해본다. 사사로운 기분 타령이 이렇게 사치스러울수가 없다. 마치 일정한 패턴으로 정리되기를 거부하는 마블링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정돈되기를 기대하지 말고 그 때 그 때의 씬을 즐겨야 하는걸까. 멀미나는 이 상황들이 익숙해질 때가 언제쯤일까.


12월 30일 오후, 종무식에서 공유될 모두의 숙제 ‘올해를 대표하는 이미지 한장과 내년을 기약하는 이미지 한장’을 고르다가 2020년의 이미지는 위의 포스팅에 걸었던 마블링 이미지를, 2021년의 이미지는 모래밭에 여러 갈래의 길을 내고 군데 군데 작고 큰 돌을 가지런히 올려놓은 이미지를 선택했다. 물 위의 기름이든 모래밭이든 거친 바다든 길은 가 봐야 아는 것일테고, 길이 없다면 발만 동동 구를 일이 아니라 거기에 집을 짓던 새 길을 만들던 해야 할테니 2021년은 황량한 벌판에서 뭐든 할 수 있다는 힘차고 새로운 각오의 원년으로 삼아야겠다.




Time지 12월 14일자 표지는 2020 숫자 위에 빨갛고 커다란 X가 그려졌고 그 아래 ‘The Worst Year Ever’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이미지였다.

SNS에서 회자되던 이미지로만 보다가 직접 인쇄물로 받으니 생각이 많아졌다. 책상 위에 얹어두고 여러차례 다시보기를 반복한다. 우리 각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건네려고 만든 이미지일까. 직관적이지만 뻔한 의미전달은 지양하는 지면인만큼 X가 그냥 X로만 보이지 않는다. 되돌릴 수 없는것, 없던 것이 될 수 없는 것, ‘~했더라면’의 가정이 불가능한 것이 시간인데 그렇다면 나는 2020년에 어떤 점수를 줄 수 있을까. 부정할 수 없는 것에 강한 부정의 마크를 넣었다고 생각하니 메시지의 강도가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전세계가 동시에 힘들었다고 하지만 각자가 할 수 있는 평가는 다를 수 있다. 어떤 평가든 이유가 있겠고, 100점이 아닌 이상 오답노트는 필요하니 ‘오답노트 멋지게 만들기’의 마음으로 한 해를 돌아봐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매일이 힘들다 느껴졌는데 다시 되돌아보니 잘 버텨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내가 기특하고 보이는 보이지 않는 주변의 모든 이들이 고맙기만 하다. 모든 어려움은 처음 만났을 때는 정신이 없다가 깨닫고 나면 더 힘들어진다고 하는데 얼마나 다이나믹한 하루하루가 될지 2021년이 무척 기대된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다짐보다 일희일비의 원인을 생각해보고 할만 하면 하고 참을만 하면 참는걸로.


퍼셉션의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공유하는 문서의 표지에 ‘2020, 2021&’라 적으며 2020의 옆에는 ‘혼란, 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격려’ / 2021년의 옆에는 ‘공유, 비전, 각오, 기대’라는 단어를 덧붙였다. 우리 모두 새 날을 맞이할 때 몸과 마음 모두 조금은 더 가볍고 경쾌한 느낌으로 나와 나의 일, 또 내 옆의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길고 험난했던 2020년을 마무리하는 날, 2021년의 내일을 기다리며.




+

덧붙여


요즘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 대해 취조에 가까운 질문을 던졌던 록담님의 ‘人스타그램’ 릴레이를 다시 돌아보며

내년의 나라면 어떻게 대답할까 상상해본다.

https://brunch.co.kr/@rory/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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