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여행] 헤어 & 우즈(2021).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이 책이 미친 영향력이 엄청 컸나 보다. 여기저기 평이 많다. 항상 뒷북이니. 남이 좋다고 해서 읽게 되는 책들. 읽은 대부분 책들이 남한테 우선 검증을 거친 후 알게 된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얼리어답터라면 좋으련만, 독후감을 쓰겠다고 결정한 후 책을 선택할 분별력이 부족하기 때문인 거야 그렇다 치고, 이렇게라도 좋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런데, 우린 어떤 책이 좋은 책이란 것을 어떻게 알지? 끊임없는 사회적 행위 때문 아니던가.
책을 읽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음에도 굳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어지는 효용이 뭘까? 대체로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지만, 그래도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하고 싶은 말은, 이 책을 선택해서 읽은 행위야말로 사회적으로 선택되고 실행된 것이라는 것. 책을 선택해서 읽고, 그 느낌을 적는 행위가 얼핏 보면 지극히 사적이지만, 어떤 책이든 그 책을 선택한 자체도 사회적인 것이다.
누군가 좋은 책을 추천하고, 출판사가 존립을 위해 스스로 그렇게 하더라도 말이다. 그 책이 내게 돌아와 읽히고, 또 그 내용을 독후감으로 남기는 행위. 또 독후감은 왜 쓰지? 누군가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런 게 다 사회적인 것이다. 사회적? 그렇다. 이게 실마리가 될 것 같다. 우린 '사회적' 동물이니까.
이런 배경엔 결국 인간이란 동물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린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사회적이기에 좋은 책들이 있다고 서로 추천하기도 하고 교류를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 누군가 책을 소개한다면 그건 분명히 사회적인 행위이다. 누가 읽어볼 것을 전제하지 않던가. 그래서, 이 책의 핵심 주제이기도 한 친화력이란 단어보다 사회적이란 단어가 더 넓은 의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분명해질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오래전에는 인간이 사회적이기에 진화에 성공했다고 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를 입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연구를 축적했을 테니 가능한 일이지만. 학문이 발전한다는 의미는 당연히 인간도 같이 진화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게의 학문이 그렇듯이 진화론도 완벽히 설명되지 않은 블랙박스가 남아있게 된다. 이 숙제는 독자의 몫이 아니라 학자들의 몫이라는 게 정말 다행이다. 독자는 읽기만 하면 되니까. 이것도 잘하지 않지만 말이다. 책 한 권 읽을 때마다 돈을 주면 책을 더 많이 읽을까?
네안데르탈인보다 몸집과 머리가 더 작으면서, 그들보다 더 큰 군집을 이루면서 사회화에 성공한 호모 사피엔스. 그 배경은?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이유는? 여기에 개가 늑대보다 더 생존하게 된 것도 친화력이라는 주장까지. 더불어, 이런 원리가 인간도 예외적일 수는 없다 점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를 자기 가축화(self-domestification)라고 표현하건 간에, 그간 진화론이 채우지 못한 부분을 채웠다는 점에서 그래서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뭔가, 맞기는 한 것 같은데 설명이 좀 되지 않은 부분들이 채워지고 그래서 우리 궁금증들이 조금씩 풀려가는 과정 자체가 우리가 사회적임을 우리가 진화적임을 역시나 보여준다. 그래서, 이런 책이 더 유명해져야 하고 더 많이 읽혀야 한다. 더불어 이런 작업을 이뤄낸 학자들이 존경스럽다. 아쉬운 것은 대게의 연구에 우리 학자들 이름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만은 진화적이지 않지만.
그런데, 그 핵심인 친화력이나 다정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책에서는 연구를 위해 오랫동안 이뤄진 실험과 더불어 인간 몸 안에서 생성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까지 연구영역을 확대한다. 이 호르몬이 포용 호르몬으로 불리는지 몰랐었지만, 우리 몸에서 작동하는 호르몬으로 인해 서로 강한 유대감을 발휘해서 사회적인 친화력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런데 이로 인해 부작용도 갖게 된다는 면에서는 많이 난감하다.
우리에게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서게 하는 그 원흉이 생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서로 유대감을 증가시키는 옥시토신의 부작용 때문이라니. 우리가 스포츠 경기를 볼 때, 경기나 게임이야 당연히 승부가 나게 만들어진 것인데, 그 스포츠를 보면서 느끼는 동질감과 적대감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적대감의 원천일 수 있다니. 이 책에서는 백인들이 느끼는 인종적 편견에 대해 많은 그림으로 제시해 주는데, 그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이런 게 편견이기도 하고, 이런 편견이 뿌리 깊게 자리 잡다고 있다니.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이게 과연 사라질까?
그래서, 이 책을 쓰면서 학자들이 부딪친 현실 정치를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노력이 개인적으로 더 특별났다. 아주 좋았다. 진화를 설명하면서 부정적인, 인간도 동물이기에, 이 부분을 빼는 게 더 상식적이지도 않고 드러냈다는 점이 말이다. 이건 어쩌면 필연이었을 것이다. 특히, 연구자라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되기에. 학문적인 연구영역이라도 인간을 빼고 진화론을 연구할 수 없기에, 그래서 2016년 미국 대선까지 그 의미를 확장한 것은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었음에도 소명되지 않고 남은 숙제들이 많다. 이를 발견하고 설명하는 것도 당연히 진화생물학자들 몫이지만, 진화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친화력이나 다정함을 발견하고 그에 따라 부작용인 어두운 면이 발견된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배경에는 호르몬이 작동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런 인간들이 서로 증오와 혐오를 넘어 살인까지 당당히 해내는 면에서는 정말 아찔해진다. 이건, 학자들의 몫이 아니다.
아주 최근까지도 우생학을 이끈 생물학자들이 존재했듯이, 인간으로 인해 가지는 사회적 불평등과 인종적 편견이 몇몇 학자들의 노력으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비록, 이 책이 인간의 진화를 설명하는데 친화력과 다정함과 그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까지 알려주지만, 그런 인간이 보노보보다 못한 존재는 아닌가에 대해서는 부끄러워진다. 인간이란 것이. 보노보는 같은 종족끼리 살인을 하지 않는 이유가 보노보는 그렇게 함으로써 보다 종족을 보존하는 게 더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진화했겠지만, 그럼 인간은 인간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진화되고 있음을 깨달아서 같은 종을 죽이는 것일까?
쓸까 말까 망설였던 것은 답이 마땅찮았다. 그래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