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여행] 김애란(2017).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바깥은 여름 하면 안은 겨울! 아님, 안은 봄이나 가을? 이러면 이상하다. 바깥이 겨울인데, 안은 여름? 이건 좀 그럴듯하다. 바깥이 여름이어야 하니, 안은 응당 겨울이어야 할 것 같다. 여름 하면 덥다. 그럼 겨울 하면 춥다. 실제로 온도도 그렇고 그게 인간 마음을 표현해도 그렇다. 겨울은 왠지 환영받지 못할 것 같은데, 당연히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계절이 주는 상징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이 작가에게 여름이란!
이 책을 읽기 전에 어떤 소설을 읽었었다. 나름 잘 나가는, 확고한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소설. 읽고 나서 든 느낌. 독자가 작가보다 오래되고 경험이 더 많으면 그 작가가 쓴 소설이 다가올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래서 소설은 '소설'이고, 소설이 그 이상 의미를 받지 못하면 '소설'의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소설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어서 선택해서 읽으면 된다. 재미없으면 읽지 않으면 되고. 이건 마치 음식점과도 같다. 가서 먹었는데, 맛있으면 더불어 값도 적당하다면, 그 집은 필히 단골이 될 확률이 높다. 그 소설도 누군가에게 선택될 것이다. 나와 다른 누구에게.
그렇게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그런 것 아닐까? 어떤 작가 글들이 맛없으면 안 먹으면 되는 거고.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무수히 많은 인간 군상들처럼 그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할 정도로 다양하게 묘사하는 작가들도 많으니 취사선택하면 된다. 이렇게 우리 삶도 쉽게 선택하고 그만두고 무를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이런 어려움도 소설이 알려주기도 하니 때론 오묘한 게 소설인 것도 같다. 더불어 작가들도 그렇다.
언젠가 누가 편애영의 소설과 비교하면서 김애란 소설을 인용한 적이 있다. 오로지 그 기억 때문에 이 책을 읽었는데, 뭔가 분명 해지는 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 이런 게 좋은 소설이구나. 더 정확히 표현하면 이런 소설이 나한테 맞는구나.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 만약에 적도에 사는 소설가라면 여름이 들어가는 제목을 쓸까? 언젠가 계절이 사계절이란 것이 결코 달갑지 않을 때가 있었다. 옷도 계절별로 맞춰야 하고 특히, 환절기에는 옷 고르기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생각을 바꿔도 될 것 같은데, 어쨌거나 소설은 '바깥은 여름'이다.
계절이 4개나 되니 선택지가 많아서, 곰곰이 다시 생각해 봐 봐도, 내게도 지금은 바깥이 여름이다. 아마, 이래서 이 작가가 더 끌렸을 것이다. 내가 만약 바깥이 겨울이라면 이 책이 선택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 그게 현재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모르게 힘이 된다. 지금 내겐 겨울이 와있지만, 머지않아 봄이 올 거라고, 이때 여름이 올 거라고 하면 이때 이상하기는 하다. 이렇게 계절만으로도 다양하게 작가에 의해서 변주되는 게 우리 삶이고, 이를 조금이나마 알려주는 게 소설가들의 역할이라면, 이 작가는 탁월한 역량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이 소설집은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노찬성과 에반」이었다. 역시나 전적으로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데, 그건 얼마 전에 죽은 강아지 때문이다. 죽고 나서 온전히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소회 때문에 얼마나 슬프던지. 노찬성이 느낀 감정이 내가 느낌 감정과 정확히 일치할 수 없음에도, 내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전해준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론, 그 단편과 내 상황이 같을 수는 없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바깥은 여름이었다. 물론,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게 만든 작품은 「입동」이었지만.
「입동」이 계절적으로 언제더라? 겨울의 시작. 이 작품 때문이라도 '바깥은 여름'이어야 함에도, 작가가 어찌 이런 아픔을 그려낼 수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랬었나? 그럴 리가? 정말 그랬으면 아주 많이 슬펐겠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얻는 힘은 예방주사일 것이다. 살면서 다 경험할 수 없느니, 남이 사실인 것처럼 그린 그 내용으로 주사를 맞음으로써 대비하는 것이다. 슬퍼도 슬프지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덜 슬퍼할 힘 말이다. 그래서 든 생각이 어떤 작가가 '바깥은 겨울'이란 제목으로 소설을 쓰면 이게 우리한테 얼마나 다가올까?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대게 좋다는 소설들이 다 이런 식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밝고 힘차고 즐거운 내용도 필요하지만 그런 내용으로 구성된 소설을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가치 있으며, 그 가치란 그저 즐기면 되지만, 반대는 아니다. 슬픔, 상실, 미련 등을 즐길 수 있을까? 간혹 그런 사람도 있지만 평균인은 아닌 것 같고. 그래서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은 소설가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여러 계절 중에서 다른 계절이 있음을 보여주면서 준비하게 하는 게 소설가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작가는 그가 생각하는 여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여름은 이런 거라고. 그리고 당신이 겪고 있을 겨울이 힘겹고 버겁지만, 그것을 드러냄으로써 인내의 내공을 키우게 하는 것 같다. 어쨌든, 이 작가는 훌륭했다. 그래서, 사족임을 알면서도 작가는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겨울을 끄집어내서, 상처가 덧나지 않게, 우리가 살면서 뭐가 당의정인지 알려주러 태어난 사도 같다. 이 작가 포함 좋은 작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