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없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내 이름이 없군. 뭐, 내 이름이 그렇게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섭섭할까? 당연히 그럴리가 없지만 50명이 넘은 이름을 어디서 구했을까? 작가 친구들 이름? 아님, 전화번호부에서 무작위 추출? 요즘도 전화번호부가 있을까? 개인의 정보를 보호하는 사회적 분위기라서 가능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름 중에 촌스러운 이름이 없는 것으로 봐서 작가가 요즘 세대 작가인 것은 확실하다.
부모님 등이 지은 소중한 이름이 촌스럽다고 느낄 수 있다. 예전엔 일본식 이름인 자자(숙자, 미자 등)가 붙은 여성 이름이 촌스럽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그 이름을 가진 당사자들이 시대 변화에 뒤떨어진 것으로 느껴 개종을 한 사례를 내 주변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런 이름의 주인공이 있었다면 전체 소설 분위기를 깼을까?
소설을 읽기 전에 목차를 보면서 혹시나 내 이름이 있을까 궁금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작가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름들만으로 작가의 세대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은 약간 과장이지만, 생각해 보면 또 수긍이 가기도 한다. 소설에 나온 이름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 좋게 느껴진다. 소설의 주인공이라서 나름 작가가 어떤 기준에 의해서 선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아쉽긴 하다. 내 이름이 있었다면 더 소설에 빠졌을 것 같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이름과 같은 독자가 이 책을 읽는다면 당연히 그 이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궁금해서라도 더 집중해서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재밌다. 누군가의 상상 속이라도 주인공이라니!!
물론, 현실적이게도 각자의 인생에서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공인 거야 당연하지만. 그래도 소설 중 주인공의 이름이 자기와 같다면 정말 궁금하긴 할 것 같다. 난 이렇게 살고 있는데, 소설 속 주인공은 어떻게 사는지,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해서 읽은 배경은 단순했다. 이 작가가 쓴 다른 책은 읽다가 장르소설이라고 불리던가 하는 그 책이 도저히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진작에 포기한 적이 있었다.
책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뭔 책이더라?? 새로운 시대 신진작가를 넘어서 이미 유명해진 작가라는 명성 때문에 한 번 읽어볼 까 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미 <보건교사 안은영>이란 책은 읽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왜 읽게 된 거더라? 아, 그렇다. 판사 박주영이 자기 책, <법정의 얼굴들>에서 이 책을 소개했었다. 아마, 법정에 오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로 인해서 그 작가가 <피프티 피플>을 인상적으로 읽었던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앞에서 언급된 주인공이 다시 다른 주인공의 글에서 언급되는 것을 보고 그제야 알아차렸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정말 다른 남이 아니라 어떤 공간, 여기서는 병원을 중심으로 서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누가 주인공인지 애매하면서도 모두가 주인공인 소설.
각각 단편인 것 같은데, 작가의 표현대로 서로 퍼즐처럼 엮여있는 인물관계. 어쩜 작가가 표현하는 이 작은 세계를 그대로 몇 배 확대해도 그대로 우리 세상살이에 적용될 듯하다. 그걸 작가가 노렸을 거다. 이건만큼은 확실하다. 그렇게 보면 정세랑 이란 작가는 똑똑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런 개인적인 평가가 아니라도 이미 이 작가는 기성작가가 된 것만큼은 확실하니까. 소설이 10만 부 넘게 팔렸다면 세속적인 평가는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평가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관련된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서 정말 중요하게 부각되었거나 앞으로도 부각되어야만 하는 사건들이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작가의 역량이 보통, 아니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사건들이 뭔고 하니 가습기 살균제 피해, 대형 화물차 과적 문제, 성소수자, 싱크 홀, 단기 알바생, 가족 자살 사건, 말기 암 환자, 병원 내 폭력 등등 우리 주변에서 흔하지 않아도 관심을 기울여보면 뉴스에서 다뤄졌던 사건들이다. 작가가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것을 소설이란 틀로 하나로 엮다니. 이렇게 된 배경은 각각의 글들이 창비 블로그에 한 편씩 연재되었었다는데, 그래서인지 마지막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화재를 맞게 되는 설정으로 끝나게 하는 것 또한 현명하게 마무리를 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까지다. 이게 이 소설의 미덕 같기도 하다. 뭔가 묵직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그렇다고 심오한 그 무엇을 주장하지도 않고. 그게 이 작가의 한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정도라도 어디야 하는 평가를 넘어, 뭔가 진지하고 심각한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요즘 세태에 정말 다행이란 생각 또한 든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중심 세대가 달라졌기에 그들 눈으로 해석된 것 같은 이 책만으로도 그저 즐겁게 읽었다. 그럼 된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