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리의 결과, 누구?
[책 여행] 양귀자(2013). 모순. 쓰다
나영규는 현실이고, 김장우는 몽상이다? 소설이 전개될 때 내용이 김장우로 선택되는 듯해서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 이래서 소설이 싫지, 라는 생각과 더불어 소설 결론이 나영규로 결정되면서 그럼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니 적어도 이 소설의 흡입력이 좋다는 것을 나 스스로 증명해 주었다.
안진진. 25살의 주인공. 이 소설이 쓰인 것이 1998년이라고 하니 요즘과 세태는 달라도 많이 달랐을 것이다. 요즘에 25세 여성이 결혼해야 한다고 얼마나 생각할지. 이 소설이 발간되고 나서 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소설가 양귀자가 그만큼 필력이 있다는 말인데, 여성이라면 한두 번 이상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소설이다. 여기서 '소설'이란 단어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 소설? 그렇다. 현실이 아니다.
나름 이 책이 주는 통찰력의 무게가 만만하지 않지만, 여성 소설가들이 주는 그것의 한계가 '제한적'이란 생각이 간혹 들기도 한다. 이게 내가 평생 남성이란 우월성과 가부장제의 편견에 사로잡혀 살아와서 그런 것일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내가 누군지 모르니 굳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단지, 지금까지 살면서 일관된 생각과 사고를 갖고 있는지 나 스스로 의심스러울 때가 많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 소설이 연애소설이라고 해도, 소설의 내용을 다 동의할 필요가 없지만, 소설을 '소설'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항상 까먹지 않고 있음은 말하고 싶다.
양다리. 그렇다. 연애소설로 한정한다면 이렇게 좋은 소재가 어디 있을까? 항상 준비된 나영규와 현실을 벗어나서 사는 김장우를 등장시킨 것은 단순히 작가의 노림수라기보다 여성 소설가가 갖는 '현실'과 그 인식의 한계가 아닐까라고 얘기한다면 갑자기 뒤통수에 날라들 그 무수한 비난의 화살들이 상상된다.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주인공 안진진의 아버지가 이해될까? 안진진이 김장우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가 "나는 그런 김장우의 얼굴에서 문득 아버지의 얼굴을 읽었다. 너무 특별한 사람은 위험한 법이었다. 너무 특별한 사랑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만 다른 길로 달아나버린 내 아버지처럼..."라고 말하는데, 이런 이유로 김장우를 선택하지 않는 주인공에 대해 동조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아버지가 가출하면서 했다는 "안방 벽들이 나를 가두는 감옥 같았고, 달려온 당신은 나를 가두는 간수 같았어. 당신은 몰라. 그 절망이 얼마나 무서웠는지..."라는 문장이 아무리 소설의 배경이 1990년대라고 해도 이게 정말 현실적일까? 그 현실이란 것이 1990년대와 2020년대와 달라졌다면 할 말 없지만, 달라져봤자 얼마나 달라졌을까? 인간의 행태와 사고가 그렇게 쉽게 바뀌던가? 이런 일부 내용들이 소설이라서 용인되기도 하지만 그 소설이란 것 때문에 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언젠가 여성 소설가가 묘사하는 결혼과 성에 대해 한 번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평생 남성으로만 살아온 사람이 여성으로 살 수가 없기에 가져온 생각의 틀들을 넘어설지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소설이란 범위만이라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내 생각의 대부분이 대부분의 남성들이 갖는 생각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을뿐더러 그렇게 전선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고 싶은 마음 또한 전혀 없다. 진화적으로 보면 남성과 여성으로 갈리는 게 뭐 그렇게 운명적으로 달라야만 할 정도였는지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다가도, 그사이 그 많은 시간들을 다르게 살아왔고 유전되어 왔기에 많이 달라진 그 무엇들에 대해서만은 충분히 고려할 용의가 있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서, 일부 답답하거나 짜증 나는 면들조차도 작가의 역량이라고 간주한다면 전적으로 동의를 하면서, 이 책이 주는 장점은 결국 작가가 보여주는 현실 인식만큼 많은 그 무게감이나 시의성이 만만한 작가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소설 '모순'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단지, 작가에 대한 반감이란 것은 다음과 같은 것도 포함됨을 일부 드러내고 싶다. 예를 들어,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라는 것에 대해, 실수가 되풀이되는 것이 인생인 것은 맞지만, 인생이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인생은 탐구하듯 살아가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는 말이 차라리 더 맞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아주 일부분이다. 다음과 같은 말들은 언제든지 다시 읽어도 그렇지 하게 하는 말들이니까.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거나,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같은 말들. 여기에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와 같은 문장들은 역시 소설가 양귀자야 하고 생각하게 한다.
더불어, 누구든 이성을 좋아해 본 사람들이라면 100% 동감할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하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와 같은 말들은 정말 주옥같다.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적은 없지만, 적어도 소설의 가치가 있음 직한 내용으로 현실을 버티게 해 줄 간접 경험을 준다는 것만큼은 절대적으로 동의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뭔 소리? 웬 착각? 이 책이 나온 게 언제인데? 이제 읽어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