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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에 걸린 당신에게

허먼 멜빌(2011). 필경사 바틀비: 월 스트리트이야기.

by 길문

바틀비는 누구일까? 허먼 멜빌이 쓴 소설의 주인공이다. 주인공? 화자가 주인공 아니었나? 직업은 필경사(scrivener)다. 필경사? 인쇄술이 나오기 전에 있던 직업이라니. 문자가 발명된 후 생겨난 직업이니 그 역사가 엄청나다. 순간 든 생각이 그럼 그 후 타이피스트가 직을 이었을까?


1873년 상업용 타자기가 등장하면서 필경사란 직업은 사라졌어야 하는데, 아닌가 보다. 그 후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하면서 타이피스트는 없어졌는데 필경사는? 정부부처에서 상장 등을 쓰는 사람들과 캘리그래퍼, 서예가들은 아직 명맥을 잇고 있으니.


타자기가 도입되고 나서도 타자 치는 속도가 느리고 비싼 가격으로 인해, 쉽게 필경사란 직업을 대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필경사의 인건비가 쌌고 속도가 매우 빨랐기 때문인데, 여기서 핵심은 인건비가 싸고 빠른 속도로 글을 썼다가 된다.


이 내용이 왜 중요할까? 이 책의 원판이 1856년 단행본에 실린 것으로, 아직 타자기가 시장에서 활용되기 전이다. 인건비가 싸고 글을 빠르게 쓰는 일이라면 당연히 그에 맞는 필경사를 구했을 터. 이 소설의 장소 배경이 되는 뉴욕 월스트리트가 그랬을 것이다. 책의 부제가 그렇기도 하고(A story of Wallstreet).


결과적으로 일을 하지 않을 거면서 취업을 한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였다. 집이 없나? 사무실에서 기거도 하고. 그러다 사무실 임대인인 화자는 사무실을 뺐고. 그곳에 남아있던 필경사는 건물주에 의해 경찰에 신고되어 구치소에 갇히게 된 후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줄거리. 시작은 변호사인 화자가 일이 많아서 새로운 필경사를 고용했다. 그런데 바틀비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이력서 없이 고용했을까? 처음엔 바틀비도 바짝 일을 열심히 많이 했다.


왜 그랬을까? 경찰에 의해 구치소를 갈 때 그는 분명히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저는 감옥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I prefer not to jail)라고. 이게 경찰한테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을까? 자본주의도 최후의 보루는 양심과 도덕을 넘어 마지막 '법'으로 통칭되는 강제력 아닐까? 그 앞에선 힘없는 개인이란 게 거기까지 오면 어떻게 탈출하지? 시스템과 체계를 벗어나는 것 말이다.


그러고 보니, 화자는 바틀비를 받아들인 유일한 사람이다. 일을 하지 않아도 이해하려고 하고, 나중에 자기 집에 머물라고 제안까지. 여기에 툼스 구치소에 찾아가 돈을 줘가며 먹지 않는 바틀비를 위해 애쓴다. 이건 일말로 남은 자본주의 양심? 자본주의가 베풀 수 있는 자비의 끝? 안타까움과 자비가 무한 확장되지 않는 사회! 부제가 있었으니 이런 해석이라도 가능했지만, 이게 없었다면 이게 뭔 소설? 하고 생각했을 것 같다.


바틀비가 비록 우편국에서 해직된 경험이 있어도, 그가 자의로 취업을 한 이상 그 후 보이는 행동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이게 핵심일 수도 있다. 실타래가 엉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실타래 그 자체가 말이다. 여기선 자비가 제한된다. 실타래에서 실이 끊어지면?


바틀비는 스스로 필경사로 취업했다. 그런데, 일을 거부한다. 그럼 그는 직장을 왜 구했을까? 먹고살기 위해서? 그런 그는 먹는 것을 거부해 스스로 죽는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것이다. 직장도 그가 선택하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그가 선택하고, 마지막 죽음도 누가 강요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결론은? 작가가 의도한 게 뭐였을까? 다람쥐 쳇바퀴?


그래서 생각해 보니 작가는 이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쳇바퀴에 갇혔을 때 어떻게 탈출하는지. 우린 올라타긴 했는데, 내려오는 법을 몰랐던 게 아닌지, 내려와도 별 볼일 없어 내려오지 못한 건지. 둘 다 일수도. 자고로,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 더 슬프지만. 어쩔 수 없음. 이렇게 되면 '라인홀드 니버'의 깊은 울림도 번지수가 틀린 것 같다. '바꿀 수 있는 것조차 발견하기 어렵다면?' 그럼, 다음은?


덫에 걸린 쥐에게 - 에리히 케스트너


원을 긋고 달리면서 너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느냐?

알겠느냐? 네가 달리는 것은 헛일이라는 것을

정신을 차려 열린 출구는 하나밖에 없다.

네 속으로 파고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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