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시야 바깥에 훨씬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책 여행] 룰루 밀러(2021),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곰출판

by 길문

처음부터 헷갈렸다.

요즘 이상하다. 성에 대한 판단이 흐려...질 리가 있을까? 그것도 문장을 보면서 작가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하는 게 그리 쉬울까? 글을 읽다가 내내 작가가 남자인 줄 알았다. 작가에 대한 정보를 알아볼걸.


책을 끝까지 다 읽어보길 잘했지. 적당히 읽어보고 남한테 아는 체했었으면 얼마나 민망했을까? 이 말인즉, 소설? 아, 난감해진다. 이 글의 장르는 도대체 뭘까? 소설일까? 책의 반 정도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라면 조던에 대한 전기,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면 에세이인 것 같은데 중간을 넘어서면 우생학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중심을 잡아가다 제인 스탠퍼드가 독살된 것인지 아닌지로 내용이 전개될 때는 스릴러 소설 같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동성애 로맨스?


두 번째는 잘 나가다 웬 동성애가 중심이 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 책에서 자기 여자 친구 얘기가 없어도 전혀 구성에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뭔가 오독을 한 것인가 보다. 이 책의 중심 저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도 또한 룰루 밀러도 그리 평범한 결혼 생활을 한 사람들 같지 않다. 워낙, 사회 분위기와 문화가 다른 미국을 전제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그렇다고 별나다고도 할 수 없는 그들의 일상.


어쩌면 작가의 생활이 평범의 범주를 넘어서 색다르기 때문에 좀 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에 더 천착하게 된 것은 아닐는지. 어쩌면 이 글의 주인공은 별을 쫓으려 자신의 이름에 스타라는 이름을 넣은 조던에 감정이입을 하던 작가가 그 조던의 삶 자체도 혼돈과 무질서 그 자체인 것을 발견하고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친구를 통해서 자기 삶의 혼돈과 무질서를 정비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도 하지만 다른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되어야 할 것 같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정말 생물 분류법과 어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그럼에도 적어도 이 글에서 문제로 지적하는 우생학과 그것이 사회 주류로 받아들여지고 그 과정에서 많은 피해자가 양산되었다는 그 '폭력'에 대해서만 명확히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생학이 학문으로써 어느 순간 주류가 된 것은 문제가 아니다. 우생학이 문제가 없다고? 그게 아니고 학문 내에서도 끊임없이 기존 이론에 도전하는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져야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울까. 높다랗게 울타리 처진 학계라는 것이 어느 정도 고인물인 것을. 학문의 세계에서도 권력이 작동되고 그 체제에서 어느 정도 희생까지 감수하는, 어쩌면 이게 우리 인간 인지도 모른다.


너무 주제와 다른 얘기 같지만, 뭔가 아리송해서 힌트를 얻고자 표지 뒷면을 참조하기도 했다. "사랑과 혼돈, 과학적 집착에 관한......" 여기서 과학적 집착에서 집착이란 단어가 참 걸리는데, 이 때문에 스타 학자였던 결국 우생학을 미국에 전파한 대학자를 파헤친 공로가 집착이란 단어로 다 포함이 될까? 이런 집착이면 정말 좋은 것인데 말이다. 표지 뒷면도 마땅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게 찾아온 혼돈에 뒤흔들리고 내 손으로 직접 내 인생을 난파시킨 뒤 그 잔해를 다시 이어 붙여보려 시도하고 있을 때, 문득 나는 이 분류학자가 궁금해졌다." p. 18.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라고 묻는 딸에게 아빠는 "의미는 없어!"라고 말하는 세상 아버지가 얼마나 될까? 냉소를 넘어서는 아빠의 성찰?


"마치 내가 살아오는 내내, 그 질문을 할 순간만을 열렬히 기다려왔다는 듯 아버지는 내게 인생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통보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중략)........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p.54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실재인 것들이. 어떤 분류학자가 어떤 물고기 위로 걸어가다가 그 물고기를 집어 들고 "물고기"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물고기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이름이 있든 없든 물고기는 여전히 물고기인데... 맞지? 맞겠지?" p. 95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알려주려고 그토록 노력했던 점이다. 사다리는 없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 Natura non facit saltum,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 p. 206. 자연은 비약하지 않은데, 조던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결국, 어종을 분류하면서 그 스스로 옳다고 믿었던 우량종자에 대한 열망이 다윈이 진화론에서 알려주고 싶었던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는 그 진리를 벗어난 것임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p. 226~227


"하지만 나는 서서히, 목표만 보고 달려가는 터널 시야 바깥에 훨씬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믿게 됐다." p. 267. 이 문장은 앞의 내용과 상관없이 그저 좋은 것 같다. 터널 안의 우리 모습이 어떨까? 그저 목표만 따라서 달려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어차피 터널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일 리야 없고. 그 터널을 빠져나와 가려는 곳, 그곳에 분명 훨씬 더 좋은 것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기 삶 속에서의 방향과 혼돈,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를 따라가 보니 그는 결코 그녀가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범도 아니었고, 그러면서 그녀가 찾게 된 깨닫게 된 정착과 성찰. 그 성찰이 여자 친구? 어쩌면, 너무 많이 이 책의 초점이 스타 학자에 맞춰서 독자로 하여금 헷갈리게 한 것은 아닐는지. 그런데 정작 개인적으로 이 책의 답은 책의 첫 페이지에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한 그 첫 페이지란?


"아빠, 이 책은 아빠를 위한 책이에요."


결국,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물었던 룰루 밀러 스스로 답을 얻게 된 과정을 서술한 책이 아닐는지. 그렇게 독해되었다. 이 책이.



서서히, 목표만 보고 달려가는 터널 시야 바깥에 훨씬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믿게 됐다...



누가 내게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아빠가 답한 "의미란 없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혹은 그저 사는 게 우리네 일상 아닐는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실존인물을 다룬 것에 있다. 소설처럼 허구 인물이 아니라 어류분류학의 대가, 그로 인해 시작된 책. 그래서 작가에게뿐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사는 게 뭔지 물어보게 한. 이 책에서 가장 다가온 문장은 다음이다. "서서히, 목표만 보고 달려가는 터널 시야 바깥에 훨씬 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믿게 됐다." 언젠가 인생이 정말 터널 속에 있는 것 같은 시절이 있었다. 누구나 그런 것 같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그 터널 바깥에 훨씬 좋은 것들이 펼쳐질 것이란 믿음이 있어서 지금도 좋다. 외롭고 힘들어도 말이다.