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없다고 해서 없던 일일까?

[책 여행] 올리버 색스(2016).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by 길문

가수 빌리 아일리시의 재능이 그의 장애에서 온 것이라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적 영감이 그의 왼편 머리에 박힌 파편 때문이라면?


처음 이 책을 추천받았을 때 소설인 줄 알았다. 제목이 참 그럴싸하고 좋아 보였다. 그런데,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란 것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하기도 했다. 뭔가 장애를 가진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불편할 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이중적 시선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장애도 대부분 육체적 장애에 한정되었던 듯하다. 그런데 정신적 장애라면?


이 글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논하는 글이 아니다. 글쓴이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냥 책 읽고 난 후일담인데, 세상을 살면서 책 속 인물들에 비해서 무척이나 난 정상이었단 생각과 남들로부터의 불편한 시선을 벗어나 살아와서 다행이란 생각뿐. 그래서 난 정상이라고?


여기서 기억 하나.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갑자기 쓰러졌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뇌전증이었다. 그땐 몰랐다. 그게 뭔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데, 당사자는 정작 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바로, 이 점이다. 여기에 그 친구를 바라보던 다른 친구들의 시선이 어느 날 확 달라졌음을 알게 된 그 친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뭔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그 친구와 당황해하면서도 그 상황을 모면하기만을 바랐을 당시 친구들.


이 책이 쉽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보통 장애라고 할 때 신체적 장애에 초점을 맞출 뿐만 아니라, 정신적 장애에 대한 극심한 편견이 우리에게 아주 깊게 똬리를 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얼마 전, 조현병으로 인한 살인이 의학적으로 '정상인'들의 살인보다 그 발생 횟수가 훨씬 적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사회적 편견 때문인데, 생각해 보면 이 책에서 서술된 내용들이 평범하지 않지만 틀림없이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음에도, 우린 거의 모르고 살아왔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장애보다 보이지 않는 장애가 주는 공포가 더 무서울 수 있음을 알지만 우린 얼마나 그 공포에 대한 장애를 넘어설 수 있는지? 그 심리적 허들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는 그 불편함의 내용은 정작 환자 자신이 자신의 장애를 잘 모른다면 이란 가정 때문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나의 인식일 뿐, 책에서 서술되는 환자들은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그들이 병원을 찾는 환자이기에. 의사를 만나 약과 치료방법을 상의하기에. 이 책에서는 보통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가벼운 환자보다는 현실에서 격리되어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할 중증의 환자들이 중심이지만, 그러니 사례가 되었겠지만, 이 책의 내용을 일률적으로 정리하는 게 쉽지 않다. 확실한 것은 '상실'과 '과잉' 등으로 장을 구분해서 서술한 내용들이 아주 적절하다는 정도. 엄밀하게 얘기하면 사례를 적절하게 분류하고 제목을 붙이는 것이 좋았다고 해서, 개별 사례들이 주는 무게감만큼은 결코 줄이지 못했다는 점은 꼭 부연하고 싶다.


'상실'과 '과잉' 등 어느 장이건 그 속에서 거론되는 사례들 중 어느 것이 더 불편하거나, 불행할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일까? 아니면 자기 몸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크리스티나일까? 아님, 익살꾼 환자 레이와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C 환자? 지적 장애를 앓는 시인 레버가? 가장 솔직한 답은 그 어느 경우도 감정이입조차도 하고 싶지 않은 사례 들이라 점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영역을 알게 해 준, 그것도 아주 따듯한 시선을 갖고 알려준 작가에게 감사하고 싶은 마음은 감정이입을 넘어선다. 왜냐고? 우린 별나지 않은 그저 다 비슷한 인간이니까.


더불어, 작가가 의사이기도 하니 이런 사례들을 발굴했겠지만, 틀림없이 작가도 이런 의문을 가졌으리라. 무엇이 비정상이고 정상인지 그것을 사람에 대입하면, 인간이기에 이런 탐구도 가능한 것이지만, 이런 일조차도 쉽지 않았을 작업을 해난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은 정말 사족이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어디서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었을까?


다시, 가수 빌리 아일리시로 돌아가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뭔가 부족한 장애로 인해 얻어진 성과일 것으로 치부한다면 아일리시 노래에 대한 엄청난 편견임에도 불구하고, 그 재능으로 얻은 성과가 그런 재능이 없음으로 해서 얻을 '정상'보다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주변에 많은 그 '부족한' 장애 때문에 속알 이를 하고 혹여 그게 자식이라면 쉽게 눈을 감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는 많은 부모님들이 생각되어 가슴이 아리다. 모두가 아일리시 같다면야 그땐 '장애'가 장애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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