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이 아름다운
처음 감귤나무를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진부하지만 제주도에서 감귤밭을 본 이후로부터였다. 5월 중순 즈음의 제주는 청귤과 막 익기 시작하는 노란 귤들이 감귤밭에 뒤섞여 있었고, 채도가 낮고 녹색 잎들이 반짝이는 사이에 반질한 귤들은 소담스럽고 매력적이었다.
오렌지, 라임, 유자, 레몬, 자몽 등 시트러스류의 다 같은 귤 속과의 나무이다. 귤나무는 히말라야 산맥 쪽이 원산지라는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고,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의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귤은 처음 우리에게 그 아름다운 꽃으로 관상용으로 들어왔다가 품종이 점점 개량되어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귤은 그중 남은 10여 종으로 모두 개량된 재래종이다. -먹기 쉽도록 씨앗이 없고 달아졌다.
이 아름다운 꽃과 열매로 유럽에도 귤 속의 오렌지 나무들이 전해지게 되는데 날씨가 상대적으로 더 추운 유럽지역에서는 오렌지 나무들을 키우기 위해 유리온실을 지었다고 한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유리온실이란 뜻의 '오랑주리(Orangerie)'의 어원이다.
작은 감귤나무도 꽃과 열매가 달린다. 감귤꽃은 귤과 다르게 하얗게 생겨 그윽한 향을 낸다. 귤나무는 꽃이 정말 많이 달리고 꽃가루가 바람에 날려 따로 벌이나 나비가 오지 않아도 열매가 맺히는 풍매 화이다. (풍매화 : 화분이 바람에 운반되어 수분 및 수정이 이루어지는 꽃)
하얀 꽃이 짙은 녹색 잎들 사이에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귤나무는 내한성이 약해(0'c) 제주도가 아니고서야 우리나라에서 노지 월동은 어렵다. 영하로 내려가면 나무는 죽는다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중부지방에서 키우고자 하면, 겨울에는 0'c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온실이나 실내에 들여 키워야 한다.
거의 모든 꽃에 꼬마 귤이 달리게 된다. 영양분을 위해 몇 가지 열매만 두고 다 따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냥 두어도 자연스레 떨어질 열매는 떨어지고 남을 열매는 남게 된다.
열매가 달리고 시간이 지나면 귤의 사이즈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모든 식물이 그렇듯 따로 손이 가는 건 없다. 그저 햇볕과 바람에 맡기고 적절한 수분만 공급해주면 자연은 알아서 섭리대로 자기 다운 색깔을 낸다. 사람은 자연을 물이 부족하거나 아프지 않은지 살피되, 식물이 크는 데에 꼭 필요한 양분들은 자연이 자연스레 공급한다. 사람이 자연 속에 잡아야 할 자리, 이곳이다.
귤의 사이즈가 점점 커진다. 늦여름-초가을 즈음인데, 이 시기에 열매를 수확하면 청귤이 된다. 청귤 상태에서는 셔서, 청귤 잼, 청귤청 등으로 활용해 저장해 두고 먹는다. 싱그러운 녹색이 아름다워 절정을 이루는 시기다. 이맘때면 열매가 커서 가지들이 휘게 되어 안쓰런 마음에 지지대를 설치해준다.
허균의 '도문대작'에 감귤에 관한 글이 실려있다.
금귤, 제주에서 나는데 맛이 시다.
감귤, 제주에서 나는데 금귤보다는 조금 크고 달다.
청귤, 제주에서 나는데 껍질이 푸르고 달다.
유감, 제주에서 나는데 감자보다는 작지만 매우 달다.
감자, 제주에서 난다.
유자, 제주와 전라도 경상도 남쪽 해변에서 난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노란 귤 색깔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시간을 초록의 싱그러운 여름을 뒤로하고 정원에 따뜻한 색감을 즐기는 동안 귤은 달콤하게 익어간다.
스트레스를 잘 받는 귤나무는 사실 봄, 여름, 가을 동안 야외에 두고 키우면 어려울 건 없다. 모든 식물이 그렇듯 좋아하는 햇볕, 바람이 있으면 식물을 스트레스 없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다만 겨울이 귤에게는 어려운 시간인데, 겨울 동안 실내에 지내면서 귤은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충분하지 않은 물과, 햇볕, 부족한 통풍으로 잎을 떨구기도 하고, 깍지벌레가 생기기도 한다. 약을 쳐주고, 통풍에 신경 쓰며 겨울을 버틴다.
나무에 달린 귤이 탐스러워 두고두고 보다가 초겨울이 되어서야 수확해 하나씩 먹는다. 파는 귤보다 작지만, 어렸을 때 먹던 달고 새콤한 귤 맛이 난다.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잔잔하고 그윽한 기쁨이다. 그 느낌이 귤꽃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